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77] X 부인의 초상화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1856–1925)는 미국 출신 화가로, 19세기 말 유럽 상류층의 세련된 이미지를 화려한 붓질과 세밀한 관찰력으로 포착해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남긴 초상화 수백 점 가운데 사전트 스스로가 ‘최고 작품’이라고 단언한 건 바로 이 ‘X 부인의 초상화’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버지니 고트로. 프랑스 은행가의 미국인 아내였던 그녀는 특이한 미모와 대담한 행각으로 파리 사교계를 사로잡았다. 초상화란 모델이 화가에게 의뢰하는 법이지만, 이 초상화만큼은 화가가 고트로 부부를 설득한 끝에 성사됐다. 같은 미국인으로서 파리에서 성공을 꿈꾸던 젊은 화가 사전트는 최고 유명인의 초상화를 그려내면 상류층 고객이 줄을 서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의 시선은 그녀의 뾰족한 콧날, 날렵한 턱선, 팽팽한 목선을 타고 내려가 훤히 드러난 풍만한 상체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심지어 원래 그림에서는 드레스의 한쪽 어깨끈이 흘러내려 있었다. 아름다움을 넘어 도발적이고, 고상하기보다는 오히려 천박했던 이 초상화에 대해 대중은 일제히 조롱과 비난을 퍼부었다. 손가락질을 견디지 못한 고트로는 사교계를 떠났고, 사전트 또한 런던으로 이주해야 했다.
사전트는 고트로가 사망한 이듬해인 1916년에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이 그림 판매 의사를 전했다. 사전트의 걸작을 눈앞에 둔 박물관에서는 일주일도 안 돼 구입을 결정했다. 그때까지 삼십 년이 넘도록 사전트는 이 그림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고, 제목 또한 누구나 다 아는 그 이름 대신 ‘X 부인’이라고 고집했다.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큰 상처를 입힌 이에 대한 예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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