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코네티컷… 케이팝에 ‘힐링’받는 난 서른두 살 켈리

한겨레21 2025. 4. 17. 18:1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들의 플레이리스트]레이디 가가-블랙핑크-스트레이 키즈로 행복을 넓혀가는 켈리 피어스
켈리 피어스가 직접 편집한 ‘스트레이 키즈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켈리 피어스 유튜브 갈무리

미국 코네티컷주에 사는 켈리 피어스(32)는 자타공인 케이팝 마니아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다길래 와서 뭘 할지 계획을 물었더니 강원 강릉시에서 순두부를 먹고, 서울에선 제이와이피(JYP) 사옥 앞에 가볼 거란다.

2023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도 와이지(YG) 사옥 앞에서 브이(V) 사진만 찍고 돌아갔던 켈리. 이번에도 그렇게 보낼 순 없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다니는 친구에게 살짝 부탁했다. 덕분에 하이브 사내 카페도 가보고 아이돌 굿즈도 받은 켈리는 다음날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저에겐 늘 불안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걱정하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생각이 맴돌아요. 이런 불안은 구토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특히 공공장소에서 그런 일이 생길까봐 두려워요. 식당에서는 더 그래요. 그래서 지난번 한국에 왔을 땐 식당에 가는 게 무서워서 호텔 안에만 있었어요. 그런데 어젯밤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던 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그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전혀 몰랐다. 나에게 쉬운 일이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다시 한국을 찾아준 켈리가 고마웠다.

“사실 저는 레이디 가가 팬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불안 증세가 커져 아빠가 레이디 가가 콘서트에 저를 데려가줬어요.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면서 레이디 가가의 이야기를 따라갔고, 팬들과 친구가 됐죠. 가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저를 더 자신감 있고 편안하게 만들어줬어요. 그러다 가가의 앨범에서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를 발견했어요. 그렇게 해서 처음 알게 됐죠, 케이팝을. 블랙핑크 멤버들이 브이로그에서 (감탄사로) “우와”라고 하는데, 미국엔 “와우”(Wow)밖에 없어서 그 말이 신기해 따라 하다가 나도 한국어를 배워볼까 결심했죠. 처음엔 ‘싶습니다’와 ‘싶어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많이 헷갈렸어요.”

그 시기에 켈리는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을 해야 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타지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외로웠던 켈리는 아이돌 그룹 ‘스트레이 키즈’에 푹 빠졌다. “옷장엔 포스터가 가득했어요. 가족들은 언제쯤 제 ‘한국 집착’이 끝날지 궁금해했죠. 화장하는 남자를 왜 좋아하냐고. 그래도 상관없었어요. 그 모든 게 저를 구해줬고, 이별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줬어요.”

하지만 켈리는 여전히 외로웠다. 그래서 한국인 친구를 사귀어보자고 마음먹었다. 친구를 만들 수 있는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프로필에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고, 한국어 말하기 연습을 하고 싶다”라고 썼다.

“죄송하지만 한국인처럼 보이는 여성 유저들 프로필에 전부 ‘좋아요’를 눌렀어요. 그렇게 맺은 인연 덕분에 제 삶은 많이 달라졌어요. 저는 그 친구들에게 제 세계를 보여주고, 그 친구들은 저에게 그들의 세계를 보여줬어요. 지금까지 만난 모든 한국 사람이 정말 친절하고 따뜻했어요. 미국에서 만난 수많은 한국인 친구는 제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절대 만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켈리는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중이다. “스트레이 키즈는 제 마음속에 항상 특별한 존재로 남아 있을 거예요. 언젠가 ‘방찬’(스트레이 키즈 멤버)을 만나서, 그가 저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직접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하하) 그는 진짜 멋진 사람이에요. 전세계 사람들이 그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이 상황이 그에겐 얼마나 이상하게 느껴질지 상상도 안 가요.”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켈리 피어스(가운데)가 2025년 4월1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서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왼쪽), 그리고 연인 관계인 매슈 솜로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켈리 피어스 제공

켈리 피어스의 플레이리스트

①스트레이 키즈 다큐멘터리
https://youtu.be/_SEPcLGPFog

이 영상은 제가 스트레이 키즈의 재능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멤버들이 직접 음악을 프로듀싱한다는 점에서 감명을 받았고, 그들의 이야기는 꼭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큐멘터리를 기획할 땐 티저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튜브 영상 클립들을 활용해 만들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소속사 제이와이피(JYP)에서 이 영상을 보고 다큐멘터리로 채택해줄 거라고 생각한 건 순진한 생각이었죠. 이 영상을 공유하는 이유는, 케이팝 팬이 얼마나 깊이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②레이디 가가의 ‘텔레폰’(Telephone)https://youtu.be/EVBsypHzF3U

이 뮤직비디오(뮤비)는 엄청난 문화적 영향을 끼쳤어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 나왔는데, 파격적이면서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죠. 영화 ‘보이후드’에도 등장하는데, 누나가 아이폰으로 이 뮤비를 보는 장면은 2010년 이 영상이 얼마나 큰 문화적 현상이었는지를 보여줘요. 마지막에 “To be continued”라는 문구가 떠서, 저처럼 초창기 팬들은 아직도 후속편을 기다리고 있어요.

③로스앤젤레스(LA) 찜질방 방문기https://youtu.be/k70xBg8en-4

케이팝을 알기 훨씬 전, 제가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한 건 바로 이 영상이에요. 코넌 오브라이언은 정말 보물 같은 사람이에요. 한국 여행 영상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다시 보는데 볼 때마다 웃음이 나요. 특히 문화방송(MBC) 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에 카메오로 깜짝 출연한 오브라이언이 “너”를 계속 “나”라고 발음하는 장면은 정말 웃겼어요.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