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시대정신] ‘지브리’ 열풍 속 한 소년이 떠올랐다
伊서 아르헨티나로 먼 여정 떠나
일자리 찾아 먼 타국 간 엄마처럼
시대의 격랑, 서민의 삶 뒤 흔들어
온라인 세상이 ‘지브리풍’ 이미지로 뒤덮였다. 지난 3월25일 챗GPT가 이미지 생성 기능을 업데이트하자 너도나도 사진을 올리며 “지브리처럼 그려줘”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선한 눈빛과 온화한 표정으로 다시 태어났다. 탁했던 하늘엔 흰 구름이 번지고, 풀숲은 비 개인 여름마냥 되살아났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원작은 19세기 말에 쓰였다. 원제는 ‘아펜니노산맥에서 안데스산맥까지’. 1886년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아미치스가 쓴 ‘사랑의 학교’에 실린 단편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을 위한 오랜 전란 끝에 국민 대다수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비옥한 팜파스와 철도 인프라를 기반으로, 밀과 소고기를 세계로 실어나르던 신흥 부국이었다. ‘남미의 파리’라 불리며 번창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유럽 각국의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자유무역의 시대가 저물고, 보호무역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1873년 ‘대불황(The Long Depression)’이 유럽 경제를 강타하자, 독일은 1879년 비스마르크 보호관세법을, 프랑스는 1892년 멜린 관세를 도입했다. 미국은 1890년 매킨리 관세법을 통해 무려 48.8%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수많은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마르코의 엄마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한 희망의 발길은 끊긴 지 오래다. 아르헨티나는 수출에만 의존한 초기 성장 이후, 외채 의존과 포퓰리즘 정책, 부정부패, 정치 불안,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악순환 속에서 국가적 위기를 반복해 왔다. 총 아홉 차례의 국가부도를 겪으며 ‘디폴트의 나라’라는 오명을 얻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자 열광하던 국민 사이에선 “메시, 벗 메시(Messy, but Messi)”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모든 게 엉망(messy)이지만, 우리에겐 메시(Messi)가 있다”는 자조 섞인 위안이었다.
그러나 2023년, 연간 인플레이션이 200%를 넘나들던 경제 혼란 속에서, 아르헨티나 국민은 뼈를 깎는 구조개혁을 내건 하비에르 밀레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눈앞의 달콤함 대신 미래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기로 한 결단이었다.
올해 초 아르헨티나의 월간 인플레이션은 2%까지 떨어졌다.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재정 흑자도 기록했다. 재정 긴축, 공공 보조금 축소, 친기업 개혁이 이어지며 국제사회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률을 5%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내수 위축과 여전히 높은 빈곤율, 거세지는 거리의 저항이 힘겨운 숙제로 남아 있다.
19세기 말, 자식을 두고 대서양을 건너야 했던 마르코의 엄마처럼, 시대의 격랑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제일 먼저 뒤흔든다. 역사는 몇몇 거인의 이름으로 쓰이지만, 실제로 그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건 이름 없는 이들의 하루하루다. 지브리풍 온화한 색으로 채색됐지만 가장 처절한 시대의 기록인 140년 전 동화가 다시금 마음을 건드리는 건, 그 시절의 고단한 발걸음이 지금과 멀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향해 관세 전쟁을 선포하고 영토와 주권 문제까지 테이블에 올린 트럼프 이후, 세계는 다시 19세기식 ‘힘의 논리’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여전히 내부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한국의 거취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위축된 경제와 정치적 혼란 속에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다. 정치권은 여전히 진영 논리에 몰두하고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누가 민초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선거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을 바꾸는 선택지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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