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만에 쫓겨나 불법으로 내몰리는 조선업 이주노동자

주성미 기자 2025. 4. 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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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울산이주민센터에서 만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찬나 차라즈가 현대중공업 조선용접공으로 일하다 퇴사한 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주성미 기자

“일하고 싶어 한국에 온 건데, 이렇게 쫓아내면 어떡해요? 불법하러 온 거 아니에요.”

15일 오후 울산이주민센터에서 만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찬나 차라즈(46)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는 2023년 말 입국해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에 일반기능인력비자(E-7-3) 조선용접공으로 입사했다. 첫 계약 1년, 이후 3개월 계약 연장을 한 차라즈는 지난달 말 더는 계약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 쪽의 정기 용접기술 평가에서 비(B)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다.

차라즈는 정작 “현장에서 용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비교적 우리말에 익숙한 차라즈는 내국인 관리자와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현장 통역사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차라즈는 잔심부름을 하는 날이 더 많았다고 했다. 평가를 앞두고는 벼락치기 연습을 했단다.

계약 종료 뒤 구직비자(D-10)를 받은 차라즈는 “울산, 경주, 거제로 뛰어다녀도 조선용접공 일자리를 못 구했다”고 말했다. 일자리가 많지도 않은데다 일반기능인력비자 이주노동자 채용 절차가 까다롭다는 이유로 손사래를 쳤다고 했다.

현대중공업 조선용접공으로 일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무디다 마노즈가 15일 체류허가 신청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아직 구직비자를 받지 못했다. 주성미 기자

차라즈와 함께 현대중공업 조선용접공으로 일한 무디다 마노즈(44)는 2월 말 퇴사했다. 마노즈는 자발적 퇴사 형식이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상황이다. 일반기능인력비자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휴·폐업 등이 아니면 원칙적으로 근무처를 바꿀 수 없는데도, 사 쪽은 ‘이직’이라고 마노즈의 사직원을 받았다. 마노즈는 지난달 14일 뒤늦게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구직비자 신청을 했지만, 아직 비자를 받지 못했다.

마노즈는 “언제 불법체류자가 될지 몰라 불안하다. 한국에 올 때 비자를 받느라 수수료라고 빚을 잔뜩 냈다. 메인 컴퍼니(대기업)라고 해서, 돈도 많이 벌 거라 생각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직’이라고 사직원을 쓴 일부 이주노동자는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가 불법체류자가 됐다.

차라즈와 마노즈처럼 직영 계약한 이들에게 애초 약속된 급여는 국민총소득(GNI)의 80%다. 2023년 국내 1인당 국민총소득이 4724만8천원인 것을 고려하면 연봉 3700만원 수준이다. 300만원 안팎의 월급을 기대했지만, 정작 이들이 손에 쥔 돈은 200만원 남짓이다. 연장 노동을 하지 않으면 190여만원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 직영 이주노동자로 근무한 차라즈의 지난해 7월 급여명세서. 차라즈 제공

지난해 7월 차라즈의 급여명세서를 보면, 기본급 204만여원과 각종 수당을 포함해 지급된 총액은 283만여원이지만, 4대 보험 등을 공제한 세후 급여는 195만2990원이다. 가장 많이 공제된 항목은 외국인생활지원비로 51만6500원이다. 기숙사비 5만원과는 별개이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떼어간다.

이와 관련해 에이치디현대중공업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을 했지만, 회사는 입장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15일 오후 울산이주민센터에서 조선업 이주노동자 관련 긴급 잡담회가 열린 가운데 김현주 센터장이 이주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성미 기자

이날 울산이주민센터에서 마련된 조선업 이주노동자 관련 긴급 잡담회에는 차라즈와 마노즈를 포함해 현대중공업·현대미포와 직영 계약을 했다가 현재는 일자리를 잃은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9명이 참석했다. 김현주 울산이주민센터장은 “인구 문제의 해결책인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을 데려온 뒤 현장에서는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진정한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2023년 9월, 현대미포는 그보다 앞선 2023년 7월부터 일반기능인력비자 이주노동자를 직접 채용했다. 올해 1월 말 기준으로 두 대기업이 직접 고용한 이주노동자는 1400명이 넘는다. 지난달 말부터 계약 만료로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쪽은 “100여명이 계약 만료됐거나 만료를 앞두고 있다”고 했고, 사 쪽은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두 대기업 사내협력사 이주노동자는 6500여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26%에 이른다.

울산시와 경남도는 내년까지 광역형 비자 시범사업으로 일반기능인력비자 조선업 이주노동자 1310명을 더 데려오려다 심의 보류로 제동이 걸렸다.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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