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채무 사상 최대? 언론이 놓친 尹정부 성적표의 진짜 문제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4년 정부 성적표가 나왔다.
2024년 결산 결과는 정부의 한 해 성적표다. 결론만 말하면, 재정수지 성적은 나쁘고 국가채무 비율 성적은 좋다. 쉽게 말해 적자(재정수지)는 크게 늘었지만, 빚(국가채무)은 많이 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적자가 커진 것이 더 중요할까, 아니면 빚이 많이 늘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할까?
비유해보자. 자영업자가 식당을 하는데, 작년 장사는 적자가 엄청났다. 그런데 다행히 빚은 안 늘었다. 왜냐고? 그동안 모아놓은 비상금을 꺼내 썼기 때문이다. 이 자영업자가 “그래도 빚은 안 늘었으니 괜찮은 해였어”라고 말하면 당신은 동의할 수 있겠는가? 식당의 건전성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손익이다. 빚은 그 손실을 때우기 위한 결과물일 뿐이다.
결국, 2024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4.8조 원으로 나타났다. 전년도(2023년) 결산 적자 87조 원보다 크게 늘었고, 2024년 예산상 적자(91.6조 원)보다도 폭이 확대되었다. 이 적자 규모는 코로나 시절만큼 악화된 수치다. 예를 들어, 두 차례 추경을 통해 큰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던 2021년의 적자는 91조 원이었다. 네 차례 추경이 있었던 2020년 적자 112조 원과도 비슷한 규모다. 즉, 재정건전성은 뚜렷하게 악화되었다.
그런데 국가채무 비율은 오히려 개선되었다. 2023년 국가채무(1127조 원)는 GDP 대비 46.9%였고, 2024년 국가채무(1175조 원)는 GDP 대비 46.1%로 줄었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기금 여유재원 활용 등을 통해 국가채무 증가를 최대로 억제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이 정부가 추구한 것은 실질적인 재정건전성이 아니라 '재정건전성 지표'의 관리일 뿐이다.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재정건전성 '지표'만 관리하는 것은 눈속임이다.
국가채무 비율을 좋게 만든 두 가지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외환평형기금의 자금을 사용하여 국채 발행을 줄였다. 외평기금을 활용해 지표는 개선됐지만, 실질적으로 재정이 건전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환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렸다. 둘째, 무려 31조 원의 세수 결손에도 불구하고 국가채무 비율이 낮아진 것은, 지방정부에 지급해야 할 교부세·교부금을 임의로 미지급한 20조 원 규모의 불용 덕분이다. 이렇게 불용이 커지면서 대한민국 예산서는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부도수표'가 되었다. 예산서에 100억 원이 편성돼 있어도 실제로 100억 원이 집행될지, 90억 원만 집행될지는 시장참여자 누구도 알 수 없다.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시장경제의 기반도 흔들린다.
이처럼 정부는 외환정책과 예산서에 대한 신뢰를 맞바꾸는 대가를 치르면서 국가채무 비율 지표를 간신히 방어했다. 그러나 이런 눈물겨운(?) 노력은 성공적이지도 않다. 일부 언론, 예컨대 동아일보 등은 <국가채무 사상 최대>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러나 국가채무 '비율'이 아니라 '절대액'이 사상 최대라는 보도는 사실상 뉴스 가치가 없다. 해마다 GDP가 성장하고 물가가 오르는 이상, 국가채무 절대액이 매년 사상 최대를 경신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때 “한국 GDP 사상 최대”라는 제목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사상 최대가 뉴스가 아니라, 사상 최대가 아닌 것이 뉴스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대급 재정수지 적자가 나타난 상황에서 국가채무 비율만 관리하려는 정부의 노력도 이상하지만, 이를 두고 “국가채무 절대액이 늘었다”고 비판하는 언론 보도는 더 황당하다. 마치 '덤 앤 더머'를 보는 듯하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결산 분석의 핵심은 예산 당시 세운 계획과 목표가 잘 이행되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2024년 결산은 예산안 국회 심의 결과를 무시하고 집행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의 핵심이 있다.
세입 측면에서 정부는 할 말이 없다. 국세 수입이 예산 대비 무려 31조 원 부족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결산 설명자료에는 “국세 수입이 예산보다 31조 원 부족했다”는 언급조차 없다. 대신 “경기 둔화 여파 지속 등으로 2023년 대비 감소했다”는 식의 원론적인 설명만 있을 뿐이다.
세출 측면에서는, 법적 근거 없이 교부세·교부금을 임의로 삭감하면서 20조 원의 불용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역시 결산 설명자료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예산이 얼마나 충실하게 집행되었는지 검증하는 내용은 전무하다. 이런 내용이 정부 설명자료에 빠졌으니, 당연히 언론 보도에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보도에는 “국가채무 절대액 사상 최대”라는 공허한 비판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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