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4일에 쓴 윤석열 평전
2025년 4월4일 오전 11시22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했다.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윤석열은 선고 2시간29분 만인 오후 1시51분 변호인단을 통해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합니다.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냈다. 마지막까지 사과도, 승복도 없이 자신의 지지자들만을 향한 채였다.

윤석열은 1960년 12월18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현 삼선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제학자인 고 윤기중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 어머니는 화학자인 최성자 전 이화여대 교수다. 밑으로 네 살 터울의 여동생 윤신원씨가 있으나, 어머니 최성자씨와 여동생 윤신원씨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다.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윤석열은 대학생 때까지도 아버지에게 고무호스로 맞으며 자랐다. 한번은 ‘콩 서리(떼를 지어 남의 곡식이나 과일을 훔쳐 먹는 장난)’를 한 것이 들켜서 종아리를, 다른 한번은 술에 만취해 친구에게 업혀 들어가서 엉덩이를 맞았다고 한다(김연우, 〈구수한 윤석열〉). 또 윤석열은 ‘말술’이어서, 사법시험 공부를 하는 동안 ‘저 선배랑 놀면 시험 못 붙는다’고 다들 피해 다닐 정도였다(황형준, 〈포스트 윤석열〉). 그는 1991년 9수 끝에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1994년 34세 나이에 대구지검 검사로 임관한 윤석열은, 2002년 사표를 내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로 일한 지 1년 만에 검사로 되돌아온다. 이후 검사 윤석열은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안희정씨와 강금원씨를 구속하는 등 굵직한 수사를 맡으며 ‘특수통’ 경력을 쌓아간다.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수사 당시 검찰 수뇌부가 정몽구 회장 구속을 결정하지 못하자, 정상명 당시 검찰총장을 찾아가 ‘정몽구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는 내용의 수사보고서와 사직서를 동시에 내민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다.

윤석열이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계기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로 정치와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흔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정권 초기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혼외자 의혹’이 불거져 물러났다. 이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윤석열 당시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은 지휘부 결재 없이 국정원 직원 3명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가 직무 배제됐다.
2013년 10월21일 윤석열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고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수뇌부가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한다. 이날 이 자리에서 그 유명한 문답이 나온다.
정갑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우리 증인은 혹시 조직을 사랑합니까?
윤석열:예,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정갑윤 의원:사랑합니까? 혹시 사람에 충성하는 것은 아니에요?
윤석열: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2013년 12월 윤석열은 상부 지시 불이행 등이 인정되어 정직 1개월 처분을 받고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 좌천된다. 그러다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좌천된 과거 때문에 복수를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윤석열은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라고 받아쳐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윤석열이 이끈 특검 수사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됐을 때, 진보 진영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특검 수사를 이어받은 검찰 수사 끝에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된다. 2017년 5월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은 새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를 임명했다.
윤석열 검찰의 칼끝이 향한 곳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1호는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아래 검찰은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을 압박해 보수단체를 지원했다는 ‘화이트리스트 의혹’ 등 전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이어갔다. 과거 검찰이 무혐의 처리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실소유주 의혹’이 피해자 고발로 재점화하자, 검찰은 2018년 3월 횡령과 뇌물수수 등 혐의로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2018년 12월에는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2019년 1월, 서울중앙지검은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을 관철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강제동원 재판 등을 협의하고 개별 재판에 개입하며 판사를 사찰한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한다. 검찰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수사의 정당성과 별개로 검찰의 힘은 점점 커져만 갔다.

2019년 7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4명 중 “윤석열 후보자만 검찰개혁을 지지해서”였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하게 임해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후, 윤석열 검찰의 칼끝이 조국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후에 검찰의 조국 일가 수사에 대해 “조국 수석이 주도했던 검찰개혁, 또 앞으로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더 강도 높게 행해질 검찰개혁에 대한 보복이고 발목잡기(2025년 2월10일 〈한겨레〉 인터뷰)”라고 평가했다. 반면 윤석열은 한 대학 동기에게 조국 수사가 “문재인 대통령 구하기 수사”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조국 사건을 살펴보니, 방치하면 정권에 막대한 타격을 줄 정도로 사안이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수사를 시작했다”라는 것이다(〈구수한 윤석열〉).
윤석열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수사·기소권 분리 방안에 ‘장기적으로’라는 전제를 달아 동의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도 “국가 전체적으로 반부패 대응 역량이 강화·제고된다면”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이 조국 일가 수사에 이어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 청와대 겨냥 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뒤늦게 추진하던 검찰개혁은 의도와 무관하게 “검찰의 칼이 정적을 겨냥할 때는 환호하다가 그 칼이 자신에게 향하자 부랴부랴 검찰에게서 칼을 빼앗으려는 얄팍한 꼼수로 보였다(이춘재, 〈검찰국가의 탄생〉).”
급기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20년 11월 윤석열에 대한 징계 청구와 직무집행정지를 명령하면서 ‘추-윤 갈등’이 폭발했다. 그즈음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 윤석열이 이재명에 이어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2021년 3월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했고, 그해 6월29일 정치 참여를 선언했다. 키워드는 ‘공정’과 ‘상식’이었다.

그러나 정치인 윤석열은 시작부터 ‘공정과 상식’과 거리가 멀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이름은 김건희다. 윤석열은 52세이던 2012년 열두 살 적은 김건희씨와 결혼했는데, 김건희씨 어머니 최은순씨가 윤석열이 정치참여를 선언한 직후인 2021년 7월2일 ‘불법 요양병원 설립 및 요양급여 부정수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된다. 김건희씨는 영문 제목에서 ‘멤버 유지’를 ‘member Yuji’라고 적은 논문을 포함해 박사과정 시절 작성한 논문의 표절, 허위 경력,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의혹에 휩싸였다. 2021년 10월1일에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윤석열의 손바닥에 쓰인 ‘왕(王)자’가 방송 카메라에 잡혔고, 이날을 포함해 최소 세 번 손바닥에 ‘왕’자를 쓰고 토론회에 참석한 사실이 확인된다. 윤석열은 “같은 동네 사는 할머니가 열성적인 지지자 입장에서 써준 것이다”라고 해명했지만, ‘천공’ ‘건진법사’ 등 도사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의혹과 연결되면서 무속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윤석열은 후보 시절부터 연이은 실언·망언으로 위태위태했다. 2021년 10월19일 부산 해운대갑 당원협의회에서 한 발언이 그 예다.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그야말로 정치는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건 호남 분들도 그런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당 안팎에서 사과 요구가 빗발쳤지만, 윤석열은 ‘제2의 전두환이 되겠다는 것이냐’는 유승민 후보의 질문에 “그런 식으로 곡해해서 말하면 안 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윤석열은 이틀 만인 10월21일 오후에야 “전두환 정권에 고통을 당하신 분들께 송구하다”라고 사과했지만, 그 직후인 10월22일 오전 0시10분께 반려견 토리 이름으로 된 인스타그램 계정에 토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렸다.
이토록 불안했던, 정치에 참여한 지 4개월 된 전직 검찰총장은 2021년 11월5일 국민의힘 경선에서 47.85%를 얻어 홍준표(41.50%)를 제치고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다. 윤석열은 수차례 충돌하던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 가까스로 갈등을 봉합했다. 2021년 12월26일 김건희는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라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상대방 떨어뜨리려고 무능한 후보를 뽑으면 1년 뒤 그 사람 뽑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고 할 것”이라며 사실상 윤석열을 비판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대선을 엿새 앞둔 2022년 3월3일 윤석열과 단일화를 선언했다. 윤석열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0.73%포인트 차로 누르고 2022년 3월9일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윤석열 정부 몰락의 복선 “날리면”
2022년 5월10일 대통령에 취임한 윤석열은 어렵게 만든 지지 연합을 제 손으로 해체해갔다. 2022년 7월8일 이준석 전 대표가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직후인 2022년 7월26일, 윤석열이 권성동 당시 당대표 직무대행에게 격려하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낸 게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윤석열은 이준석 전 대표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칭하며 권성동 대행에게 ‘체리 따봉’ 이모티콘을 보낸다. 윤석열이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권성동 등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돌이켜보면 윤석열 정부 몰락의 복선 같은 사건 중 하나가 ‘바이든-날리면’ 사태였다. 2022년 9월22일 MBC는 윤석열이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당시 한 발언을 보도하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달았다. 김은혜 당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15시간 만에 나온 해명에서 해당 발언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내가) 쪽팔려서 어떡하나?”였다고 주장했다. 신빙성도 의문이었지만, 해명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 비속어를 쓴 것이었는데도 윤석열은 사과는커녕 이를 계기로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무기한 중단했고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고 5개월여 뒤인 2022년 10월29일에는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로 159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태원 참사 49재 추모제가 열리던 12월16일 윤석열은 김건희와 소비 촉진 행사를 찾아 크리스마스 트리를 점등하고 술잔을 구입한 뒤 “술 좋아한다고 술잔 샀다고 그러겠네”라고 농담을 했다. 2023년 1월2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윤석열은 ‘이태원 참사 관련 정무적인 책임을 물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무적인 책임도 책임이 있어야 묻는 거다”라고 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이태원 참사 이후 윤석열에게 재난·안전 주무부처 장관이자 윤석열 최측근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사퇴를 건의했을 때, 윤석열이 “이태원 참사에 관해 지금 강한 의심이 가는 게 있어 아무래도 결정을 못하겠다. 이 사고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이 증언은 뒤에 대통령실 항의로 수정되기도 했다. 결국 이상민 장관은 윤석열 정부 마지막까지 근무하다 비상계엄 이후에야 사임하게 된다. 이상민 장관과 이번 계엄에 핵심 역할을 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윤석열과 같은 충암고 출신이다.
윤석열은 이렇듯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구분하지 않았고, 정부 요직을 검사 출신으로 채웠으며, 화물연대와 건설노조원 등의 국민을 ‘북핵’ ‘조폭’에 빗대 수사를 촉구하는 등 대통령이 되어서도 ‘검사의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동시에 ‘대통령 윤석열’의 시간은 ‘검사 윤석열’을 부정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2022년 12월 윤석열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수사해 유죄판결을 받은 ‘다스 실소유주 의혹’의 이명박 전 대통령, ‘국정원 댓글 사건’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관련자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을 대거 특별사면해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의 지시에 따라 사면을 발표하면서 이들을 “직책·직무상 관행에 따라 범행에 이른 주요 공직자들”이라고 표현했다.

2023년 7월 발생한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은 윤석열 정부의 심연을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2023년 7월20일, 수해 복구 지원을 나간 해병대 채 아무개 일병(순직 뒤 상병으로 추서 진급)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된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의 수사보고서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해 7월30일 결재를 받았다. 7월31일 오후 2시 언론 브리핑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브리핑하기 약 2시간 전인 7월31일 오전 11시57분 이종섭 장관 지시로 브리핑이 돌연 취소된다. 사건 보고를 받은 윤석열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격노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이 배경으로 제기됐다.
박정훈 대령은 이후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수차례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는 취지의 말을 반복해 들었지만 예정대로 경찰에 사건을 이첩했다가 10월6일 ‘항명’과 ‘장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일로 공수처에 피의자로 입건돼 출국금지 조치된 이종섭 전 장관을, 윤석열은 22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24년 3월4일 주호주(주오스트레일리아) 대사에 임명했다. 논란 끝에 이종섭은 결국 사임했지만, ‘도주 대사’ 논란은 22대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한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상관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고 수사 외압을 폭로해 ‘전국구 스타’에 올랐던 윤석열은, 수사 외압 의혹의 가해 당사자가 되었다. 이후 발의되는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세 차례 행사하면서 그는 이 사건 수사를 적극 막았다.

윤석열이 거부권을 세 차례 행사한 또 다른 특검법은 ‘김건희 특검법’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에 이어, 2023년 11월27일 김건희씨가 300만원 상당의 명품백(디올백)을 받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김씨가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윤석열은 2024년 2월 KBS 대담에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다”라고 말할 뿐 사과하지 않았다. 이 사건 역시 의대 증원, ‘대파 875원’ 발언 등과 함께 총선 참패의 한 원인이 되었다. 2024년 7월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명품백 수수 사건과 관련해 검찰청이 아닌 경호처 부속 건물에서 김건희를 조사한 뒤, 2024년 10월 두 의혹 모두에 대해 김건희를 무혐의 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명품백 수수가 문제없다며 사건을 종결 처리한 국민권익위원회 간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육사에 갔더라면 쿠데타 했을 것”
채 상병 사건과 김건희 의혹으로 점점 궁지에 몰리던 윤석열에게 또 한 번 치명타를 안긴 사건이 ‘명태균 게이트’다. 창원 기반 정치 컨설턴트 명태균씨에게서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명태균씨 부탁을 받고 김영선 전 의원을 경남 창원의창 지역구에 단수공천해줬다는 게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2024년 11월24일 윤석열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명태균 공천개입 사건, 민주당의 검사 탄핵 등을 언급하며 “정말 나라가 이래서 되겠느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겠다”라고 했다고 김용현 장관이 검찰에서 진술했다. 그로부터 9일 뒤인 12월3일,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이 일로 12월14일 탄핵소추되어 이듬해 4월4일 파면되었다.
윤석열은 대학에 다니던 1980년 군사반란을 다룬 모의재판에서 재판장을 맡아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경험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그런 반면 검찰총장 시절이던 2020년 3월19일 대검 부장들과의 저녁 자리에서는 “만일 육사에 갔더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한동수, 〈검찰의 심장부에서〉). 윤석열이 자주 입에 올리던 ‘반국가세력’의 대립항은 늘 ‘자유민주주의’였다. 대학 입학 때 아버지가 선물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인생 책’으로 꼽는 윤석열은 대선 출마 선언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4월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자신이 그러한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윤석열이 민주당 등 야당이 중심이 된 국회의 권한 행사에 대해서 권력남용이라거나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는 “정치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라고 하면서도 이렇게 썼다. “다만, 피청구인(윤석열) 내지 정부와 국회 사이의 이와 같은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조율되고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이다. 이에 관한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나 공적인 의사결정은 어디까지나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의 본질과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윤석열은 “헌법이 예정한 경로를 벗어나 야당이나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하여서는 안 되었”고, 2022년 취임 뒤 2024년 국회의원 선거까지 “야당의 전횡을 바로잡고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여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민을 설득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음에도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는 윤석열이 2월4일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서 말했듯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것을 쫓아가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한 행위라고 헌재는 못 박았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지휘부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항명하며 정치적 자산을 쌓아온 검사 윤석열은, 기어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한 헌법 제1조 1항에까지 ‘항명’하다 파국을 맞았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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