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장하준의 ‘대선 제안’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모두 힘을 합쳐 ‘반트럼프’ 전선을 구축하면 좋겠지만 다른 나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다. 트럼프의 전략은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이다. 협상 대상 국가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하고, 나라별로 따로 협상해 이득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첫 번째 협상 대상이 된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닌 것 같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14일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에 따른 대미 협상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인도와 같은 3개국과는 ‘즉각 협상을 진행하라’고 밑에 지시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하준 교수(영국 런던대 경제학과)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결코 서두르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으로 권력 공백 상태인 점을 미국에 설명하고 협상을 미뤄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이 트럼프 비위 맞추기를 그만둬야 한다”며 “미국에 매달리면 봉변당할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과의 정부 대 정부 협상이지만 이번 한·미 관세 협상으로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한국 국민과 기업이다. 신속한 협상이 아니라 국민과 기업이 이해하고 감내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한 대행이 치적을 위해 협상을 서두르다 국익을 훼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장 교수는 이번 기회에 ‘미국 의존 축소’ 전략을 산업 부문에서 국가 차원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겠지만 10~20년 중장기적으론 분명히 길이 있다.
장 교수는 더불어민주당까지 앞다퉈 감세를 내세우는 정치권에도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한국의 출생률은 세계 최저이고 자살률, 노인빈곤율, 남녀 임금 격차는 OECD 1위”라면서 “지금은 오히려 증세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비판이나 증세는 한국 정치에서 금칙어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위기는 감세와 탈규제 등 그동안 해온 방식으론 결코 극복할 수 없다. 대선을 앞두고 시민과 위정자 모두 장 교수의 제언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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