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산림녹화] 경찰 영웅부터 화전민까지…우리 현대사 그 자체

오세현 2025. 4. 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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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걱정하던 경찰, 나라 위해 희생한 화전민
산림녹화사업 반세기 흘러 훌쩍 자란 묘목 눈길
▲ 강원도 복지조림에 참여했던 고(故) 안병하 치안감 가족과 안중걸 한국 산림녹화 유네스코 등재 추진위원

1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강원 주도의 산림녹화 기록물은 그 자체가 한국 현대사를 담고 있다.

산림녹화 기록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한 명이 양양출신인 고(故) 안병하 치안감이다.

안병하 치안감은 1950년 6.25 전쟁 때 처음 배치 받은 춘천지구에서 관측 장교로 활약하며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다.

1974년 강원경찰국장으로 부임했을 당시에는 20구좌를 출자해 도내 공무원들과 함께 강원복지조림지에 묘목을 심었다. 당시 25~30㎝에 불과했던 작은 묘목은 반세기라는 세월이 흘러 30m까지 높게 자랐다.

고(故) 안병하 치안감의 아내 전임순 여사는 지난 3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국장님이(안병하 치안감) 장마철에 홍수가 나지 않게 하려면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했다”며 “50년이 지났지만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복지조림사업은 강원도에서만 유일하게 시행한 독자적인 사업으로, 화전정리 사업과 함께 지난해 ‘산림녹화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심의 통과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4년 강원도청·강원경찰청·사업소 직원 등 도내 유관기관 임직원 277명이 조합을 설립해 60만 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안병하 치안감을 찾게 된 계기도 화제다.

강원도는 그 후 30여 년이 지난 2007년과 2008년 조합원에게 1구좌당 당시 출자비의 38배에 해당하는 3만 8000원을 정산해 돌려주었는데, 사망했거나 행방을 알 수 없어 청산하지 못한 24명에게는 돌려주지 못했다. 고(故) 안병하 치안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8년 12월. 전 강원도청 산림정책관이었던 안중걸 한국 산림녹화 유네스코 등재 추진위원이 복지조림 관련 사료를 발굴하던 중, 미정산 조합원 가운데 ‘안병하’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그가 경찰 영웅 고(故) 안병하 치안감이 아닐까 하는 추측에 이어 수소문 끝에 유족과 연락이 닿아 확인, 약 50년 만에 출자비를 가족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

그의 아들 안호재씨는 “부친은 원래 그런 걸 좋아하셨어요. 홍수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시골에 가도 시간만 나면 나무를 심으셨어요”라고 회고했다.

 

▲ 춘천 가마골 일대에서 화전민의 아들로 살아온 안관섭씨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화전정리사업의 이면에는 그곳을 떠난 화전민들이 있었다. 화전민들은 경작지를 떠난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곳이 생생히 기억난다.

안관섭(73)씨는 춘천의 가마골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화전민의 아들로 살았다. 춘천에 거주하는 안관섭씨는 “눈뜨면 일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지난 3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현재 소양강댐이 위치한 곳 주변이 대부분 화전민들이 살고 있었다”며 “지금은 나무가 빼곡해 초록색이지만, 당시에는 화전생활로 인해 붉은 흙이 그대로 드러나있었다”고 했다.

화전정리사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땅이 없는 화전민들은 떠날 수 없어 몇 년간 인근에서 계속 화전민으로 살아갔다.

안씨의 가족은 현재 소양강댐 위치 인근에서 화전생활을 하다가 소양강댐 공사 시작으로 인해 현재 춘천 가마골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는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 땅이 없으니 화전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화전밭을 일궈서 살고 있는데, 다른 화전민이 산림 감시원이 넘어온다는 소식을 알려줘 도망을 친 적도 있다”고 했다. 당시의 일화도 떠올렸다.

안씨는 “감시원을 피해 도망을 쳐도 금방 발각이 됐는데, 조금이라도 선처를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집에 있는 닭을 잡아서 대접했는데도 당시 3000원의 벌금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결국 세 차례의 화전정리사업 과정에서 춘천시 월곡리에 120평짜리 땅을 보상으로 받았다.

화전민으로 살아왔던 안관섭씨는 과거에 일궈왔던 터전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지만 ‘나라를 위한 결정’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아무래도 나무가 우거져있는 모습이 좋다”며 “결국은 나라가 잘살고, 안정을 위해서 선택한 사업 아니냐. 요즘은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바뀐 그곳을 찾아다니면서 버섯같은 것도 채취한다”고 했다.

오세현·신재훈·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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