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합참 결심지원실 회의’가 무너뜨린 것들, 윤석열은 아직 모른다

권혁철 기자 2025. 4. 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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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278f8e;">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span>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심판 사건 마지막 변론기일인 지난 2월25일 저녁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최종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1월23일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나와 “계엄 해제 요구 결의가 나오자마자 바로 장관과 계엄사령관을 즉시 제 방으로 불러 군 철수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월25일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도 “계엄 해제 요구 결의가 이루어진 이후에 즉시 모든 병력을 철수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즉시” 군 병력을 철수시켰다고 강조했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먼 주장이다. 그는 2024년 12월4일 새벽 4시27분에 계엄군을 철수시키고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국회가 이날 새벽 1시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고 3시간26분이 지나서야 군 병력을 철수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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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2024년 12월3일 밤 10시28분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 머물렀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자, 윤석열은 바로 병력을 철수하는 대신 대통령실 바로 옆 건물인 합동참모본부(합참)로 갔다. 당시 합참 지하 전투통제실에서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4일 새벽 0시부터 양손에 전화기를 들고 내란에 동원된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윤석열은 4일 새벽 1시16분 합참 전투통제실에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과 최병옥 국방비서관과 함께 도착했다. 그는 새벽 1시20분 전투통제실 한쪽에 마련된 결심지원실에 들어가, 김용현 전 장관,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인성환 2차장, 김철진 국방부 군사보좌관 등과 회의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은 “국회의원부터 잡으라고 했는데”라며 김 전 장관을 질책하면서 “비상계엄을 재선포하면 된다”고 재계엄 의사까지 밝힌 정황이 군 관계자들의 진술로 드러났다.

대통령실(오른쪽)과 국방부·합동참모본부(왼쪽) 건물의 모습.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새벽 1시31분, 인성환 2차장이 상관인 신원식 안보실장에게 전화했다. “대통령이 결심지원실에 오래 머물고 있는 게 적절치 않아서 비서실장님과 함께 빨리 모시고 갔으면 한다”고 건의했다. 신원식 실장도 비상계엄이 해제됐는데 군사시설에 대통령이 간 것은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 실장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새벽 1시46분 합참 전투통제실에 도착했다. 윤석열은 새벽 1시49분 이들과 함께 합참을 떠났다. 윤석열은 병력 철수 지시를 내리지 않고 합참을 떠났다.

왜 육군 중장 출신 신원식(육사 37기) 실장과 육군 소장 출신 인성환(육사 43기) 2차장은 윤석열이 결심지원실에 앉아 있는 게 적절치 않거나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까. 결심지원실 회의는 ‘2차 계엄’ 내용 때문에 수사기관과 언론의 눈길을 끌었는데, 장군 출신인 이들이 보기엔 회의 장소와 형식이 문제가 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결심지원실에 들어간 행위는 현역 군인 서열 1위인 합동참모의장(합참의장)의 권한과 권위를 깔아뭉갠 일이다. 결심지원실은 군 최고 작전지휘관인 합참 의장의 중요한 결심을 돕는 공간이다.

합참 의장은 육·해·공군의 평시 작전을 지휘하는 군령권을 갖고 있다. 합참 의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북한의 도발에 맞서 싸워 이기는 것이다. 합참 의장은 군사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합참 지하 지휘통제실, 작전통제실에서 머물며 상황을 평가하고 위기 관리·대응을 한다. 지휘통제실, 작전통제실에는 장군뿐만 아니라 영관급 장교 등을 포함해 수십명이 근무하고 있어, 합참 의장 등 지휘부가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회의를 하긴 어렵다. 그래서 전투통제실 한쪽에 결심지원실이 있다. 10여평(약 33㎡) 규모인 결심지원실에는 회의용 탁자와 의자가 있고, 각 군 부대를 연결하는 통신시설도 있다고 한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2024년 12월4일 새벽 군인들이 국회의사당에 들어가려 하고 있다. AFP 연합

합참 의장이 중요한 군사작전 결정을 내릴 때는 작전본부장(중장) 등 합참 핵심 지휘부가 결심지원실에 모인다. 결심지원실은 말 그대로 합참 의장의 주요 작전 결심을 핵심 참모들이 지원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회의 시설이다. 12월4일 새벽 윤석열은 결심지원실 주인인 김명수 합참 의장을 무시하고,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데리고 들어갔다. 윤석열이 주재한 결심지원실 회의는 유사시 한반도 전쟁을 이끌어가는 군 최고사령부인 합참을 무력화시킨 행위였다.

윤석열은 국군통수권자였지만 한국군 지휘체계와 문민통제에 대한 초보적 지식도 없었다. 현재 한국군의 지휘체계는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여 국군을 통수하되 국방장관을 통해 군을 지휘통제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대통령과 군 중간에 국방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군 통수권자가 군을 직접 통솔하지 않고 내각(국방부)을 통해 군을 지휘·통제·감독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국가들이 채택한 보편적인 군에 대한 문민통제 방식이다.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 아돌프 히틀러처럼 군이 통수권자 한사람의 통제만 받을 경우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폭정의 도구로 변질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12월4일 새벽 대통령실에서 합참으로 건너와 결심지원실 회의를 열어, 군에 대한 일인 지배를 선언한 셈이다. 이는 2차계엄 우려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이고 대한민국의 국격을 허무는 난폭하고 위험한 행위였다. 이를 두고 신원식 실장은 “계엄이 해제됐는데 군사시설에 대통령이 간 것이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둘러 말했다. 파면된 윤석열은 아직도 12월4일 새벽 합참 결심지원실에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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