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국민 PC’ 이끈 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회장 별세

국내 개인용 컴퓨터(PC) 대중화와 인터넷 보급에 선구적 역할을 한 이용태(92)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이 명예회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연구원, 한국전자기술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그는 일찍이 컴퓨터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이 명예회장은 “1969년 말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 인텔에서 반도체 칩이 개발됐다”며 “이 칩을 잘 활용하면 유용한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시 연구원 신분이었던 그는 정부에 ‘컴퓨터 생산 기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명예회장은 “10년 가까이 정부를 설득해도 통하지 않아서 직접 나가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렇게 1980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동료 6명과 함께 청계천 세운상가에 삼보컴퓨터의 전신인 삼보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이듬해 삼보엔지니어링은 국내 최초의 PC인 ‘SE-8001’를 내놓았다. 삼보엔지니어링은 외국의 PC를 들여와 이를 분해해 분석했고, 자체 기술을 포함한 여러 부품을 조립해 첫 PC를 만들어냈다. 삼보 이후 금성사(현 LG전자)·삼성전자·대우전자 등 대기업도 PC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며, 관공서나 기업이 아닌 가정에 본격적으로 PC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삼보컴퓨터는 한때 ‘국민 PC’로 불리면서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이 명예회장은 한국 인터넷의 개척자로도 평가받는다. 그는 1996년 한국전력과 함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회사 ‘두루넷’을 설립했다. 두루넷은 한국전력이 설치한 광케이블망과 지역 케이블TV망을 이용해 초고속 인터넷을 국내 처음으로 서비스했다. 두루넷의 성공을 본 KT와 하나로가 시장에 뛰어들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한 덕분에 한국의 세계 인터넷 보급률은 최고 수준이 될 수 있었다. 두루넷은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다. 이 명예회장은 무선호출(삐삐) 서비스 회사 나래이동통신을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대기업의 시장 진출과 대만·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회사가 경영난에 빠졌고, 이 명예회장은 2016년 개인 파산 신청을 했다. 부도 처리된 삼보컴퓨터는 2012년 차남 이홍선씨가 이끄는 나래텔레콤(현 TG나래)에 인수됐다. 이 명예회장은 삼보컴퓨터 회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한국정보산업연합회 명예회장을 맡아 한국 전자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이 명예회장은 교육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1987년 설립된 박약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박약회는 군인과 학생들을 위한 인성 교육 사업을 하는 단체다. 박약은 논어의 박문약례(博文約禮·널리 학문을 닦고 예를 지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위증씨와 장남 이홍순 삼보컴퓨터 고문, 차남 이홍선 TG나래 회장, 장녀 이한경, 차녀 이경순, 삼녀 이임순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02)923-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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