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에 강제노동이라니 어불성설” 신안 염주들 ‘펄쩍’
美 CBP 수입금지 조치로 ‘국제 문제’ 부상, 불명예…“노예 소금 낙인 억울해”
전남도·신안군 반박 “현재 수출하는 소금, 강제 노동과 무관…해제 총력 대응”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지난 8일 오후 4시30분쯤 하늘이 시리도록 쾌청한 날씨의 전남 신안군 증도 태평염전. 최근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의 공지로 천일염 제품 생산 과정에서의 '강제노동' 의혹이 불거진 이곳 염전에서는 적막함 속에 해수 채취 작업이 한창이었다. "억울한 심정이다. 생업인데 손을 놓고 있을 수 있느냐"라며 염판 마다 서너 명의 작업자(염부)들이 분주히 일손을 놀렸다. 염전 주인은 염판에 하얗게 떠오르기 시작한 소금 결정을 뚫어지게 응시하기도 했다.
이날 키 180㎝에 육박하는 건장한 체격의 30~40대로 보이는 인부들은 쪽빛 하늘의 반영이 일렁이는 염판 위를 분주히 오가며 바닷물을 골라냈다. 당초 곱사등처럼 허리가 휘고 병색이 완연한 노동자들이 땡볕 아래서 힘겹게 노동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서해안고속도로→북무안IC→신안 현경→해제→지도읍→증도에 이르는 길목마다 연륙교가 건설돼 이곳은 더 이상 외딴 섬도 아니다.

염판 위에 인부들 일손 '분주'…"3년 전 일로 수입 금지" 발끈
국내 최대 규모 단일염전인 태평염전에선 지난달 28일 올해 첫 소금 생산을 알리는 채염식을 열고, 풍년을 기원했다. 하지만 첫 소금 수확에 대한 설레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불길함이 100여만평에 달하는 태평염전을 휘감았다. 채염을 시작한 지 불과 일주일여 만에 불거진 미국발 소금 수입 금지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마늘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인 염전주인(염주)들은 황당한 현실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과거의 잘못을 들어 지금 와서 소급해 매도하는 꼴이라는 항변이었다. 특히 이들은 미국의 수입 차단 조치가 마치 자신들을 노동자에 대한 인권 불감증에 걸린 비리의 온상인 양 비춰지게 한다며 곤혹스러워했다.
태평염전으로부터 여럿 염판을 임차해 17년째 소금밭을 일구고 있는 염주 김성대씨(68)는 "지금 세상에 강제노동이라니 어불성설이다. '노예 소금' 낙인에 참담한 심정이다"며 "수년 전에 일부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다시 염전 전체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있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몇 년 전에 보도됐던 강제노동이나 임금체불 등을 이유로 수입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물론 당시의 잘못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인제 와서 징벌을 내리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조치는 지난 2022년 11월 국내 장애우권익단체 등에서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에 인도보류명령(WRO)을 청원한 후 약 2년 반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CBP가 관련 실태 조사나 소명 절차 없이 해당 청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곧바로 수입 보류 명령이 내려졌다는 게업계의 주장이다.
다른 염전 주인은 "저기 일하고 있는 인부들이 노예처럼 보이느냐. 이번 일로 작업자들도 자존심이 많이 내려가 있는 상태다"며 "덩달아 악덕업주로 치부되고 있는 우리 염주들의 인권은 없는 것이냐"고 혀를 찼다.
염전 직원들도 "어디 가서 신안 염 업계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말을 못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염전은 다 문 닫으란 말이냐"는 격한 말까지 흘러나온다. 업계는 지난 반세기 동안 소비자에게 질 좋은 천일염을 제공하는데 기여해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불신은 신안 천일염 업계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업계 "이미지 통째로 나빠질까 봐 걱정"
전국 최대 천일염 산지인 전남이 미국의 수입차단 조치로 또다시 '염전 강제노동' 논란에 휩싸였다. 전남도 등은 과거 잇따라 발생한 장애인 염전노동 착취 사건 이후 개선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지만 이번 조치로 또다시 불명예를 안게 됐다.
최근 미국 정부는 신안 태평염전 천일염을 수입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미 CBP는 지난 3일 홈페이지를 통해 "강제노동 사용을 합리적으로 보여주는 정보를 토대로 태평염전에 대한 인도보류명령(WRO·Withhold Release Order)을 어제 발동했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예와 다를 바 없는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내 기업 제품이 강제 노동 제품이란 이유로 외국 정부에 의해 수입 중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명령이 내려진 제품은 생산 기업이 강제노동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수입 재개가 가능하다.
이번 인도보류명령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른 강제노동 지표(열악한 근무조건, 임금유보, 폭력 등)가 과거 사례에서 확인됨에 따라, 태평염전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는 천일염 모든 제품에 대해 미국 내 수입 및 유통을 금지한 조치다. 사실상 태평염전 생산 소금의 미국 수출길이 막힌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천일염 생산업계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과거 일부 업체의 불미스러운 일을 계기로 노동자 인권 향상에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업계 전체를 매도하는 데에는 억울함을 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염주와 작업자들 대부분은 염전이나 천일염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까봐 우려했다. 한 염전 주인은 "과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근로환경이 많이 개선됐는데 이것 때문에 염전 이미지가 또 안 좋아질까 봐 걱정이다"고 했다.
또 다른 작업자는 "한창 사건이 있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도 경찰들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단속을 돌면서 부당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철두철미하게 뒤진다"며 "또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의식도 향상되다 보니 예전처럼 나쁜 마음으로 노동자를 막 부려 먹는 업주는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전남도·신안군 "강제노동 이미 개선" 항변
전남도와 신안군은 CBP의 이번 조치를 수년 전 터진 태평염전 내 한 염판 임차인의 임금체불에 대한 처분 결과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가 된 사안은 2021년 태평염전 일부를 임대한 임차인(개별사업자) A씨와 그가 고용한 근로자 사이에서 발생한 임금체불 등 사건이며,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 염전이다.
A씨는 지난 2014년부터 7년 동안 천일염 채취에 투입된 인부에게 임금 3억4000만원을 체불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기소됐다가 최근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전남도와 신안군은 미국 정부가 확대 해석한 무리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임대 사업자 고용주와 노동자의 문제로 태평염전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현재 미국에 수출되는 태평염전 생산 천일염 제품들은 모두 강제노동과 무관하다고 항변했다.
우선 태평염전을 관할에 둔 신안군은 '사실과 다르다'며 펄쩍뛰었다. 군은 CBP가 종결된 A씨 사건을 태평염전 전체 사업자들에게 공통되는 문제로 확대해석해 내린 조치라고 판단하고 있다. 고용주와 근로자의 문제로 지역 이미지 훼손을 크게 우려했다. 신안군 관계자는 "강제노동을 내세운 미국의 수입 차단 조치는 신안군의 전체 이미지를 훼손하고 천일염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등 악영향이 우려된다"면서 "미국의 수입 보류 조치에 대한 업체 측의 대응을 지켜보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겠다"고 밝혔다.
전남도 또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매년 소금박람회 개최 등으로 세계 최고의 명품 천일염 생산지로서의 가치와 위상을 전 세계 소비자에게 알리고 있는 전남도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전남도는 실제 사실을 미국 CBP에 충분히 소명해 조속히 수입제한 조치가 해제되도록 해양수산부 등과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2021년 이후 대책을 마련해 대부분 문제가 개선됐는데 CBP 판단에 반영되지 못했다"면서 "'천일염이 노동 착취로 생산됐다'는 것은 과거의 일인 만큼 바로 잡겠다"고 밝혔다.

美 수입 차단 조치 후폭풍…다시 붙은 '강제노동' 딱지
이번 수입 조치가 갖는 의미는 경제성보다 상징성에 있어 보인다. 국내 천일염의 대부분은 서남해안 지역인 전남에서 생산된다. 전남의 천일염 생산량은 2024년 기준 18만9000톤으로 전국 생산량(20만8000톤)의 90.1%를 차지한다. 신안을 중심으로 전남에는 705개소의 염전이 운영 중이다. 신안 증도 태평염전은 국내 천일염 연간 생산량(20만8197톤)의 6%(1만2500톤)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다만 대미 수출량은 연간 7~8톤(약 1억원)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 2007년 11월 국가등록문화재 제360호로 지정됐다.
문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전남과 신안 소금은 물론 지역 이미지 훼손에 있다. 강제노동을 내세운 미국의 수입 차단 조치로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노예 소금'이라는 불명예에다 인권 후진지역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수입 금지 조치가 시행된 상황에서 당국의 사후약방문식 대응이 얼마나 실효성을 지닐지는 미지수다.
"빌미 제공" 자성론도 고개…'염전 노동착취' 반복
억울함의 목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일각에선 자성론도 나온다. 미 CBP 수입금지 조치로 '국제문제' 부상한 강제노동 논란의 빌미를 원천 제공한데다 노동과 임금 착취가 지금도 완전 근절됐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안의 한 염전에서는 2014년 장애인에게 장기간 일을 시킨 뒤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염전에 취업한 장애인 2명은 2014년 구출되기 전까지 각각 5년 2개월, 1년 6개월간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면서 관계기관의 대대적인 현장 조사가 진행됐지만, 노동 착취는 근절되지 않았다. 2021년에는 태평염전을 빌려 소금을 생산하던 업자가 7년간 장애인에게 일을 시키고 임금을 주지 않은 사실이 또다시 드러났다.
인권위는 2014년과 2021년 관련 사건들이 불거지자 현장 조사를 하고 개선 권고를 내렸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에 따라 다양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남도는 2021년부터 도내 염전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와 현장 점검을 매년 시행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는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관리 체계를 강화했다. 경찰청은 신안에 경찰서까지 추가로 개설했다. 전남도는 지난해 염전근로자 실태조사 결과, 전년 대비 폭력·착취 등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인권의식도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천일염 생산 노동시장의 여건상 '강제노동' 딱지 떼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염판에 끌어 올린 바닷물을 증발시켜 천일염을 얻는 염전은 고강도 노동의 대표 업종이다. 이 때문에 염전은 '노동자 고용'이 쉽지 않다. 전남 염전 705개소 가운데 612곳이 노동자 없이 가족끼리 운영하는 이유다. 전남 93곳의 염전에서는 153명의 노동자가 일한다. 신안의 경우 관내 749개소의 염전 중 근로자를 고용 중인 사업장 70곳이다. 이런 사정은 일부 염전 업주들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고 있고, 재발 가능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전남지역 한 노동단체 관계자는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행정당국과 업계의 노력으로 염전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염전 일손 구하기가 어려운 측면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등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면서 "현장 확인과 인식개선 교육, 실태조사가 지속해 이뤄져야 괜한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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