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유지 누가 할 건가요?" 검찰·공수처 동시 출석한 첫 재판 진풍경

최동순 2025. 4. 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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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중앙지법 513호 법정에서 열린 '박모 전 부장검사 수사기밀 유출 사건' 재판에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가 모두 출석해 죄명만 다른 똑같은 공소사실 요지를 각각 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사·재판의 효율성이나 피의자·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해, 대부분 수사나 기소 단계에서 기관 간 조율이 이뤄지지만 이번 사건은 수사기밀 유출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사건임에도 검찰청과 공수처가 각각 기소하는 바람에 두 기관의 검사 모두 재판에 출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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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검사 기밀유출 사건 재판 병합에
'공소유지' 검찰·공수처 나란히 출석
"설익은 공수처법 혼란, 보완책 시급"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한국일보 자료사진

"피고인은 2019년 12월 4일 자신의 검사실에서 알게 된 금융거래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했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됐습니다." (검찰청 검사)

"피고인은 2019년 12월 4일 자신의 검사실에서 A주식회사 법인카드 내역을 촬영하게 해 공무상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공수처 검사)

17일 서울중앙지법 513호 법정에서 열린 '박모 전 부장검사 수사기밀 유출 사건' 재판에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가 모두 출석해 죄명만 다른 똑같은 공소사실 요지를 각각 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판사도 피고인도 1명인데 '검사'만 2명이었다. 검사복을 입은 검찰청 검사가 먼저 검사석에 나가 재판을 준비했고, 뒤이어 방청석에 앉아 있던 공수처 검사가 양복 차림으로 검사석에 들어섰다. 둘은 한 자리를 띄우고 앉았다. "두 사건은 다 검사님이 진행하는 건가요?"라는 판사의 물음에, 검찰청 검사는 "다른 기관이 기소한 것이라서 (따로따로) 일단은"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소추기관 두곳이 입정해 공소유지를 하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쉽지 않다고 한다. 수사·재판의 효율성이나 피의자·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해, 대부분 수사나 기소 단계에서 기관 간 조율이 이뤄지지만 이번 사건은 수사기밀 유출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사건임에도 검찰청과 공수처가 각각 기소하는 바람에 두 기관의 검사 모두 재판에 출석했다.

진풍경이 벌어진 이유는 검사와 관련한 특정 범죄는 공수처에 기소권이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법은 '수사처 외의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사건을 수사처에 이첩해야 한다'(25조2항)고 정하고 있다.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하지 못하도록, 검사 범죄의 기소권을 공수처에 넘긴 것이다.

문제는 공수처가 수사·기소할 수 있는 범죄가 뇌물, 직권남용, 공문서위조, 공무상비밀누설 등으로 한정되고, 조직 역량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는 검사 범죄의 대부분은 검찰이 수사해 일부를 공수처에 넘기고, 공수처는 해당 죄명만 적용해 기소하는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

박 전 부장검사 사건도 검찰 내부 감찰로 시작됐다. 그는 2019년 서울중앙지검 소속으로 이동호 전 고등군사법원장의 뇌물 사건을 수사하면서 제보자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았다. 사실관계를 파악한 서울고검 감찰부는 지난해 9월 박 전 부장검사를 개인정보보호법 및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공무상비밀누설 부분은 공수처에 이첩했고, 공수처는 한 달여 뒤 해당 혐의만 재판에 넘겼다.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의 비위 의혹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이 검사의 각종 혐의를 수사해 지난달 재판에 넘겼고, 공수처는 공무상비밀누설 부분만 이첩 받아 별도 기소했다. 두 사건 모두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한 상황에서 공수처에 이첩됐는데, 검찰이 수사하는 동안 공수처는 이첩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설익은 공수처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종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실질적으로 모든 내용을 수사한 사건임에도 공수처가 별도로 기소하도록 했는데, 공소유지 측면에서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향후 쟁점이 복잡하거나 정치적 논란이 있는 사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12·3 불법계엄 수사에서 벌어진 혼란이 반복될 수도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수사기관이 난립하며 빚어진 촌극"이라며 "혼란을 막기 위한 입법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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