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도축원, 그대가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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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일을 하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최근 도축장 인력난을 취재할 때도 비슷한 일을 겪어야 했다.
기사를 쓰면 도축장에 도움이 될 내용일진대 여러차례 거절당한 끝에 겨우 방문을 허락받았다.
나중에 도축원을 인터뷰할 일이 있다면 '자랑스럽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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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일을 하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기사를 꼭 써야 하는데 취재원이 취재 자체를 거부할 때다. 최근 도축장 인력난을 취재할 때도 비슷한 일을 겪어야 했다. 기사를 쓰면 도축장에 도움이 될 내용일진대 여러차례 거절당한 끝에 겨우 방문을 허락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는 것이다. 도축원 인력을 관리하는 한 업체 대표의 말이다. “아시다시피 조선시대엔 가축 잡는 사람이 백정이었잖아요. 지금도 사회 인식이 썩 좋지 않으니 도축장에서 일하는 자신이 언론을 통해 노출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거예요.”
농업 전문 일간지에 몸담고 있어서일까. 취재하기 전 그들을 편견 없이 바라봤다. 오랫동안 기술을 갈고닦은 장인, 혹은 휘황찬란한 칼솜씨로 한치의 오차 없이 고기를 다듬어내는 예술가가 아닐까 싶었다. 나중에 축산업계 직업을 소개하는 연재를 기획하게 되면 이들을 제1순위로 섭외하는 상상의 나래까지 펼쳤다.
그래서 도축원이 자신의 직업을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물론 힘든 일일 것이라고 짐작은 간다. 가축의 배를 가르면 내장이 쏟아질 테고 피비린내가 진동할 것이다. 그러나 축산업이 돌아가는 모습을 저 높은 곳에서 한눈에 내려다본다면 이들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지 단번에 알게 된다.
도축장은 축산유통의 핵심 고리다. 잘 키운 소·돼지를 도축한 다음 불필요한 부위를 제거해 부가가치를 올리고 깔끔한 상품으로 소비자에게 선보일 준비를 하는 곳이다. 잘린 고기가 금값이 될지, 헐값이 될지는 오롯이 도축원의 숙련도에 달렸다.
취재 결과 도축장은 늙어가고 있었다. 방문한 도축장의 직원은 모두 24명인데 60대가 13명으로 절반이 넘었고, 20대는 1명도 없었다. 젊은이들의 신규 유입이 단절됐다는 뜻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영상을 무한 생산해내는 유튜버,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방송인이 없다면 심심할지언정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축원이 사라진다면 당장 단백질 공급망이 망가지고, 고기를 얻기 위해 직접 칼을 갈아 아파트 지하실에서 소·돼지를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중에 도축원을 인터뷰할 일이 있다면 ‘자랑스럽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도축원처럼 묵묵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이 제대로 대우받는 사회야말로 진정 건강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이문수 산업부 차장 moon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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