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악인들의 데스티네이션 [드라마 쪼개보기]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2025. 4. 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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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악연'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우리 앞으로는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응?" 악연으로 만난 상대에게 던질 법한 대사를 등장인물 한 명이 내뱉는다. 좋은 인연까진 아니어도 그들은(이라고 쓰고 '우리는'이라고 나에게 대입해 보면) 어쩌다가 서로 달갑지 않은 관계가 된 것일까. 상대방 혹은 내가 악인이기 때문일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지독하게 운이 없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쁜 선택 따른 결과일까.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 '카르마'처럼 업보 때문인 것일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악연'이 시청자들과 인연을 맺으러 찾아왔다. 4일에 공개되어 9일 현재 화제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제치고 대한민국 TOP 시리즈 1위에 올라 있다. 넷플릭스 TV쇼 부문에서도 4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순위에서도 인기 상승 중이다. 최희선 작가의 카카오 웹툰 '악연'(황준호 작가의 네이버 동명 웹툰과 같은 범죄 장르지만 전혀 다른 작품)이 원작이고, 윤종빈 감독 제작에 유명 배우들의 출연과 6부작이라는 짧은 구성이 시청자의 구미를 당긴다.

'악연'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악연'은 원작 웹툰 내용을 모른다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야 하는 작품이다. 잔혹한 폭력 묘사 때문이기도 하고 패륜, 장기 밀매, 성범죄 소재 등 악이 진동하는 드라마여서 선뜻 다음 화로 넘어가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1화에서 이희준이 연기하는 '사채남'이 그릇된 선택만 골라 하는 모습만 봐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어 악인전 상위권에 오를 만한 인물들이 차례대로 등장해 누가 누가 더 나쁜가를 내기라도 하듯 겨룬다.

이런 악인 서사를 굳이 봐야 하는 이유는 결국은 응징 서사로 흐르기 때문이다. '악인은 너무 많'지만 그럼에도 '악인들은 모두 지옥에 간다'는 인과응보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보여 준다. 드라마는 '사채 빚의 남자' '시체를 유기한 남자' '상처받은 여자' 에피소드를 교차하며 진행된 원작을 재구성해 악연의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어두운 욕망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함을 악인들의 아귀다툼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악연'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악연'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일형 감독은 범죄 코미디 영화 '검사외전'(2016)과 범죄 스릴러 '리멤버'(2022)를 연출한 범죄 장르에 특화된 감독이다.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2014)와 '비스트 보이즈'(2008)에서 각색과 조감독 경험을 거친 '윤종빈 사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악연'은 이일형 감독의 각색 능력과 연출력이 골고루 발휘된 작품이다. 원작의 복잡한 에피소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웹툰의 여백을 채우는 솜씨가 특출나다. 특정 소품(특히 시계)을 활용하거나 긴장감을 높이는 영화적 연출이 장점으로 작용하고, 블랙 코미디와 퍼즐식 구성은 감독의 장기라 인정할 만하다.

'악연'을 봐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다. 박해수, 이희준, 김성균은 기존에도 악역뿐 아니라 다양한 연기를 펼쳐온 연기 장인들이다. 이들이 '악연'에서 보여주는 악역 연기는 한마디로 '급'이 다르다. 실체를 교묘히 숨기는 지능적인 악인, 악의를 서슴없이 드러내는 악인, 악인들의 도구가 되어 파멸을 자초하는 악인을 능수능란하게 연기한다. 여기에 자신의 코믹한 이미지를 캐릭터에 과감하게 녹인 이광수의 '나쁜 놈' 연기도 기대 이상이다.

'악연'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악인 캐릭터들 사이에서 신민아는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 '연주를 연기했다. 가해자와 맞닥뜨린 후 복수를 계획하는 '상처받은 여자'로 원작에선 간호사였지만 드라마에선 의사로 등장해 좀 더 주도적인 인물이 되어 후반부를 끌어간다. 남성들을 상대로 사기를 벌이는 공승연의 악역 연기도 수준급이다. 분량이 적어 특별 출연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존재감은 주연배우들과 다를 바 없는 김남길, 조진웅, 박호산의 특급 연기는 놓치면 손해다.

드라마 '악연'은 악인을 응징하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보다 악인들이 저지른 악행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결과에 무게를 실어 흥미를 유발한다. 김남길 캐릭터가 특별 출연임에도 초반부터 두드러지고 원작보다 복합적인 인물로 바뀐 점은 이 드라마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다. '죄지은 자들'은 벌을 받고, '상처받은 여자'는 회복되고 시원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란 소리다. 악행은 악연을 부르고, 악연의 굴레는 쉽게 끊을 수 없다는 묵직한 한 방이 드라마 끝에 기다리고 있다. 그 장면이 주는 서늘한 감각을 꼭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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