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축구 레전드 크리스티안 추쿠, 74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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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축구 강국으로 꼽힌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8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처음으로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린 일대 사건이다.
대표팀 선수 시절 추쿠의 가장 값진 성취는 1980년 나이지리아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이다.
나이지리아 축구협회 측은 추쿠가 이끄는 대표팀이 2006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 통과는 물론 본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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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변신 후 2003∼2005년 대표팀 감독
오늘날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축구 강국으로 꼽힌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8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처음으로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린 일대 사건이다. 당시 우승의 주역이자 나이지리아 축구의 레전드로 통하는 크리스티안 추쿠 전 나이지리아 대표팀 감독이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51년 1월 태어난 추쿠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했으나 그가 재능이 부족하다고 여긴 부모는 직업적인 축구 선수가 되는 것에 반대했다. 하지만 추쿠가 중학생 시절 학교 축구부의 주장을 맡아 팀을 여러 차례 우승으로 이끄는 것을 본 뒤 부모도 생각을 바꿨다.
중앙 수비수(DF)로서 추쿠는 뛰어난 수비력은 물론 경기장의 다른 동료들에 대한 통솔력까지 갖춰 ‘의장’(Chairman)이란 별명을 얻었다. 1971년 프로 구단 에누구 레인저스에 입단해 활약하던 그는 1974년 ‘그린 이글스’(녹색 독수리)란 애칭으로 유명한 나이지리아 국가대표팀 선수로 뽑혔다. 30세가 된 1981년까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며 A매치 54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었다.
대표팀 선수 시절 추쿠의 가장 값진 성취는 1980년 나이지리아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이다. 당시 그는 팀의 주장으로 열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1976년, 1978년 잇달아 준우승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긴 나이지리아가 1980년 대회 결승전에서 알제리를 3-0으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하자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추쿠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이후 현역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지도자로 변신했다. 1998년 케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된 데 이어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나이지리아 대표팀을 지휘했다. 다만 감독으로서의 실적은 선수 시절의 명성에 크게 못 미쳤다. 나이지리아 축구협회 측은 추쿠가 이끄는 대표팀이 2006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 통과는 물론 본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길 기대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지역 예선 내내 졸전을 펼치다가 탈락했고, 추쿠는 ‘무능한 지도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추쿠는 그가 선수 시절 뛴 에누구 레인저스 감독에 선임됐지만 팀의 성적은 기대 이하였고 그는 결국 2009년 해임됐다. 생애 말년의 츄쿠는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갈 만큼 궁핍한 삶을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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