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 가슴만 쿵쾅쿵쾅… 달콤했던 4월의 그 밤은 가고없네[자랑합니다]

2025. 4. 1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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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랑합니다 - 질풍노도 사춘기가 남긴 것들 <하>
매년 10월의 마지막 밤마다 밤새워 미지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곧 라일락 꽃도 피어나면 세상은 더없이 향기롭고 미풍은 나를 감싸며 달콤한 세계로 인도하겠지. 이어 아카시아 꽃마저 합세하면 세상은 온통 꿀 내음으로 황홀난측한 세계로 몰고 가겠지. 4월의 밤공기를 마시며 사춘기 때로 돌아간다.

지금의 밤은 내게 안식과 평화를 주지만, 그때의 밤은 왜 그리 번민과 고뇌뿐이었던지. 진로를 생각하면 골치 아팠던 밤. 인생이란 물음 앞에선 혼란스러웠던 밤. 짝사랑에 찌릿찌릿했던 밤, 꿈과 비밀들이 일기장에서 쑥덕대던 그 밤.

“아무나 붙들고 무슨 이야기든 나누고 싶다. 주관적이고 철학적인 인생에 대해 토론했으면 좋겠다. ‘너는 무엇이 되어라, 너는 그것을 해야 한다’라는 말. 그 어떤 말을 내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해와 관심을 보여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내게 다정다감하게 다가와 조언해 줄 사람은 없다. 누구라도 좋으니 어서 내 곁에 나타나,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말로 나를 잘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조언자가 나타났으면’ 중에서)

“내 나이 갓 이팔청춘. 소위 말하는 꽃다운 시기다. 하지만 학생으로서 이때를 즐기기보다는 지긋지긋한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 행복과 불행,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은 공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갖고 태어나 이름이라도 남기고, 높은 지위, 남들이 다 알아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중략) 하루가 지나면 내일, 세월은 가기만 하고 내 뜻대로 되는 건 없고. 매일 고민이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신념은 노력으로 가망 100%이기에. 눈물의 골짜기를 걷고 삶의 괴로움을 걷자. (중략)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인생의 참맛을 알고 쓴맛을 알고 있는가. 하면 된다. 죽음이 닥쳐온다 해도 정말 뭐든 ‘하면 되는 것’이다. (중략) 아무리 힘들어도 피나는 노력으로 참고 견디겠다.”(‘아무리 힘들어도’ 중에서)

“사방은 온통 초록색. 향긋한 풀냄새. 맑은 아침이슬. 모든 게 마냥 싱그럽다. 요란한 새소리에 소녀는 잠에서 깨 하늘을 본다. 키 큰 미루나무도 본다. 새들이 어디선가 날아들어 신선한 공기와 얽혀 아름다운 그림을 만든다. 그러나 소녀의 몸짓엔 그윽한 슬픔 같은 게 배었다. 소녀는 탄식하듯 한숨을 푸른 하늘에 내뱉었다. 그랬더니 푸른 하늘은 소녀를 향해 청아한 냄새를 소녀의 입에 불어넣는다.”(‘초원에서’ 중에서)

“나는 은하수에 몸을 담갔다. (중략) 내 몸은 밤에 묻혔고, 내 숨소리는 은하수 흐르는 소리에 묻혔다. (중략) 몸에서 자그만 충동질이 일어나 압박감을 일으킨다. 거울에서 빛나 흐르는 뽀얀 살은 정말 어느 소설책의 여주인공 같았다. 그것은 처녀가 되기 위한 기초였다. 이제 내 몸은 가볍다. 저 밤하늘을 향해 날아가 버릴까. 신선하고 아름다운 밤. 주위는 점점 어둠으로 승화되었다. 다만 밤하늘의 손톱달과 별들의 반짝임만 있을 뿐. 붉어진 마음으로 하늘을 향한다. 어느 결에 밤하늘이 다정한 임이 되었다. 이대로 은하수에 누워 잠들고 싶어라.”(‘은하수에 누워’ 중에서)

그때가 사무치게 그립다. 일기장 속 짝사랑들은 어느 하늘 아래서 잘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은 날 모를 테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멀리서 쳐다만 봤네. 그저 가슴만 쿵쾅쿵쾅. 그 시절을 뒤로하고 어느새 세월이 훌쩍 가버렸다. 힘들었지만 아름답던 그때를 담은 내 책을 보니 다시 심장이 고동친다.

박성희(경기 광주시평생학습관 수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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