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트럼프와 관세 협상, 모범생처럼 대응하면 말려들 수도”

박민희 기자 2025. 4. 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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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주최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이 트럼프 관세 전쟁에 대한 한국의 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박민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에 대해 한국이 미국과 협상은 일찍 시작하더라도 조급한 합의를 해서는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이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연 ‘트럼프 관세전쟁 어떻게 대응하나’ 주제의 좌담회에서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에 중국이 보복조치에 나서 미국 자본시장이 흔들리자 미국이 ‘조기 협상’ 대상을 뽑아 협상을 시작했다”면서 “한국이 조기 협상국에 포함된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우리 카드는 잘 준비하돼 미국-일본 협상을 보면서 벤치마크 해야하고 합의를 서두르면 안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첨단제조업이 강하기 때문에 ‘카드’가 많다”면서 “미-중 사이에 어느 쪽을 선택할지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세계질서는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우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도 “미국 현지에서는 한국이 너무 조급하게 달려드는 느낌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면서 “정부, 민간이 원팀으로 대응해야 하고, 안보까지 넣어 협상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했다. 정 원장은 “트럼프 정부가 이번 관세 정책에 대해 과도하게 갔기 때문에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면서 “우리가 우리 카드를 다 보여주고 조급하고 빠르게 협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의 판 흔들기에 한국이 모범생처럼 대응하면 말려들 수 있다”면서 “우리가 뭘 줄지를 먼저 생각하지 말고, 미국으로부터 뭘 받을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관세전쟁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심각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의 대미 수출품 1386개 품목을 분석했는데, 90일간 유예된 상태인 트럼프 관세가 그대로 진행된다면 한국 수출에 약 204.1억달러(GDP의 약 1.2%)의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자동차(28.2%) 기계류(25.5%) 전기기기, 화학제품 등 주요 산업이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미-중 관세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 전망해 볼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비대칭 구조도 동시에 주시해야 한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미-중간 수입 취약성을 비교해 보면 중국의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취약 비율이 14%(232억달러)인 반면,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의존하는 비율은 49%(2297억달러)로 중국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기술, 환경 등 다양한 형태의 보호주의가 지진처럼 계속 찾아올 것”이라며 “한국 사회 전체의 고용, 청년 실업, 불평등에 미치는 큰 영향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트럼프 관세’는 세계무역기구(WTO) 핵심 원칙인 최혜국 대우(MFN)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으로, “사실상 미국의 ‘WTO 탈퇴 선언’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된 원인은 1995년 WTO 출범과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미국 노동자 일자리가 급감하고 무역적자가 급증한데다 미국 GDP의 120%가 넘는 국가 채무가 지속불가능해진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기 때문에 트럼프 이후 미국의 미래 정권도 강한 보호무역주의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박 교수는 한국이 이런 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CPTPP에 가입해 글로벌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CPTPP 가입은 WTO를 대신해 자유무역 체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할 뿐 아니라, 중국이 과도하게 국가주도적으로 생산성을 강화하는 데 대한 제어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도 6.3 대선으로 등장할 새 정부가 CPTPP 가입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동안 동력을 상실했던 한중일 FTA 협상도 새롭게 되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중간 무역전쟁의 전망과 그 사이에서 한국이 취해야할 입장에 대한 제안도 나왔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차관은 이번 ‘관세전쟁’을 무역 불균형 해소 차원을 넘어서 글로벌 체제의 균열이 깊어지는 상황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글로벌 불균형 체제의 양축인 미국과 중국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중국도 전세계 GDP의 17% 정도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는데도 자국 금융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기축통화국(미국)에만 의존하고 위안화를 통제하면서 미국의 과도한 적자를 양산하는 축이 되는 측면은 바꿔야 한다”면서 “두 나라가 정면대결하면 상호 파괴적인 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적자국(미국)과 흑자국(중국) 모두 공동 책임이라는 인식을 하고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특히 내부적으로 생길 수 있는 불만을 통제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다시 반부패 캠페인을 강화하고, 당 인사를 총괄하는 조직부장을 교체하면서 무역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에 벌어질 수 있는 엘리트층 이반에도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손 교수는 시진핑 주석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을 순방하는 등 주변국을 달래는 데도 노력하고 있고 한국과도 함께 하려 할 것”이라며 “한국은 이런 기회를 활용해 중국을 향해 ‘비관세 장벽’을 줄이고 수출 주도 경제로만 나가지 않고 내수 시장을 확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요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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