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할퀴는 HD현대의 중장비들

이오성 기자 2025. 4. 16.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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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HD현대의 중장비가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에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HD현대의 굴착기와 불도저로 가옥 파괴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2024년 9월10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아그지와 마을에서 무장병력의 감시 아래 가옥 철거가 이루어지고 있다. ⓒB’Tselem

3월2일 열린 제97회 아카데미상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은 〈노 아더 랜드(No Other Land)〉였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마사페르 야타라는 마을에서 벌어진 가옥 파괴와 강제 이주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이스라엘 정부가 자국민 정착촌을 짓기 위해 원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집을 파괴하는 모습을 고발한다. 팔레스타인 주민의 집이 무허가이거나 관련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다. 이 영화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평화 활동가가 공동 연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지난 1월15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휴전협정에 합의했지만 비극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3월18일 이스라엘 군은 하마스가 인질 석방을 거부하고 미국 측의 중재안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규모 공습을 재개했다. 3월3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건부는 공습 재개 이후 사망자가 100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무려 5만명을 넘었다. 3월24일에는 이스라엘 군이 테러리스트로 지목한 〈알자지라〉 기자 호삼 샤바트가 암살되기도 했다.

사망자가 속출하는 참혹한 전쟁의 이면에는 〈노 아더 랜드〉가 고발한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와 강제 이주 문제가 있다. 국내에서는 관련 뉴스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생소한 이야기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가옥 파괴 문제는 우리에게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가옥 파괴 현장에 국내 기업의 중장비가 쓰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3월27일 기자회견을 열고 HD현대의 중장비가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에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 측은 현지 인권단체와 협력해 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의 철거 현장 증거(사진 및 영상 347건)를 분석한 결과, 2019년 9월부터 2025년 2월까지 팔레스타인 주민이 소유한 구조물·주택·상점 59채가 HD현대 장비에 의해 철거되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주민 약 250명이 이재민이 됐다. 특히 집단학살이 자행되던 시기인 2024년 11월1일 가자지구 라파에서도 HD현대의 계열사인 현대인프라코어 장비에 의한 철거가 이루어졌다고 국제앰네스티는 주장했다.

“오전 6시, 현대 불도저가 집을 철거했다” 

HD현대는 건설 장비, 조선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지주회사다. 자회사인 HD현대건설기계는 굴착기, 휠 로더 등을 생산한다. 또 다른 자회사인 HD현대인프라코어는 2021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고 브랜드를 ‘데벨론’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시사IN〉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를 통해 가옥 파괴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인터뷰 내용을 확보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과 협력하여 HD현대 기계가 자신의 집을 철거했다고 밝힌 피해자들의 증언 8건을 수집했다. 이 가운데 3건을 관련 사진과 함께 공개한다. 피해 주민들은 인터뷰에서도 가옥 피해 외에 과도한 벌금과 이스라엘 정착민에 의한 협박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소하이브 라자브 

나이:33세, 철거일:2023년 10월18일

저는 동예루살렘의 베이트하니나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 셋을 둔 아빠이고, 세차장에서 일합니다. 저는 아버지 가족과 함께 이층집에 살았습니다. 집은 두 차례 철거되었습니다. 첫 번째 철거는 2021년으로 제가 사는 층이 헐렸습니다. 이후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함께 아래층에서 생활했지만, 2023년 10월 아버지의 집도 철거되면서 두 가족 모두 살 곳이 사라졌습니다. 불도저 두 대가 오전 6시에 집을 철거했는데, ‘현대(HYUNDAI)’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집 없이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지금은 집 두 채를 빌려 월세를 내고 살고 있습니다.

소하이브 라자브 씨(왼쪽)가 가족과 함께 부서진 집 잔해 위에 서 있다. ⓒB’Tselem

우리 가족의 고통은 2016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시 점령 당국은 우리가 사는 마을을 재정비하면서 마을의 주택 다섯 채에 철거 명령을 내리고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1996년에 지은 우리 집이 무허가라는 이유로 벌금 25만6000셰켈(약 9900만원)을 부과했습니다. 당국은 아버지의 건물 허가 신청을 계속 거절해왔습니다. 2023년에는 추가로 벌금 5만 셰켈을 부과했고, 결국 철거가 집행됐습니다. 우리는 벌금 5만 셰켈을 매달 1000셰켈씩 나누어 납부하고 있습니다.

철거 두 달 전, 법원은 우리의 이의신청을 기각하면서 최종 철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명령에 따르면 우리 가족이 직접 철거해야 했지만, 우리 가족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시민이 자체 철거를 거부할 경우 당국은 철거에 동원된 불도저와 작업자에 대한 비용을 청구합니다. 철거 비용을 납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떤 법적 조치가 취해질지는 모릅니다.

우리 집은 철거되었고, 가진 돈은 바닥났습니다. 가진 집을 잃고 월세를 내는 건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담입니다. 마치 목 앞에 칼이 매달려 있는 느낌입니다.

아브델 라힘 

나이:57세, 철거일:2023년 9월18일

저는 농업과 목축업에 주로 종사하며 서안지구 알지프틀리크 마을에서 수십 년간 살았습니다. 가족은 아이 3명 포함 9명입니다. 저는 이스라엘 점령군의 계속되는 인권침해로 여러 차례 이재민이 되었고, 목초지에서도 쫓겨났습니다.

2023년 9월18일 아침은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군용 지프차, 민정청 차량 여러 대, 군인들이 갑자기 나타나 집을 둘러쌌습니다. 가족이 머물기 위해 제가 짓고 있는, 아직 다 완성되지도 않은 벽돌집이었습니다. 커다란 불도저를 보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불도저 뒤쪽과 앞쪽에는 ‘현대(HYUNDAI)’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도저는 모든 걸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델 라힘 씨는 “매일 폐허를 바라보며 집이 부서지던 순간을 떠올린다”라고 말했다. ⓒB’Tselem

저는 매일 집들이 철거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철거에는 대형 불도저가 사용됩니다. 이렇게 커다란 장비를 두 눈으로 보면 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불도저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주변이 전부 파괴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인들과 그 지원 인력, 운전기사들은 무자비합니다.

남은 건 폐허뿐입니다. 매일 폐허를 바라보며 저는 집이 부서지던 순간을 끊임없이 떠올립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 장비가 나타난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이며, 물탱크 및 다른 주거용 건물이 파괴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땅에서 가족과 함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은 부서져버립니다.

야쿠브 이스하크 

나이:35세, 철거일:2024년 7월4일

저는 서안지구 남쪽의 비린 마을에서 아내, 아이 셋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배관공으로 일합니다. 2019년 점령 당국은 제 첫 집을 철거했습니다. 2020년 다시 집을 지었고, 같은 해에 또 철거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2024년 7월4일 군용 지프차 4대, 현대 굴착기 한 대와 불도저 한 대 등이 도착했습니다. 중무장한 군인 30여 명은 우리에게 집에서 100m 떨어지라고 했습니다. 작업자들은 집으로 들어가 냉장고, 옷장, 가구 등을 바닥에 던져 박살냈습니다. 그리고 현대 굴착기가 집 지붕을 허물었습니다. 90㎡(약 27평) 넓이의 집이 파괴되는 데는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동네의 다른 집 9채도 같은 방식으로 철거했습니다. 같은 마을의 아홉 가족이 갈 곳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땅에 텐트 다섯 개를 쳤습니다. 밤 10시경 군복을 입은 이스라엘 정착민 세 명이 나타나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총을 겨누는 바람에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제 아내, 아이들, 이웃 여성에게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10분 정도 뒤에 자리를 떴습니다.

2024년 8월7일 군인과 행정 당국 사람들이 텐트 다섯 개를 압수해 갔습니다. 저는 마을에 카라반을 설치할 계획입니다. 점령 당국이 철거하더라도 다시 집을 지을 겁니다. 점령 당국은 마을에 원래부터 살고 있던 우리의 집을 계속 철거하고 있습니다. 한편 정착민들을 위한 건물을 짓고, 도로를 놓고, 전기와 수도를 끌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를 우리 땅에서 쫓아내고 정착민들에게 넘기려는 정책입니다.

HD현대 “중고 제품 용처에 관여할 수 없어”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2009년부터 가자지구에서 주택·농로·필수 기반시설 등 1만2000개 이상 구조물을 철거했으며, 이로 인해 최소 2만명 이재민이 발생했다. 2023년에 건물 1177채, 2024년에는 1768채가 파괴됐다고 유엔은 추산했다.

무력분쟁 상황에서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국제인도법(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은 군사작전의 필요성이 없을 경우 점령국이 개인 소유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주민 안전을 위한 일시적 대피 등 사유가 아니고서는 점령지 주민을 강제로 내쫓아서도 안 된다. 국제앰네스티는 “군사적 필요성이 없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의 건축물을 철거하는 것은 중대한 국제인도법 위반으로, 4차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가옥 파괴의 1차 책임은 이스라엘 당국에 있다. HD현대 측으로서는 외국에서 자신의 장비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The 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은 ‘모든 기업은 공급망 전반에 걸쳐 기업활동이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방지·완화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신의 사업이 무력분쟁이나 점령지와 관련됐을 경우 국제인도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도 있다.

HD현대가 팔레스타인에서 비판 대상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매우 낯설지만 세계적으로 활발히 전개되는 캠페인이 있다. 2005년부터 시작된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운동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며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기업 등에게 불매·투자 회수·제재 압박을 가하는 글로벌 시민운동이다. 국내 기업 중에는 HD현대가 볼보(스웨덴), 캐터필러(미국), JCB(영국) 등 중장비 기업과 함께 그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들 기업의 기계가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와 강제 이주에 사용되었다는 이유다. BDS 운동은 2017년부터 현대중공업(HD현대의 전신)을 불매 및 투자 철회 대상으로 삼고 압박해왔다.

3월27일 국제앰네스티,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주주총회가 열리는 HD현대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HD현대 측은 인권침해 현장에 자사 장비가 사용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시사IN〉의 질의에 “팔레스타인 현장에서 사용된 장비는 중고 장비로 추정되며 제조사에서 중고 제품의 용처와 재산권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 이스라엘에 제품 수출을 중단하고, 분쟁지역에 실사단을 파견해 장비를 회수하라는 등의 요청은 임직원의 안전과 민간기업 경영권 측면에서 무리한 요구다”라고 밝혔다.

HD현대의 답변에 대해 국제앰네스티 측은 “중장비의 경우 한번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특정 부품에 대한 보수 및 프로그램 업데이트가 필요해 현대와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을 수 없다. 공급망에서 비롯된 모든 단계마다 인권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게 기업의 의무다”라고 반박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앞으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회사인 블랙록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에게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에 연루된 기업에 대한 투자 중단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HD현대에 ‘팔레스타인 불법 철거 공모 중단’을 요구하는 온라인 탄원을 진행 중이다(amnesty.or.kr/onlineaction/132757).

〈뉴욕타임스〉는 3월16일 〈노 아더 랜드〉를 소개하며 마사페르 야타 지역 인근 한 마을 촌장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전한다. “이스라엘 군인과 정착민들이 마을을 부수러 쳐들어올 때마다 우리와 함께 먹고 자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 편에 서서 매일 지치지 않고 함께 싸워줬습니다. 저는 모든 영화평론가에게 저희 마을에 와서 딱 일주일만 같이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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