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불미스러운 일 겪은 유아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게 될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물론 마약 상습 투약 리스크가 터지기 전에 제작한 작품이긴 하지만 영화 <승부>는 유아인이라는 배우에게는 남다른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주인공의 마약 사건으로 개봉이 4년이나 미뤄진 작품으로 보통 이런 경우 분량을 지우는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승부>는 그 분량 그대로 내보내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강행한 작품은 누적 관객 140만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향해 순항 중이다. 최근 영화시장을 감안하면 이미 흥행에 성공한 셈이다. 무엇이 리스크마저 극복하게 한 걸까.
<승부>는 작품 자체의 특성이 이러한 리스크를 줄여준 특이한 작품이다. 그것은 실존인물들의 실제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바둑에 관심이 별로 없는 이들도 잘 알고 있는 조훈현과 이창호의 사제대결이 그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 사제대결은 스승이 제자를 키워, 제자가 스승에게 패배를 안기는 기막힌 상황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 자체가 영화보다 더 극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너무나 천재인지라 급성장해 스승과 대국을 펼치는 기막한 상황이 펼쳐졌고, 결국 제자가 스승을 압도하지만 이긴 제자는 승리를 만끽하지 못하고 진 스승은 그런 제자를 안타깝게 여기는 복잡한 감정들이 피어났던 사제대결이었다. 특히 조훈현의 집에 기거하며 바둑을 배운 내제자였던 이창호의 입장을 떠올려 보면 대국에서 스승을 이긴 날 그 집으로 들어가는 그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가 가늠될 것이다.
이 사제대결이 얼마나 뜨거운 관심사였는가를 보여주는 건, 제자에게 연전연패하던 조훈현 9단이 이창호와 재대결을 펼쳤던 1991년도의 대국 과정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촘촘히 담아낸 MBC 다큐멘터리 <인간시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마도 <승부> 역시 이 다큐멘터리에서 상당 부분 영감을 받았을 거라 여겨질 정도로 영화 속 장면들이 얼마나 현실재현에 공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처럼 워낙 조훈현과 이창호라는 실존인물의 실제 사건이 주는 강렬함이 컸기 때문에 <승부>는 상대적으로 배우가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 됐다. 물론 이것은 배우의 연기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정반대로 배우들이 기막히게 조훈현과 이창호의 면면을 분석하고 준비해와 연기를 했기 때문에 그 현실과의 이물감이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실제로 조훈현 역할의 이병헌은 그가 당시 대국에서 보였던 습관부터 행동까지를 완벽히 숙지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연기를 펼쳤다. 이병헌의 압도적인 재연과 여기에 대결하듯 맞붙은 유아인의 연기가 작품에 녹아들면서 배우보다 역할이 주목되었고, 그 역할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실존인물들인 조훈현과 이창호가 살아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유아인의 리스크를 줄여준 건 아역 역할을 했던 김강훈의 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의 중반까지 어린 이창호 역할로 김강훈이 영화로의 진입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고, 그 바통을 유아인이 무리없이 이어받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승부>라는 영화에 계속 몰입할 수 있었다. 이창호 특유의 '돌부처' 같은 과묵함 또한 유아인이 대사보다 표정이나 손짓 등의 연기를 통해 그 면면을 그려내게 했고 이런 점도 리스크를 감추는데 일조한 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승부>는 유아인에게는 중요한 기회가 되는 작품이 됐다. 그것은 <승부>의 흥행 성공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승부>라는 작품이 다루고 있는 조훈현과 이창호의 바둑대결의 서사가 이를 연기해낸 이병헌과 유아인의 연기대결의 서사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승부>는 유아인으로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연기자로서의 이병헌과 한판 연기대결을 벌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치고받는 대결이 아니라, 앙상블을 이루는 대결이고 여기서 이병헌은 확실히 유아인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면모를 보여준다.
작품 하나로 리스크가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이런 잘못 이후에 어떻게 대중들에게 다시 연기자로서 다가갈 것인가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일일 게다. <승부>는 그런 점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진심으로 승부하는 것만이 대중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에 대한 진심에는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하는 것이 기본 바탕이 된다는 걸 이제 그도 알게 됐을 테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영화 <승부>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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