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 진도 팽목항…다시 ‘봄’

“잊지 않을게” 세월호 참사 11주기 ‘조용한 추모’
‘침몰된 진실’ 내인설 vs 외력설 논란만 남겨
해양심판원 참사 원인…'안전관리 부실' 결론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 전남 진도 임회면 진도항. 이곳은 세월호의 아픈 기억이 새겨진 곳이다. 세월호 사고의 수습 항구로 사용되면서 대중들에게 팽목항으로 널리 알려졌다.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11번째 봄을 맞았다. 이날 오전, 팽목항 방파제를 따라 내걸린 노란 깃발과 리본은 빛이 바래고 닳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노란 리본이 새겨진 빨간 등대에는 하늘의 별이 된 304명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화가 가득 놓였다.

방파제 난관에는 '304명의 별, 우리 마음에 영원히' '팽목기억공간 조성하라' '끝까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등의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 수십개가 걸려 있었다. 바다 쪽 난관에 마련된 기억공간에는 '잊지 않을게' '봄은, 죽었다' '아픔보다 더 아픈 무관심' '별이 되어 반짝이는 너희' '부끄럽습니다' 등 추모의 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16일 오전, 진도 임회면 팽목항 방파제를 따라 내걸린 노란 깃발과 리본은 빛이 바래고 닳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노란 리본이 새겨진 빨간 등대에는 하늘의 별이 된 304명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화가 가득 놓였다. ⓒ시사저널 정성환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아 추모객들이 16일 오전, 진도 임회면 팽목항 방파제를 따라 노란 리본이 새겨진 빨간 등대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그래도 '봄'은 왔다…"304명의 별, 우리 마음에 영원히"

주변에 진도~제주 카페리 여객터미널이 들어서며 모습도 많이 달라졌지만, 팽목기억관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단체로 온 추모객들은 기억관 안에 걸린 희생자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새겨보며 위로했다. 맞은편 팽목 성당도 비바람을 견뎌내며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세월호 가족들이 머물던 임시거처는 대부분 사라져 적막감만 흘렀다.  

'매년 추모일 2~3일 전에 비가 내린다'는 속설은 올해도 이어졌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진도 팽목항 일대는 많은 비가 내렸다. 인근에서 펜션과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여·60)씨는 "아이들 눈물일까요? 신기하게도 해마다 추모일이 다가오면 빠짐없이 비가 내린다"고 전했다. 

이날 팽목항은 아침부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발길이 이어졌다. 노란 리본을 한 손에 들고 온 고등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무거운 발걸음의 추모객들은 말없이 방파제 기억의 벽에 새겨진 글귀를 되새기면서 그날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기억했다. 이들은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대전에서 온 황미숙씨는 "11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평생 살아있는 동안 계속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밖에 없다"면서 "당시 단원고 학생들과 비슷한 연배인 자녀가 있다 보니 더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지인들과 함께 찾은 김상임(56·전주시 서신동)씨는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사고당시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하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사고 걱정 없는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부터 중간에 교통사고를 당한 2개월을 빼고 줄곧 팽목성당을 지키고 있는 손인성씨는 "우리가 세월호를 다시금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라며 "내년 세월호 기억식 때는 아직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비통한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유가족들의 해원이 꼭 이뤄지길 진심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한다"고 말했다. 

팽목기억관을 찾은 추모객들이 기억관 안에 걸린 희생자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새겨보며 위로한 뒤 나오고 있다.ⓒ시사저널 정성환

4·16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중간에 교통사고를 당한 2개월을 빼고 줄곧 팽목성당을 지키고 있는 손인성씨가 11년 전 당시 수습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다시 쓰는 그날…"가만히 있으라" 304명 목숨 앗아간 참사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30분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는 맹골도와 서거차도 사이에서 물살이 빠른 맹골수도로 진입했고, 맹골수도를 빠져나간 후 8시46분쯤 병풍도 해상에 진입했다. 세월호는 8시49분쯤 45도쯤 기울어졌고 갑판 외판의 루버 통풍구를 통해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9시50분쯤 선수와 객실 중앙부까지 침수가 시작됐고 세월호의 기울기는 62.8도가 됐다. 10시30분쯤 세월호는 뱃머리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앞서 오전 8시52분쯤 한 학생이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신고전화를 했다. 이 학생은 "살려주세요"라고 말하고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조 신호가 전달된 이후에도 승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은 침몰 때까지 15번이나 반복됐다. 이 와중에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먼저 탈출했다.

배에 승선했던 476명 중 자력으로 빠져나온 사람은 학생 75명, 교사 3명, 일반인 94명을 포함해 172명에 그쳤다. 당일 10시30분 이후 생존자는 없었다. 배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 325명도 타고 있었다. 이들 중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사망했다. 결국 304명이 사망하면서 대형 해상 참사로 기록됐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20㎞ 해상에서 인천을 떠나 제주로 가던 6825톤급 청해진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뱃머리만 남긴 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연합뉴스

산자의 11년…핵심적 의문 여전히 '미궁' 

이날 가라앉은 것은 비단 세월호 뿐이 아니었다. 진실도 침몰했다. 한국사회는 강산이 한번 변했지만 그날의 진실을 온전히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참사 직후부터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은 이어졌지만, 사고 전후의 핵심적인 의문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특별법에 의해 특별조사위원회, 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까지 세 차례 공적조사위원회가 가동됐으나 일치된 결론을 내놓지 못하고 표류했다. 유족과 국민들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국가 차원의 공식조사가 모두 끝난 이후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26일에 이어 지난 14일, 목포지방해양안전심판원(목포해심)은 특별심판부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조타장치 고장, 복원성 부족 등 선체 자체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다. 침몰원인을 내부 요인, 이른바 내인설로 판단한 것이다. 정부 차원의 첫 공식 판단이다. 

목포해심은 세월호의 급격한 선회는 조타기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봤다. 세월호는 당시 복원성이 현저히 낮아져 있는 상태였으며 여객 정원을 늘리기 위해 선체를 증·개축하면서 무게 중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복원성계산서에서 허용한 화물량도 1077톤보다 2배 많은 2214톤의 화물을 싣고 있었다.

화물을 고정하는 고박도 제대로 하지 않아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선회와 선체 기울기가 가중됐고, 외판 개구부로 바닷물까지 유입되면서 복원성을 상실하게 됐다는 게 목포해심이 내린 결론이다. 

반면 세월호가 잠수함 충돌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침몰한 것으로 의심하는 외력설은 완전히 배제했다. 외력이라고 단정할 만한 흔적(파공)이나 외력의 실체에 대한 타당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유가족 측은 외력으로 인한 침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장동원 4·16 세월호참사 유가족협의회 총괄팀장은 "세월호 특별법에 의거해 구성된 선체조사위원회가 내인설과 외력설 등 두 가지 안으로 결론을 지었는데 해심원에서 일방적으로 그렇게(내인설) 판단한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해진 해운과 선장, 선원 등 사고 관계자들은 해양심판원의 결정에 불복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어서 참사 원인이 밝혀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사참위는 2022년 9월 총 3년 6개월의 공식 활동을 마치면서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54개의 권고안을 내놓았다. 그 중 첫번째가 '국가 책임 인정과 사과'였다. 하지만 이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국가 책임자의 처벌은 단 한 명에 그쳤다. 검경 합수본이 38명을 기소했지만 전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현장 실무진이었던 해경 123정 정장만이 구조 부실 책임을 떠안고 징역 3년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지휘 윗선에 해당하는 고위 공직자들은 죄가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참사의 흔적' 세월호 참사 11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목포 신항만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표류하는 기억…'기억공간 조성' 사업 제자리

진실만 가라 앉은 게 아니다. 기억도 표류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또 다른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한 '기억공간' 조성 사업 또한 지지부진한 진상규명만큼이나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선체를 보존하고 이를 중심으로 기억과 교훈을 전할 '국립 세월호 생명기억관(가칭)' 조성사업 역시 제자리걸음이다. 전남도와 해양수산부는 목포 고하도 신항만 배후 부지에 약 3만4000㎡ 규모의 해상 매립지를 활용해 생명체험관, 4·16기억관, 세월호 선체 전시관, 생명공원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아직도 기초자료 조사용역이 진행 중이다.

전남도는 계획상 2026년부터 2029년까지 부지 조성과 시설공사를 거쳐 2029년 말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아직 부지 조성 공사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 완료 시점은 불투명한 상태다.

세월호를 둘러싼 지난 11년의 시간은 예전 그날에 멈춰 서있다. 무엇보다 참사에 대한 진실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정부 차원에서 총 세 차례에 걸쳐 진상 조사가 진행됐음에도 침몰의 원인을 둘러싼 내인설과 외력설의 충돌은 해심원의 1차 결론에 불구하고 논란이 종식되지 않고 있다. 304명의 사망·실종자를 만들고도 처벌받지 않은 국가와 책임자. 세월호 참사를 회고하는 국민들의 공분이 여전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