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질서에 '핵폭탄' 던진 트럼프의 상호관세[양정대의 전쟁(錢爭)외교 시대]
사실상 적자규모를 관세율로 치환
'최대 소비시장' 우위 내세워 압박
1930년 대공황 심화 요인 꼽히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재현 우려
<채권시장 요동에 물러선 트럼프>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 치솟자
"중국 외 90일간 유예" 선회했지만
미중 '관세전쟁' 속 불확실성 여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해방의 날’이라며 상호관세 부과를 공식화한 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9일 0시 1분을 기해 발효된 직후까지 동반 폭락했던 주요국 증시는 한나절 뒤 90일간 유예 방침이 전해진 후 일제히 급등했다. 한때 4.5%를 넘어섰던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도 유예 소식에 4% 초반대까지 급전직하했다. 상호관세의 여파는 ‘핵폭탄’과 ‘경제 핵겨울’로 표현됐고, 시장에선 ‘자유무역의 종말’이라는 평가와 함께 경기침체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무역수지 0’을 위해 끼워 맞춘 숫자들
트럼프는 지난 1월 20일 취임 전부터 트리플(보편·상호·보복) 관세 카드를 내밀었다. 특히 상호관세의 경우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의 경제력 우위에 따른 강압적 조치라는 비판과 함께 글로벌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의 정면 충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자유무역협정(FTA) 시스템의 일방적 무력화, 수출 주도형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쇠락 가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상호관세율 도출 근거로 인용한 논문의 저자가 USTR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USTR이 적용한 25% 전가율(외국 수출업체가 상호관세로 인한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수출가격을 내릴지 여부에 따라 수입가격이 달라지는 비율)에 대해 “출처를 모르겠다”며 “우리가 도출한 95%를 적용하면 관세 부과액이 4분의 1 수준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무역 불균형은 천연자원과 비교우위 등을 반영하는 만큼 보호무역주의와 무관하다”며 무역적자 해소를 앞세운 상호관세 부과 자체를 비판했다.

실제로 트럼프가 사용한 방식은 일반적인 무역 관련 세율이 아니다. 한국에 부과한 상호관세율 25%는 지난해 기준 상품수지 적자 규모(660억 달러)를 상품 수입총액(1,330억 달러)으로 나눈 값(49.8%)의 절반이다. 복잡한 수식을 제시했지만 사실상 무역적자 규모를 관세율로 치환한 것이다. 게다가 110억 달러 흑자를 본 서비스수지는 제외했다. 상품수지를 0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숫자들을 인위적으로 배치한 셈이다.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악몽 재현되나
트럼프의 상호관세와 관련해 1930년 미국 농업 보호를 명분으로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후과가 입길에 오른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 속에 2만여 개 수입상품 관세를 평균 20% 인상했고, 교역 상대국들은 보복관세와 수입 제한 조치로 맞섰다. 주요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국제 무역의 급격한 위축과 글로벌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스무트-홀리법이 대공황 악화의 요인 중 하나로 비판받는 이유다. 주요국 경제난과 국가 간 갈등 심화로 나치즘과 파시즘 같은 극단주의가 득세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서방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체제로의 전환을 도모했다. 1947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시작으로 수십 년간의 다자 협정을 거쳐 1995년 WTO 체제가 출범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국제사회의 협력을 저해하는 성격이 강하다. 각국이 미국 소비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개별 협상에 나설 가능성 때문이다. 게다가 WTO는 7년째 미국의 상소위원 임명 거부로 분쟁 해결 기능이 유명무실해졌고, 개별 국가 및 블록 간 FTA는 트럼프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도 닮았다.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와 중국의 보복 조치 언급 후 이틀간 미국 뉴욕증시에선 6조6,700억 달러(약 1경 원)의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유럽과 아시아 주요국 증시에서도 패닉셀(공포에 따른 투매)이 벌어졌다. JP모건은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을 40%에서 60%로 높였고,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1.6%포인트나 낮춘 -0.3%로 하향조정했다.
“세계 무역체제에 핵폭탄을 투하했다”
트럼프는 상호관세에 대한 비판과 경고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골프를 즐겼고, “버티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취임식 날 전직 대통령들 중 ‘관세왕’이란 별칭이 붙은 윌리엄 매킨리(1897~1901년 재임)를 유일하게 언급했을 만큼 관세를 신념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매킨리조차 재선 임기 첫해에 고관세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며 자유무역주의로의 전환을 꾀했다. 하물며 지금의 글로벌 공급망과 무역시스템에는 당시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각국의 경제가 중첩돼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역사상 가장 어리석다”고 각을 세운 이유다.
사실 미국은 지난 80년간 자유무역 체제의 선도국이자 최대 수혜국이었다. 생활필수품은 외국에서 저렴하게 공급받는 대신 금융·정보기술(IT)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해 세계 최대 부국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이 약탈당했다”며 재분배 실패와 양극화 심화 등에 따른 분노를 중국 탓으로 돌리더니 이번엔 아예 동맹·우방국들까지 겨냥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트럼프의 상호관세를 두고 “세계 무역체제에 핵폭탄을 투하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최대 관심사는 10년물 국채금리
국제 금융시장은 트럼프의 상호관세가 발효된 9일 내내 롤러코스터를 탔다. 0시 1분을 기해 발효된 직후 주요국 금융시장은 또 한번 요동쳤는데, 뉴욕 증시가 한창이던 당일 오후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 대한 90일 유예 방침이 전해진 뒤엔 나스닥지수 12%를 비롯해 일제 급반등한 것이다.
특히 시장의 주목을 받은 건 트럼프가 물가안정의 요체로 삼는 10년물 미 국채 금리였다. 사실 이달 초부터 각종 관세정책이 본격화하면서 4% 안팎까지 낮아졌던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지난 7일 오후부터 급격히 올랐다. 증시의 변동성이 커진 만큼 안전자산인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금리가 낮아질 거란 시장의 전망과는 어긋나는 움직임이었다. 마진콜(증거금 증액 요구) 급증과 중국의 미 국채 매각, 헤지펀드들의 베이시스 트레이드(현물∙선물 간 거래) 등이 원인으로 거론됐다.

트럼프로선 시행 가능성을 타진해 마진콜 규모라도 줄일 필요가 있었을 거란 얘기가 나온다. 결과적으로 상호관세 유예 방침은 뉴욕증시를 붉게 물들였고, 10년물 미 국채 금리도 당장은 안정세를 되찾았다. 다만 미중 관세전쟁의 전개 양상, 미국과 교역국들 간 관세 협상 등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요인들이 여전히 많아 10년물 미 국채 금리의 향배도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정대 선임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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