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트럼프카드' 하며 '트럼프관세' 기다려...중국판 용산 가보니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5. 4. 1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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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커마오전자성 트럼프 관세 앞두고 리스크에 매매 뚝 끊겨..."반도체 자립 기회 삼아야" 목소리도
15일 찾은 중국 베이징 커마오전자성 상가는 한산했다. GPU 등이 놓여있는 매대 곁에 상인들이 모여 트럼프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사진=우경희 기자

"가격이 오를지 말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베이징 최대 전자용품상점 커마오전자성(科貿電子城) 한 상인은 최신형 그래픽카드 가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숨부터 쉬었다. 전성기 대비 쇠락하긴 했지만 한국으로 치면 '용산전자상가' 격인 곳이다. 오가는 상인들과 흥정하는 목소리로 늘 문전성시다. 그러나 3~4층 PC 부품상점은 기자가 찾은 지난 15일, 평일 오후임에도 한산했다. 상인들은 호객을 포기하고 삼삼오오 트럼프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가격을 묻자 상인은 계산기를 들어 그래픽카드 가격을 9800위안(약 190만원)이라 찍어보였다. 대량 주문이 있느냐 물으니 "중간상들이 재고를 묶고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가장 비싼 CPU(중앙처리장치)·GPU(그래픽카드) 가격이 미국 반도체 관세 이후 어떻게 흘러갈지 전망 자체가 어려워서다. 다른 상인은 "다들 싸게 팔까 무섭고 (너무) 비싸게 팔까 불안한 상태"라고 했다.

트럼프 한 마디에...기업도 현장도 모두 "혼란스럽네"
커마오전자성 PC부품 매장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손님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매상인들은 "중간상들이 가격 인상을 기대하며 제품을 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사진=우경희 기자
트럼프의 반도체 관세는 16일 현재까지 유예 중이지만 언제고 다시 발효될 수 있다. 소매시장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반도체 탑재 제품 가격이 등락을 반복한다. 한 상인은 GPU 가격을 묻는 기자에게 "당장 다음주면 가격이 오를 테니 오늘 사시는 게 가장 싸다"고 했고, 옆 상점 다른 상인은 "트럼프가 아무리 세금을 올려도 우리에겐 아무 변화가 없다"고 했다. 벽을 사이에 둔 상인들의 전망이 엇갈린다.

가격이 오를 거라고 한 상인은 "미국 브랜드 제품을 많이 갖고 있는 집들은 아예 물건을 숨기고 내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조만간 오른 가격에 판매하겠다는 거다. 실제 인상 분위기도 읽혔다. 조립 PC를 파는 한 상인은 "대당 4000위안(약 80만원)에 맞췄던 사양인데 며칠 만에 6000위안(약 120만원)이 들더라"고 했다. 아직 관세가 발효조차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불안한 심리에 따른 가격변동일 터다.

가격이 오르지 않을 거라고 한 상인도 나름의 근거를 내놨다. "이미 미국산 제품 구경하기 어려워진지 오래"라는 거다. 이 상인은 엔비디아의 GPU 브랜드인 지포스 스텔라5080 제품을 내놨는데, 박스 옆에 '중국산'(Made in China) 마크가 선명했다. 미국산 반도체가 수입되지 않는데 어떻게 가격이 오르겠느냐는 거였다.

실제 미중 간 반도체 산업 디커플링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특히 미국산 고성능 반도체 칩의 중국 향 수출은 거의 완전히 막혔다. 트럼프가 이날 엔비디아의 중국용 모델 H20의 중국 수출 금지를 선언한 것은 이런 조치의 최종장이나 마찬가지다. 반대로 중국산 범용 반도체 미국 수입도 매년 급감한다. 2023년 기준 중국 전체 대미 수출의 5%가 반도체였는데, 작년엔 그나마 더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中 "트럼프 관세 부과, 국산화 가속화할 것"
한 GPU 판매점의 상인이 사진을 찍는 기자를 바라보고 있다./사진=우경희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반도체 관세" 한 마디에 중국 정부와 업계가 모두 혼란에 빠진 건 미중 간 반도체 및 반도체용 소재 공급 밸류체인이 아직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한 재중 한국 기업 관계자는 "트럼프의 반도체 관세 발언 이후 중국 정부와 중국 IT(정보통신) 기업들, 유통망과 소매상인들까지 모두 혼란에 빠졌다"며 "해관총서 등도 오락가락하며 제대로 데이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 유통되는 반도체 제품들은 대부분 대만이나 중국 본토에서 생산된다. 한국의 삼성이나 SK하이닉스도 중국향 제품은 대부분 중국공장에서 만든다. 중국 내 애플 공장으로 납품되는 반도체 역시 90%를 중국에서 만든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공장들은 대부분 원재료를 미국에서 들여온다. 미국의 관세 조정은 완제품 가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 완제품 가격 인상이 미국 브랜드에 다시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미국산 소재 가격이 오르고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 중국에서 생산된 애플 아이폰이나 테슬라의 전기차들 가격에도 상승 압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트럼프의 반도체 관세 정책이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보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중국 내에선 트럼프 반도체 관세 부과가 중국의 고성능 반도체 국산화를 가속화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장쥔야 투바오연구소 수석은 중국 언론에 "이번 관세전쟁이 중신궈지나 창신메모리의 고성능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붙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반도체 공급기업 관계자는 "이미 고객사와 대체 제품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며 "양산까지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대체 수요는 명확하다"고 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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