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석열 ‘국헌문란 폭동’ 부인, 국민은 그날 헛것을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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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14일 열린 '12·3 내란' 사건 첫 재판에서 비상계엄이 "평화적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었다고 망발을 했다.
지난해 12월3일 밤 국민들은 윤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특수부대 병력들이 국회를 침탈하는 것을 똑똑히 봤다.
윤 전 대통령이 이처럼 염치없게 구는 건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국민의힘 탓이 크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이 윤 전 대통령의 지지를 애걸복걸하는 한 그의 뻔뻔함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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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14일 열린 ‘12·3 내란’ 사건 첫 재판에서 비상계엄이 “평화적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었다고 망발을 했다. 그는 “몇시간의, 비폭력적 사건을 내란으로 구성한 건 법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했다. 지난해 12월3일 밤 국민들은 윤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특수부대 병력들이 국회를 침탈하는 것을 똑똑히 봤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 행위가 낱낱이 밝혀졌다. 이것이 ‘평화적 계엄’이라니, 국민들은 그날 헛것을 봤단 말인가.
윤 전 대통령이 이날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하며 쏟아낸 궤변은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우리 군을 군정과 쿠데타에 활용한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다”, “누구를 체포하라고 이야기했단 것은 새빨간 거짓말”, “계엄을 선포한 이유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걸 지키기 위한 것” 등 하나같이 망발에 가까운 주장이다. 가장 볼썽사나운 건 자신의 명령을 따랐던 부하들을 비난한 것이다. 그는 “(수사) 초기 겁을 먹은 사람들이 수사기관의 유도에 따라 진술한 것들이 검증 없이 (공소장에) 많이 반영됐다”고 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진실을 말한 군인들을 깎아내리는 게 전직 국군통수권자가 할 일인가.
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결정으로 파면된 뒤에도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안 했다. 지난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를 나와 서초동 사저로 돌아갈 땐 “다 이기고 돌아왔다”, “(대통령) 5년 하나 3년 하나 마찬가지”라며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행세했다. 지난 4개월간 국민과 나라에 끼친 고통과 폐해에 대한 반성과 책임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이 이처럼 염치없게 구는 건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국민의힘 탓이 크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이 윤 전 대통령의 지지를 애걸복걸하는 한 그의 뻔뻔함은 계속될 것이다. 유독 윤 전 대통령에게 과도한 특혜를 베푸는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이날 법원은 윤 전 대통령의 지하 주차장 이용을 허가하고, 언론의 법정 촬영은 불허했다. 역대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공개 출석하고 법정 촬영도 했다. 앞서 지귀연 판사는 70년 동안 구속 기간을 ‘날’로 계산해온 것을 ‘시간’으로 해야 한다며 윤 전 대통령을 풀어줬다. 그의 부하들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 국민들은 사법부가 ‘내란 우두머리’를 제대로 단죄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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