관세 악재 반영 前인데… 韓銀,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경고

유소연 기자 2025. 4. 1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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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 깊어진 韓美 중앙은행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발(發) 관세전쟁에 한·미 중앙은행 수장이 발이 묶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분기(1~3월)에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있는데도 17일 관세발 원화 환율 불안 때문에 시급한 금리 인하보다는 금리 동결을 선택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관세로 미국에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동시에 발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연준이 둘 다 막을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왼쪽 사진) 한은은 “1분기 성장률은 2월 전망치 0.2%를 밑돈 것으로 추정되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오른쪽 사진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16일 시카고 이코노믹 클럽에서 연설하는 모습./사진공동취재단·AFP 연합뉴스

17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현재 연 2.7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했다. 경기 침체 그늘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추가로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최근 위기 때나 있었던 달러당 1500원 선을 육박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환율 불안을 막는 게 시급하자 현상 유지를 택한 것이다. 한은은 지난해 10·11월, 올해 2월 각각 0.25%포인트씩 세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해, 연 3.5%였던 금리를 현재 수준까지 내렸다.

◇”美 관세로 어두운 터널 들어와”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리 결정 후 기자 간담회에서 “미국 관세정책 변화 때문에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확 들어온 느낌이다”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 속도를 조정하면서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라고 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미 관세정책이 일으킨 최근 원화 환율 불안이 한은이 이번에 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된 주된 요인 중 하나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이날 오후 3시 30분 주간 종가 기준으로 1418.9원까지 내려왔다(원화 가치 상승). 하지만 불과 8일 전인 지난 9일만 해도 원화 환율은 1484.1원까지 뛰었다.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3월 12일(1496.5원) 이후 16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이달 초 트럼프의 상호 관세 발표로 한국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이후 상호 관세가 90일간 유예되면서 원화 환율이 반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8일 전과 비교하면 이날까지 환율 변동 폭은 65.2원에 이른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지정 등의 영향이 시차를 두고 가계 대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와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를 지켜봐야 한다는 점도 이날 한은의 금리 동결 결정에 영향을 줬다.

그래픽=박상훈

◇한국,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

한은은 이날 올해 1분기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은은 ‘경제 상황 보고서’에서 “올해 1분기 성장률은 2월 전망치(0.2%)를 밑돈 것으로 추정돼 당초 예상보다 더 성장세가 약화됐다”며 “국내 정치 불확실성의 장기화, 미 관세정책 우려 등으로 소폭 역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올해 1분기는 아직 관세전쟁 효과가 본격화하지도 않은 시점이란 점이다.

더구나 인도·뉴질랜드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미 관세 부과로 경기가 충격을 받을 것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리고 있는데 환율 방어에 발이 묶인 한은은 금리를 쉽사리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달 들어 인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6.25%에서 6%로 내렸고, 뉴질랜드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연 3.75%에서 3.5%로 내렸다. 필리핀 중앙은행도 연 5.75%에서 5.5%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소 실장은 “이미 올해 0%대 성장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한은이 4월 금리를 내리지 못함으로써 이미 경기 부양의 시기를 놓쳤다는 우려가 든다”며 “원·달러 환율 불안이나 가계 부채 증가보다 이미 드리워진 경기 침체가 우리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했다.

◇파월의 ‘인플레, 경기 침체’ 딜레마

16일 미국에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동시에 발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월 의장은 시카고 경제클럽 연설에서 “지금까지 발표된 관세 인상 수준이 예상보다 상당히 크다”며 “관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역시 그럴 가능성이 크고, 여기엔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가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의 도구(기준금리 조정)는 같은 시점에 두 개(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 중 하나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연준은 경기가 침체하고 고용이 떨어질 때는 금리를 내리고,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런데 고용이 충격을 받으면서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국면에 들어서면 연준이 정책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연준의 처지를 “상대방이 페널티킥을 차는 동안 오른쪽으로 뛰어 인플레이션에 집중할지, 아니면 왼쪽으로 뛰어 약화된 성장에 대처할지 결정해야 하는 골키퍼와 비슷하다”고 빗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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