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만세`(萬歲)는 언제부터 중국 황제만을 위한 호칭이 됐나

2025. 4. 11.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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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萬歲)는 언제부터 중국 황제만을 위한 호칭이 됐나

예(禮)를 따지는 건 중국의 오랜 전통이다. 기원전 까마득한 고대 이미 예법(禮法)의 이론과 실제를 풀이한 책인 '예기'(禮記)가 있었다. 시경·서경·역경·춘추와 더불어 유가(儒家) 경전인 오경(五經)의 하나로, 공자와 그 후학이 지은 책이다. 당시 예기와 함께 '의례'(儀禮), '주례'(周禮) 등의 예법 책이 있었는데 이를 '삼례'(三禮)라고 한다. 왕조(王朝)의 제도, 상복(喪服), 동작(動作)의 규칙, 예(禮)의 해설, 예악의 이론 등 세세한 예법을 담고 있다. 예법은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 규칙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인간 사회의 윤리적 삶을 규율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예법에 따르면 절대 권력자 황제에게만 허용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무희들이 의식용 춤을 출때 천자(황제)만이 '팔일무'(八佾舞)가 가능했다. 가로와 세로로 각각 8줄씩 모두 64명이 추는 무용이다. 천자 밑의 제후(諸侯)나 왕은 6일무(六佾舞·여섯명씩 여섯줄 36명), 또 그밑의 대부는 4일무(四佾舞·16명)만이 허용됐다. 만약 제후나 대부가 팔일무를 행했다면 바로 '반역' 행위로 벌을 받았다. 용(龍) 문양도 황제외에는 쓰지 않았다. 중국에서 만든 영화를 보면 신하들이 황제에게 '만세만세만만세'(萬歲萬歲萬萬歲)라고 읖조리는 장면을 자주 본다. 이 '만세'(萬歲)도 오직 황제만을 위해 사용되는 호칭이었다.

명나라 위충현은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간신(奸臣)으로 꼽힌다. 민간은 물론 조정까지 뒤흔들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그도 감히 '만세'라는 말은 쓰지 못하고 '구천세'(九千歲)로 만족해야 했다. 제후(왕)이나 황태자는 '천세'(千歲)를 썼다.

만세가 오직 황제만을 위한 단어로 자리잡은 것에는 세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유방, 즉 한(漢)나라를 세운 고조때부터라는 설이다. 빈민 출신이던 유방이 해하에서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천하를 쟁패한 이후 황제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신하 손숙통의 건의를 받아들여 만세라는 용어를 황제 전유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나라 무제가 동중서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학을 관학(官學)으로 만든 이후 유가들이 '만세'를 황제의 전유물로 만들었다는 설이다. '중국사의 숨겨진 이야기'(양페이·종샤오미 지음 / 파라북스)에 따르면 어느 날 한 무제가 천하 순유를 떠나 험준하기로 유명한 화산(華山)에 이르렀다. 정상에 올라 한 절 앞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만세! 만세! 만세!"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둘러봤으나 황실 사람들 이외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절의 주지에 물어보니 "방금 만세 삼창(三唱)은 산신이 부른 것입니다. 천자께서 여기까지 올라오셨으니 신하로서 복종한다는 뜻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 '만세'가 황제만을 위해 부를 수 있는 단어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셋째는 5대 10국 시대 북송을 세운 태조 조광윤때부터라는 설로, 가장 유력하다. 그가 왕위에 올라 스스로 황제로 칭한 후 '만세'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황제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만약 누군가 스스로 만세라 자칭하면 모두 목이 날아갈 위험이 있었다. 대장군 조이용의 조카인 조눌이 술에 취해 사람들에게 만세를 부르도록 했다가 태형을 당하고 죽고 말았다. '만세'는 이후 송나라에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천여년간 줄곧 황제의 용어였다.

하지만 유방이나 조광윤 이전까지만 해도 '만세'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기쁨과 환호를 나타내는 단어였다. 일찌기 춘추전국시대부터 사용됐다. 춘추시대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만수무강'(萬壽無疆)이라는 해서 '만'(萬)자를 사용해 기쁨이나 축복을 전했다. 당시만 해도 '만세'는 후손 대대로 이어짐을 뜻했다. 진한(秦漢)시기 이후 대신들도 황제를 알현하고 감사를 표시할 때 늘 '만세'를 불렀다. 황제에 대한 존경을 표시한 '만세'는 점차 황제의 대명사가 됐으나 제왕의 전문호칭은 아니었다. 위로는 제후나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송나라 때 이르러 '만세'는 황제의 전문호칭이 됐으며, 호칭규정을 어기는 자는 중벌을 받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명나라 이후로 '만세'라는 단어 사용은 더욱 엄격해졌다.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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