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은 죄가 없다 [코즈모폴리턴]

최우리 기자 2025. 4.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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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뉴욕타임스 여론면에는 '기업 디이아이(DEI: 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운동은 실패할 운명이었다'는 제목의 에세이가 실렸다.

회사가 디이아이 정책을 고려해 다양한 성별과 인종 채용 등을 회사의 전략과 연계해 연간 성과 목표를 수립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기업에 디이아이 담당 부서가 없다면, 다양성은 의도적으로 줄이게 되고 많은 이점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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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미국 시카고에서 숙련된 건설업 여성을 양성하고 유지하는 일을 하는 비영리단체 ‘시카고 우먼 인 트레이드’ 건물 입구에 여성 건설노동자를 그린 벽화가 전시돼 있다. 시카고/AP 연합뉴스

최우리 | 국제뉴스팀 기자

지난달 중순 뉴욕타임스 여론면에는 ‘기업 디이아이(DEI: 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운동은 실패할 운명이었다’는 제목의 에세이가 실렸다. 회사가 디이아이 정책을 고려해 다양한 성별과 인종 채용 등을 회사의 전략과 연계해 연간 성과 목표를 수립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주장이었다. 기업 문화나 사명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화된 교육으로 동일한 진보적 목표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역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열흘 뒤 또 다른 논객은 ‘디이아이는 없애는 게 아니라 개선해야 하는 것’이라는 반박 글을 내놓았다. 그는 기업에 디이아이 담당 부서가 없다면, 다양성은 의도적으로 줄이게 되고 많은 이점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 가치에 대한 질문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500명가량 속해 있는 이에스지(ESG, 환경·사회·거버넌스를 지향하는 경영) 뉴스 공유용 익명의 단체 메신저 방에서는 최근 며칠 동안 격론이 이어졌다. 각 기업 이에스지 담당자가 많이 참여하고 있는 이곳에서도 “디이아이를 강요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을 제거해야 한다” “급진적 강요가 백래시를 불렀다” “이에스지는 지속가능함이며 특정 이념의 강요가 아니다” “성비를 기계적으로 맞추는 것은 기회의 평등을 제한한다” 등 날것의 주장들이 쏟아졌다. 생각이 다른 이들은 “누가 억지로 성비를 맞추라고 하나” “기업 컨설팅을 하면서, 역차별을 감행하면서까지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요받는 기업은 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이 ‘디이아이’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 능력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세계를 상대로 힘을 과시하는 것은 관세뿐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의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과 거래하는 독일계 한 통신 기업은 미국 정부 눈치를 보고 디이아이를 폐기한다는 서약을 맺었고, 미국 정부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랑스 대기업은 미국 정부로부터 디이아이 정책을 폐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미국을 ‘자유의 나라’라고 부르게 한 안전망, 종교와 언론·출판·집회의 자유와 청원의 권리를 담은 ‘수정헌법 1조’까지 부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흐름이 이해될 정도다.

정치권력이 과도하게 커지고 사회의 공기와도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깨지면 개인은 위태로워진다. 거대한 과제를 해결하느라 여러 영역의 사회 진보가 유보되거나 후퇴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두개의 전쟁(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을 끝내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은 전세계를 상대로 ‘미국 우선주의’를 실현하느라 이를 마무리 짓지 않고 있다. 또 당장의 성과가 나기 어려운 의료·과학 기술, 대학 교육 지원과 기후위기 대응, 사회·경제·신체적 약자에 대한 보호 등에 대해 최강대국의 영향력을 서서히 내려놓으려 한다.

세계 경찰국가를 자신하던 미국의 그늘이 너무 짙었던 것일까. 각자도생하는 세계는 또 다른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일종의 기회를 맞은 걸까. 분명한 것은 격변기일수록 작은 목소리들이 너무 쉽게 묻혀버린다는 점이다. 오늘의 디이아이 정책처럼.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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