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66] 기본이 최고다

택배품 뜯을 때 쓰는 전용 커터를 샀다. 벌써 세 번째 택배 커터다. 원래 택배 커터를 살 마음은 없었다. 일반 커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택배 상자를 개봉하다 손에 힘을 너무 줬다. 손이 엇나갔다. 피를 봤다. 치루 수술 이후 그렇게 피를 많이 보기는 처음이었다.
택배를 보낸 사람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꼼꼼하게 포장하는 건 좋다. 재활용 상자를 스카치테이프로 아주 밀봉해서 보내는 사람이 있다. 깔끔하게 뜯으려면 참치 해체 전문가를 불러야 할 지경이다. 그 상태로 우주로 쏴 올려도 물건은 안전할 것이다.
택배 커터를 검색했더니 너무 많은 제품이 쏟아졌다. 요즘은 뭘 검색하면 모든 소셜미디어에 비슷한 광고가 뜬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 밤이고 낮이고 요즘은 스마트폰이 다 듣는다. 뭘 사야 할지 몰라 추천평 많은 걸 샀다. 추천평은 믿어서는 안 된다. 진짜 구매자가 썼는지 알 길이 없다. 항상 속으면서 또 속는다.
두 번째 택배 커터를 쓰다가 또 화가 났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처럼 온갖 기능이 달린 디자인이다. 온갖 기능이 달린 건 믿어서는 안 된다. 그건 ‘사실은 별로 제 기능을 못 하지만 여러분을 현혹하기 위해 뭐든 다 달아봤어요’라는 의미다.
세 번째 구매에서 성공했다.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이다. 톱날과 플라스틱 손잡이가 전부다. 복잡하게 생긴 커터보다 훨씬 일을 잘했다. 톱날은 무뎌 보이지만 절삭력이 좋다. 테이프 끈끈이도 묻지 않는다. 자석이 있어 냉장고에 붙여둘 수도 있다. 잃어버리기 어렵다.
요즘은 뭐든 기능이 참 많다. 사람도 기능이 많다.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달린 경력이 프루스트 소설만큼 길다. 이렇게 많은 전문가가 존재하는 시대도 처음이다. 택배 커터는 디자인이 화려할 필요가 없다. 설명서가 길 필요도 없다. 택배 상자만 잘 개봉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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