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책방, 시사주간지를 논하는 밤 [찾아가는 독자위원회]

3월7일 오후 2시10분. 여수행 기차를 타고 스마트폰을 열자 속보가 떠 있었다. ‘법원, 내란 우두머리 혐의 尹 대통령 구속취소 인용.’ 속속 전해지는 뉴스와 재판부의 결정문, 법원에서 배포한 보도 설명자료 등을 확인하며 ‘찾아가는 독자위원회’가 예정된 전남 여수의 독립 서점 ‘거기책방다섯’으로 향했다.
‘거기책방다섯’은 이름처럼 다섯 명의 책방지기가 함께 운영하는 서점이다. 지난해 4월, 여수 여행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중앙동 이순신광장 부근의 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책방지기 중 한 명인 노노 씨(별명)는 지난해 7월 전남 순천의 ‘서성이다’에서 열린 〈시사IN〉 찾아가는 독자위원회(찾독위) 소식을 듣고 직접 찾독위를 신청했다.
저녁 7시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찾독위)’ 시간보다 20분 남짓 먼저 책방에 도착한 윤지환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회사에서 속보를 딱 보는데 그다음부터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고요. 오늘은 좀 일찍 마치고 나왔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법원의 결정에 충격을 받은 탓인지, 이날 찾독위에는 ‘시사’에 특히 관심 많은 여수 시민들이 발걸음을 했다.
이날 모인 독자들은 12·3 쿠데타 이후 뉴스에서 눈을 떼기 어려운 불안감과 그로 인한 피로감을 동시에 호소했다. 여수 찾독위의 리뷰 대상인 〈시사IN〉 2월 발행호에는 설문조사로 보수 유권자들의 인식을 분석하고(제910호 ‘30%의 세계관’),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심층 인터뷰한(제911호 이들은 왜?) 커버스토리 등 굵직한 정치·사회 분석 기사가 포함되었지만, 이날 찾독위의 대화는 가족, 지역살이, 비정규직 노동 등 삶과 밀착된 주제로 흘러갔다.
■ 제908호 얘들아 뭐 하니
리뷰 대상인 4권(제908~911호) 가운데 유일하게 “책을 펴보고 싶게 만드는 표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광훈 목사와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등장하는 다른 호의 “스트레스 유발” 표지와 달리 제908호 표지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보고 있는 두 어린이가 등장한다. 〈시사IN〉 표지에는 종종 ‘〈시사IN〉 키즈’들이 모델로 출연하는데, 이번 호는 임지영 문화팀장의 자녀들이 활약했다.
‘초록우산·〈시사IN〉 아동청소년 스마트폰 기반 생활 현황 조사’를 바탕으로 나경희 기자가 취재한 ‘우리 아이 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커버스토리를 두고 참석자들의 의견이 갈렸다. 책방지기 중 한 명인 데보라 씨(별명)는 자녀의 스마트폰 이용과 관련해 난감했던 경험을 공유했다. “둘째 아들이랑 같이 밥을 먹으면 엄마는 아들 얼굴이 보고 싶잖아요. 근데 아들은 스마트폰에만 코를 박고 있는 거죠.”
또 다른 책방지기 수수 씨(별명)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두 가지 생각이 양립한다고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말 그대로 디지털 원주민인데 그들만의 방식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12·3 쿠데타 이후 여의도·남태령·광화문을 밝히는 응원봉 시위를 예로 들며 ‘결국 그 아이들이 계엄을 막고 나라를 살린 것 아니냐’라는 의견도 나왔다.

■ 제909호 믿음, 망상, 폭력
취리히 통신원인 김진경씨가 연재하는 ‘평범한 이웃, 유럽’은 타국의 사례를 렌즈로 한국 사회를 비춘다. 제909호에 실린 ‘혼외자가 논쟁거리? 유럽은 ‘가족’ 넓혔다’로 대화 소재가 옮아가자 찾독위의 분위기가 한층 뜨거워졌다.
전남대 학생인 장우석씨는 책방 맞은편 주점의 단골손님으로, 〈시사IN〉 찾독위를 계기로 이날 처음 ‘거기책방다섯’을 찾았다. 그는 이 기사에 나온 프랑스의 팍스 제도(PACS·시민연대계약)를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결혼이라고 하면 무겁고 거창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어요. 결혼식은 엄청난 비용이 들고요. ‘팍스’처럼 조금 가벼운 제도가 있고 인식이 개선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수 산단에서 ‘조그맣게 일을 하고 있다’고 본인을 소개한 J 씨는 10년 전쯤 입양을 알아보다가 포기했다고 말했다. “결혼하지 않은 싱글 남성이 아이를 입양할 방법을 찾기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혼외자’라는 표현이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한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꿔가야 한다’라는 데에 참석자 대다수가 공감을 표했다.
■ 제910호 30%의 세계관
책방지기 노노 씨는 가장 관심 있게 본 기사로 제910호에 실린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로컬이었다’를 꼽았다. 차형석 기자가 고성, 고창, 인천에서 지역의 자원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3인을 취재했다. “저희가 여수에 있으니까 지역과 관련된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토박이보다는 여기서 살다가 밖에 나갔다 다시 들어온 사람들이 주목을 받는 것 같아 그런 점이 조금 안타까웠어요(노노).”
여수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강형규씨는 지역 청년들의 복잡한 속내를 전했다. 그에게 여수는 타지에서 온 청년을 살뜰히 챙겨주는 따듯한 지역이지만 ‘내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청년이 지역에 남거나, 타지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능력이 못 되어서’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청년을 ‘키우는 것도 로컬’이지만 동시에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것도 로컬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제911호 이들은 왜?
커버스토리 기사에 대해선 얘기가 영 나오지 않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커버 읽기가 조금 힘드셨나요?”
참석자들은 “솔직하게 말씀해달라고 하시니···”라는 단서를 달고 하나둘씩 마음속 얘기를 꺼냈다. “그래프가 너무 많으니까 장벽이 생기더라고요” “오랜만에 잡지를 접하는데 거의 안 변했네 싶었어요.” “표지부터 약간 질리는 느낌이라 펴보고 싶지가 않았어요.”
데보라 씨는 “계엄과 탄핵이 워낙 큰 이슈라 무거운 기사들이 앞쪽에 실리는데 그보다는 신간 소개처럼 뒤쪽에 실리는 가벼운 코너에 좀 더 눈길이 간다”라고 말했다. 제911호에서 잘 읽었다고 꼽힌 지면도 ‘기자의 프리스타일’과 ‘취재 뒷담화’였다. 이날 찾독위에는 김수혁 수습기자가 동행했는데 마침 이 호의 ‘취재 뒷담화’ 주인공이 올해 2월 입사한 수습기자 3인(권은혜·김수혁·문준영)이었다. 얼마 전 정년퇴직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인생 2막을 연 정혜중씨는 “진실을 알리고자 애쓰는 기자들이 무척 소중하다”라며 〈시사IN〉의 ‘새싹들’에게 응원을 전했다.
※열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는 4월4일 대구 ‘나른한책방’(@nareunhanbooks 0507-1356-5186)에서 열립니다. 6월에는 제주 ‘어떤바람’(@jeju.windybooks, 064-792-2830)으로 갑니다. 관심 있는 독자께서는 개별 서점에 문의 바랍니다. 〈시사IN〉독자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은 동네서점, 혹은 이미 〈시사IN〉 읽기 모임을 하고 있는 단체의 신청도 환영합니다(문의: ilhostyle@sisain.co.kr).
여수·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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