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분명 빛나게 될 반가운 신인 배우들의 향연('언슬전')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5. 4. 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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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캐릭터와 더불어 성장할 배우들의 서사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저런 사람은 의사하면 안되는 거 아니예요?"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차 김사비(한예지)에게 환자가 불만을 토로한다. 열감이 느껴진다고 하는데 또박또박 의학적인 설명만 덧붙이고 심지어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 아닌가"라고 답변하는 김사비에게 환자는 열통이 터진다. 의학적으로는 틀린 말이 없지만 환자에 대한 배려가 모자라는 김사비다.

tvN 토일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에 등장하는 전공의들은 김사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저마다 모자라는 면이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의사로서는 부족한 면이 한 가지씩은 있다. 오이영(고윤정)은 졸부 집 늦둥이로 부족한 것 없이 자라났지만 병원 개원해준다는 아빠 말이 물거품이 되면서 의사의 길도 접었던 인물이다. 어느새 다 써버린 마이너스 통장 5천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레지던트 재수생을 하게 됐다. 의사생활의 보람이나 의미 같은 가치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멋있을 줄 알고 의사를 선택했지만 현실의 초라함 때문에 늘 잘 나가는 인스타 속 남들과의 비교에 고개를 떨구는 표남경(신시아)도 그렇고, 전직 아이돌 출신 최초의 전공의가 됐지만 뭐 하나 잘 하는 것이 없이 늘 꼴찌를 못면하고 하는 일마다 헛다리를 짚는 엄재일(강유석)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모자라다. 그런데 이 모자란 이들이 생명을 탄생시키고, 때론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는 산부인과 병동에서 일을 해야한다는 게 이 드라마가 만들어놓은 허들이다. 과연 이들은 저마다의 모자람을 채워나감으로써 이 만만찮은 허들을 넘을 수 있을까.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신원호 감독 이우정 작가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지만 그 세계는 사뭇 다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의사들이 모든 걸 다 갖춘 육각형 천재의들의 일상까지 슬기로운 이야기를 담는 드라마였다면,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병아리 의사들이 그럼에도 하루하루 병동에서 의사, 환자들과 부딪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드라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담는 서사는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비교해보면 소박하고 소소하기 이를 데 없다. 김사비가 마주한 문제는 생사를 오가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의학적 지식을 그 누구보다 갖추고 있지만 아직은 환자들과의 소통이 부족한 전공의가 마주한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단절됐던 소통이 김사비만의 언어로 다시 열리고 환자와 마음을 나누는 성장과정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오이영은 명은원(김혜인) 같은 기분 나쁘게 갑질하는 산부인과 치프 레지던트 때문에 오해받는 힘겨운 상황을 맞이하자 전공의 생활을 그만두려 가방을 싸들고 나온다. 하지만 그런 낌새를 알아차린 레지던트 4년차 선배 구도원(정준원)이 오해를 풀어줌으로써 계속 일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표남경은 까다롭게 드레싱을 요구하는 환자 때문에 힘겨워 하지만 그 환자가 3년 간이나 항암치료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환자와 눈물겨운 화해를 한다. 마찬가지로 사고뭉치라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 여겼던 엄재일은 동기들이 찾아주는 것에서 희망을 느끼고 그것이 선배들의 배제가 아닌 배려였음이 드러난다.

즉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아직은 병아리인 전공의들을 내세워 소박하지만 결코 이들에게는 작지 않은 사건들을 통해 그 고충 속에서도 펼쳐지는 감동의 순간 같은 것들을 담아낸다. 그래서 처음 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들과는 사뭇 달라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차츰 들여다보면 이 하나하나의 인물들이 조금씩 매력을 발휘하며 성장해가는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더더욱 의미있게 하는 건 아무래도 신인 배우들이 대거 기용되었다는 점일 게다. 제작비 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고윤정을 빼놓고는 신시아, 강유석, 한예지, 이동혜, 홍나현 같은 배우들은 아직 시청자들에게는 낯설다. 구도원이라는 인물로 사실상 이 전공의들을 보듬어주는 따뜻한 울타리 역할을 연기하는 정준원도 마찬가지다. 신인이지만 2회 만에 이들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배우들도 주목하게 만드는 건 이 작품의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언젠가는 슬기로울'이라는 수식어는 그래서 이들 배우들에게도 통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 작품이 끝날 즈음이면 이 배우들 역시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존재들로 거듭나지 않을까. '언젠가는 분명 빛나게 될' 반가운 배우들의 향연이 기대되는 작품. 바로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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