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X가리’라 무시하지 마...양식장 운영하고 산불까지 막는다는 이 동물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5. 4. 1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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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44] 먹고사는 문제는 모든 존재의 화두입니다.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합니다. 입는 것도, 노는 것도, 살아갈 공간을 찾는 것도 모두 배가 든든한 다음에 걱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 엄니 밥줘야 해유.” 피터르 브뤼헐의 ‘추수기’. 1565년 작품.
구석기 시대에 수렵 채집했던 인류가 농경이라는 혁명을 이뤄낸 배경에도 배곯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다음 해 수확하는 농경은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렸습니다. ‘잉여 생산물’의 등장이었습니다. 이런 든든한 기반 속에서 인간은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농경’을 인간이 일궈낸 가장 위대한 혁명이라고 부르는 배경입니다.

이 혁명 역시 인간이 독점한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이 동물은 자신의 먹을 걸 직접 재배(?)합니다. 직접 경작한 땅에 먹잇감이 몰려들기를 기다립니다. 부드러운 흙에 벌레들이 제법 자리를 잡으면 와서 맛있게 식사를 즐깁니다. 호주의 국조(國鳥)인 큰거문고새의 이야기입니다.

큰거문고새. 19세기 묘사 그림.
자연의 성대모사꾼 큰거문고새
큰거문고새는 아름답기로 이름났습니다. 100cm 거대한 크기도 크기지만, 은빛의 화려한 꼬리를 가지고 있어서입니다. 이 새의 영어 이름은 리라버드인데, 펼친 꼬리 모양이 고대 그리스에서 연주되는 악기 리라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이름으로도 거문고새라고 이름 붙은 배경입니다.

거문고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인지, 소리를 잘 내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는 ‘성대모사’ 능력입니다. 코알라 소, 개 소리(욕 아닙니다)까지 따라 할 정도입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부터는 자동차 엔진소리, 경보 소리, 카메라 셔터소리까지 구현합니다.

“사랑해, 사랑한다고.” 성대모사의 달인인 큰거문고새. [사진출처=fir0002]
거의 녹음기를 틀어놨다고 생각할 만큼이나 정확한 소리입니다.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서 모사 능력을 발전시켰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출중한 능력으로 호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분에, 거문고새는 호주 10센트 동전 뒷면에도 새겨집니다.
농사도 짓는 능력
거문고새의 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놈들은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닙니다. 무엇보다 먹을 것을 구하는 데도 천부적입니다. 큰거문고새의 먹이는 무척추동물입니다. 바퀴벌레, 딱정벌레, 파리나 나방의 유충 등등. 큰 거문고는 애써 한 마리 한 마리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대신 ‘양식장’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발로 직접 숲속에 땅을 헤집어 놓는 것입니다. 나뭇잎과 같은 유기물질이 땅속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벌레가 모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곡괭이로 땅을 경작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부지런히 땅을 갈아야 벌레님들이 오시지.” [사진출처= Lip Kee]
호주 라트로브대 연구팀은 큰거문고새의 경작 행위로 땅속 유기물질이 최대 52%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 유기물질을 먹기 위해 벌레가 모입니다. 이 벌레는 큰거문고새의 먹잇감이 됩니다. 과학자들이 이를 ‘벌레농사’라고 이름 짓는 배경입니다.

‘새 짓’이라고 무시할 일이 아닙니다. 호주 전역 1700만 ha 숲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숲의 토양은 큰거문고새의 곡괭이질로 풍요롭기 그지없습니다. 1ha당 약 150톤의 낙엽과 토양이 뒤집히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균류-곤충류-조류-작은 포유류로 이어지는 먹이사슬도 튼튼합니다.

“느낌이 와...풍년의 느낌이...” [사진출처=CSIRO]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동물도 이처럼 농사짓지 못합니다. 큰거문고새를 생태계의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이유기도 합니다.

호주의 고질적인 문제도 큰거문고새가 해결책을 제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건조한 기후에서 오는 잦은 산불 문제입니다. 큰거문고새는 주로 낙엽을 땅속으로 넣는 역할을 하는데, 이로써 불쏘시개가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고자 하는 일이 화마를 막는 긍정의 나비효과로 작용한 셈입니다. 화마로 고통받은 우리에게도 거문고새의 기운이 어느 때보다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주가 국조로 삼는 큰거문고새.
<세줄요약>

ㅇ호주의 국조 큰거문고새는 흙에 발길질을 하면서 나뭇잎을 땅 속으로 밀어넣는 행위를 한다.

ㅇ며칠 후 이 땅에 유기물질이 많아지면서 큰거문고새의 먹잇감인 벌레들이 많아지는데, 과학자들은 거문고새가 ‘벌레농사’를 짓는다고 분석했다.

ㅇ나뭇잎이 흙 속에 섞이면서 불쏘시개가 되는 것까지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생명(生)의 색(色)을 다루는 콘텐츠 생색(生色)입니다. 동물, 식물을 비롯한 생명의 성을 주제로 외설과 지식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가끔은 ‘낚시성 제목’으로 지식을 전합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격주 주말마다 재미있는 생명과학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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