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칼럼] 우리 농업의 위기 ‘전환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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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리가 보유한 농업기술도 소농을 위한 기술이 대부분이라서 미래농업을 견인하기에 역부족이다.
우리의 농업구조와 농지제도의 기본 골격도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1960∼1980년대 초반 1500만 소농을 계몽하고 소농 위주의 생산시스템을 지원하기 위해 설계된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농업의 위기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전환지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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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대로라면 10년 후에는 농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소농구조에 있다. 농가당 경지면적은 1.5㏊에서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러다 보니 정부는 소농직불제 등의 지원을 줄이기 어렵다. 늘어난 정부 지원은 다시 소농들의 영농 은퇴 또는 경영규모 확대를 가로막는 원인이 된다. 우리가 보유한 농업기술도 소농을 위한 기술이 대부분이라서 미래농업을 견인하기에 역부족이다. 우리의 농업구조와 농지제도의 기본 골격도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1960∼1980년대 초반 1500만 소농을 계몽하고 소농 위주의 생산시스템을 지원하기 위해 설계된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나라의 농업은 정부 주도로 시작하지만 진화단계에 맞춰 민간 주도의 시장 중심으로 전환해왔다. 네덜란드는 농민과 국가 간 사회계약을 통해서, 뉴질랜드는 보조금 철폐를 통해서, 덴마크는 협동조합 통합을 통해서 전환의 길을 지나왔다. 그 과정에서 소농의 비중을 꾸준히 줄이면서 농업의 산업화와 시장경쟁 체계를 완성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 농업의 위기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전환지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와 닮은꼴이었던 일본 농업조차도 최근에는 우리와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일본의 농지규모는 우리보다 3배가량이지만 최근 20년 사이 농가수는 우리와 비슷해졌고 농업예산은 우리보다는 많지만 크게 줄어들었다. 일본 농업 전환의 계기는 2000년대 중반 고이즈미 내각 시기 추진된 민영화 개혁의 영향이 크다. 당시 다케나카 헤이조 특명장관이 주도한 행정개혁에서 농업 관련 공공기관을 독립 행정법인으로 전환했다.
정부의 직접 개입은 줄이며 민간 중심의 운영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농업기술센터·품종개량연구소·정책 집행기관 등이 성과 중심의 민간조직으로 개편됐고 농협과 행정조직도 유연화했다. 그 과정에서 농업예산은 대폭 줄었다. 2000년대 3조4000억엔이던 농업예산은 2023년 2조2000엔으로 피크 대비 65%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와 달리 같은 당이 수십년 장기 집권하면서 농정 기조가 일관되게 유지된 점도 전환의 지속성을 가능케 했다.
반면 한국은 정치권의 포퓰리즘, 농업 관련 이해집단의 반발이 겹치며 농업정책이 오락가락했다. 한쪽에서는 규모화 정책을 펴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소농이 늘어나는 제도를 만들었다. 한쪽에서는 농업기술의 산업화를 외치면서도 소농 보호를 명분으로 국가의 농업기술과 종자 보급 기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순간에도 우리의 농업정책에는 ‘농업의 산업화’와 ‘사회적 보호’라는 이중 기조가 여전히 충돌 중이다. 모두가 열심히 하지만 줄다리기처럼 서로가 반대 방향으로 힘을 쓰니 제자리를 맴돌 뿐 이렇다 할 전환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농업이 발전할수록 농업문제 또한 결국 시장에서 해결해야 한다. 네덜란드·덴마크·뉴질랜드에 이어서 이제는 일본마저 건너간 ‘전환의 강’을 우리도 건너야 한다. 농업이 발전할수록 정부 정책과 지원이 제공할 수 있는 한계는 뚜렷해지고 있다. 새로운 정책과 조직을 마련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것보다 유효기간이 지난 정책과 조직을 솎아내는 것이 먼저다. 맹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은 후에야 비로소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다(人有不爲也, 而後可以有爲)”고 했다. 지금 우리 농업이 딱 그렇다.
이주량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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