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아기를 만난 순간 일본어와 한국어로 인사했다 [이길보라의 경계에서 자란다]

한겨레 2025. 4. 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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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일본의 출산전문병원 산부인과에서의 출산 모습. 조산사가 분만 전 과정을 집도하며 의사는 필요한 때만 의료적 개입을 한다. 재일조선인 조산사(오른쪽 둘째)가 아이를 받고 의사(오른쪽 첫째)는 회음부 봉합 수술만 했다. 이길보라 제공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이상하게 더웠다. 무언가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생리대를 대어보니 분홍빛으로 흥건히 젖었다. 양막 조기 파열 혹은 파수라고 부르는 증상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진통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생리통과 같은 정도의 아픔이었는데 점차 진통이 심해졌다. 아픔을 최대한 경감시키는 자세를 찾아 호흡했다.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며 진통이 잦아들길 기다렸다. 진통이 끝나면 살았구나 안도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새로운 조산사가 들어왔고 자신을 재일조선인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어로 말해도 된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일본의 산부인과에서 부족한 일본어와 파트너의 통역을 통해 소통하고 있었다. 제대로 인사할 정신이 없어 누운 채로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속이 메스꺼워 화장실로 향했다. 먹은 것을 전부 게워냈다. 조산사는 뭐라도 먹어야 저녁까지 버틴다면서 식사를 하기를 권했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파트너와 조산사는 몇번이고 내 몸을 일으켜 젤리로 된 에너지 음료를 먹였다.

내진이 이어졌다. 자궁문이 열린 정도와 부드러워진 정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아기가 얼마나 산도를 내려왔는지 파악해 진행 정도를 가늠하는 절차다. 질에 손가락을 넣어 질과 골반 안쪽을 진찰하는 것인데 정말 엄청 너무 아프다. 조산사는 자궁문이 1㎝ 열렸다고 했다. 울고 싶었다. 10㎝가 열려야 본격적으로 분만으로 넘어가는데 진행이 더딘 것 같았다. 이러다가는 정말 기절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나는 무통주사를 맞지 않기로 한 것인가, 이제라도 맞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이렇게나 아프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어떻게 여성들은 출산의 과정을 거듭해온 것이냐고, 어째서 이 모든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생각하다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눈 딱 감고 뜨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훌쩍 지나가 있기를 빌었다. 자세를 바꾸며 호흡했다. 무언가가 골반 아래로 내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에 힘을 쭉 빼며 호흡해도 자꾸만 배에 힘이 들어갔다. 조산사가 아직 힘을 주면 안 된다며 호흡에 집중하라고 했다. 아무래도 화장실에 가야 하는 신호 같아 몸을 일으켰다. 혼자서도 갈 수 있다고 말하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조산사가 내진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질에 손가락이 들어오자마자 체면도 존엄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조산사는 황급히 콜을 넣었다. 분만실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조산사가 들어와 짐을 챙겼다. 파트너는 촬영 장비와 출산 가방을 챙겨 뒤따랐다. 분만실에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이 들렸다. 내가 그리던 출산 환경이 아니었다. 촬영한 영상에 음악이 깔리면 추후 편집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산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한국어로 외쳤다.

“음악, 안 해요!”

파트너는 급박한 상황에도 촬영 환경을 챙기는 걸 보고 내가 제정신이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의자에 올라 다리를 벌렸다. 묵직하게 끼어 있는 기분이었다. 다시 진통이 찾아왔다. 힘을 주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한국어로 말했다.

“이제 힘줘도 돼요?”

대답을 듣자마자 숨을 들이마신 뒤 내쉬며 힘을 주었다. 온몸이 지금 힘을 주어야 한다고 신호를 주는 것이 신기하다 못해 경이로웠다. 최대한 길게 힘을 주고 진통이 오면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힘을 주었다. 그러다 정신을 잃고 얕게 호흡하면 조산사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라고 일깨웠다. 조산사는 거의 다 왔다며 한번 더 힘을 주자고 했다. 무언가 쑤욱 빠져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기 머리였다. 머리가 나오면 그 후에는 힘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그래야 회음부가 덜 파열되며 어깨 탈골도 생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럴 겨를도 없었다.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고 핏덩이가 보였다. 조산사는 어떻게 출산하고 싶은지 적어둔 노트를 확인하고는 아이를 안고 젖을 줄 수 있도록 도왔다. 나는 아기의 얼굴에 손을 대고 일본어와 한국어로 말했다.

“열심히 했구나. 수고했어, 아가야.”

조산사는 탯줄은 누가 자르겠냐고 물었다. 파트너가 자신은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직접 자르겠냐고 물었다. 나와 아이를 연결해온 탯줄을 가위로 잘랐다. 오전 10시53분, 그렇게 아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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