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는 시작일 뿐…다음은 환율전쟁과 미국채 강제교환?

정의길 기자 2025. 4. 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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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 #관세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각) 전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밝히며 ‘외국의 무역 장벽’이라고 쓴 보고서를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지난 2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상호관세로 미국 증시가 코로나19 세계적 대확산(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후폭풍이 커지면서 그의 정치적 동맹인 기술기업과 공화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5일 미국 전역에서 열린 대규모 ‘반트럼프’ 집회인 ‘핸즈오프’(Hands Off·손을 떼라) 시위에서도 관세는 주요 규탄 대상이 됐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이날 이탈리아 부총리 마테오 살비니가 주최한 우파 정치 행사의 영상 축사에서 “이상적인 형태는 미국과 유럽이 모두 무관세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며, 이는 사실상 양 지역 간 자유무역지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한겨레 4월6일 보도)

Q. 트럼프의 고율 관세는 미국의 무역적자 개선, 미국으로 투자와 제조업 부활 등을 목적으로 한다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 거야?

A. 트럼프에게 고율 관세는 우선 협상용인 것 같아. 트럼프는 1기 집권 때인 지난 2018년 7월 중국산 수입품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중국도 같은 규모의 보복관세로 대응했어. 그런데 양국은 1년6개월여의 협상 끝에 미국이 대중국 관세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중국이 미국의 농산물 등을 2천억달러어치를 추가 구매하기로 하는 무역합의를 이뤘어.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고율 관세 발표 때도 협상할 의사를 시사했어. 이번 조처와 관련해 백악관이 발표한 자료에는 “만일 교역상대국이 보복 조처를 할 경우 관세를 인상하고, 아니면 그 교역상대국이 불균형 무역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중대한 조처를 하거나 경제 및 국가안보 사안과 관련해서 미국과 나란히 하면 관세를 인하할 수 있다”고 발표했어.

주목할 것은 ‘경제 및 국가안보 사안과 관련’이라는 대목이야. 단순히 미국의 무역적자뿐 아니라 방위비 등을 포함해서 더 큰 것들을 상대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려는 거지. 한국에는 주한미군 비용 대폭 인상이나 대중국 견제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지.

Q. 상대국들이 순순히 응할까? 이미 중국은 상응하는 보복관세를 발표했고, 유럽연합도 대응하겠다고 하잖아.

A. 트럼프에게 고율 관세는 그 자체로도 목적인 것 같아. 이번 조처의 이론적 토대는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트럼프 당선 직후인 지난 11월에 발간한 ‘세계 무역 시스템 재편을 위한 사용자 안내서’에서 나와 있어. 미란은 미국이 관세 정책으로 ‘무역 적자 악순환의 고리’를 깨야 한다면서, 고율 관세를 부과해도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효과가 작다고 주장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산 제품 값이 비싸질 것으로 생각하나, 관세에 따라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떨어져서 실제 가격은 큰 차이가 없다는 논리이지. 반면, 관세 수입은 늘어나 국가적으로는 이득이라는 거야.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을 상대로 보복 관세 등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워서, 결국 대미국 관세를 낮추고 미국 제품을 더 수입하는 쪽으로 간다는 거야. 2018년 중국과의 관세·무역전쟁 때 물가가 오르지 않았고, 중국이 결국 미국 제품을 더 수입하는 쪽으로 합의했다는 거지.

그런데,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당시는 10년 이상 저금리·저물가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금리·고물가가 아직 해소되지 않고 큰 불씨가 남아있는 상황이잖아. 또, 당시 트럼프의 관세무역 전쟁은 중국 등을 상대로 하는 제한적 성격이었는데, 이번에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하잖아. 동맹인 유럽 쪽에서 반발과 배신감을 더 토로하고 있어.

Q. 협상용이든 그 자체가 목적이든 간에, 트럼프의 고율 관세가 성공할 가능성은 있는 거야?

A. 성공 여부를 떠나서, 트럼프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은 현재의 국제 질서 자체를 혐오하고 바꾸고 싶어하는 것 같아.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기반한 현 국제 체제와 질서를 깨버리려는 것 같아.

트럼프는 상호관세 발표 때 “미국 역사에 있어 오늘은 미국이 경제적 독립을 선언한 날”이라며 “해방의 날”이라고 말했어. 트럼프와 추종자들은 현 국제 체제나 질서에서 미국은 동맹국들로부터 착취당하고 이용당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어. 세계화나 자유무역에 대한 혐오와 반대가 크지. 그런데, 현 국제 체제나 질서는 미국이 만들고 주도한 거잖아. 미국이 패권국가로서 이끌어 온 것인데, 트럼프 진영은 이제 미국의 그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거야. 패권국가가 응당 치러야 할 비용과 의무를 치르지 않겠다는 거지.

미란 보고서는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주도한 브레턴우즈 체제 등이 미국 산업을 붕괴시키는 구조적 함정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해. 전후 국제경제 체제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데, 세계 각국이 달러를 필요로 해서 달러는 비싸지고, 달러가 자국 통화인 미국산 제품은 경쟁력이 약해져 수출이 줄고 제조업이 쇠퇴하고, 그 결과 일자리도 감소했다는 거지.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엄청난 이득을 누리면서도, 기축통화국으로서 져야 할 의무와 비용을 이제는 거부하는 거지.

Q. 그렇다면, 고율 관세로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겠네?

A. 트럼프 진영이 바라는 미국 제조업이 부활하려면, 수출 경쟁력이 생겨야 하지. 이를 위해서는 우선 미란 보고서가 지적한대로 달러 가치 하락이 도움이 되지. 이 때문에 트럼프는 관세에 이어 환율 전쟁을 시작할 거란 전망이야.

사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무역적자 등에 시달릴 때마다 달러 가치를 강제로 조정해오곤 했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 및 유럽과 일본의 약진으로 미국이 심각한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자, 1971년에 35달러를 금 1온스로 바꿔준다는 기존의 달러-금 태환제도를 정지시키는 선언을 했어. 이 제도로 달러 가치는 하락하고, 고정환율제체는 붕괴되고, 변동환율체제가 자리 잡아 갔지. 미국은 1985년에도 일본 등과 플라자합의를 체결해, 달러 가치를 극적으로 하락시켰어. 플라자 합의 직전에 달러 당 250엔이던 엔화는 그 후 가치가 급등해 120엔까지 올랐어.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90년대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지내고, 아직도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트럼프 진영에서는 ‘마러라고 협약’에 대한 소문이 떠돌고 있어. 미란 보고서에서도 언급하는 마러라고 합의는 트럼프 행정부가 경상수지 개선 및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약달러를 유도하는 한편 외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100년 만기 등 장기채로 강제전환하고, 단기채권에는 오히려 사용료를 지불하게 한다는 거야.

Q. 그렇게 보면, 트럼프의 고율 관세는 단순히 미국의 무역적자 개선이 아니라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역할과 지위까지 바꾸려는 의도로 볼 수 있는 것인가?

A. 1970년대 닉슨의 미국이 했던 것과 비교해 보자고.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에서 밀리는 데다 일본과 유럽 각국이 부흥에 성공하면서, 군사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졌어. 닉슨은 앞서 말한 대로 금-달러 태환제도를 일방적으로 붕괴시키는 한편 중국과의 화해로 소련 견제에 나섰어. 아시아 주둔 미군 병력을 철군 혹은 감축하며, 아시아 방위는 아시아 각국이 책임지라고 했어.

현재 트럼프의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에 직면하는 한편 미국을 상대로 엄청난 무역흑자를 누리는 동맹국들이 있어.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종전을 고리로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하고, 관세와 방위비 분담 등으로 동맹국들을 압박하고 있지. 다른 점이 있다면, 닉슨의 미국은 미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을 급변침시켰는데, 트럼프의 미국은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의 지위와 역할을 방기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거지.

자유무역 체제를 파기하고, 그린란드·파나마운하·캐나다를 미국령으로 하겠다고 하는 것은 미국이 그동안 이끌고 왔던 국제질서와 원칙을 흔드는 처사야. 이제 트럼프의 미국은 책임과 의무가 있는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이 아니라 ‘여러 열강 중의 제1의 열강’으로서 자신의 국익만을 챙기겠다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관세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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