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을 다시 듣다

김유진 기자 2025. 4. 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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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안(1916∼2004·본명 변동림)이 남긴 이 문구 이상으로 예술가의 삶을 요약할 방법이 있을까.

그는 시인 이상과 김환기 화백을 모두 남편으로 둔 인물이며, 동시에 수필가, 화가, 미술평론가이기도 했다.

동림과 이상의 풋풋한 첫 만남을 그린 '각설탕만 만지작, 만지작', 향안과 김환기의 행복했던 순간을 담은 '파리에서 추는 두 사람만의 춤' 등 넘버를 듣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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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 헤스트’ 시즌3
‘사랑과 예술’에 대한 재조명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아.”(넘버 ‘라흐 헤스트’ 중)

김향안(1916∼2004·본명 변동림)이 남긴 이 문구 이상으로 예술가의 삶을 요약할 방법이 있을까. 그는 시인 이상과 김환기 화백을 모두 남편으로 둔 인물이며, 동시에 수필가, 화가, 미술평론가이기도 했다. 그런 김향안의 삶을 재조명하는 뮤지컬 ‘라흐 헤스트’(사진)가 지난달 25일 서울 예스24 스테이지에서 개막했다. 제목 역시 프랑스어로 ‘예술은 남다’라는 의미로, 작품을 보고 나면 사랑과 예술이 김향안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다.

2022년 초연, 2023년 재연에 이어 3번째 시즌이다.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공연은 조명과 스토리 등을 보완해 조금 더 완성도 있게 다듬었다. 김은영 연출은 “향안과 동림이 만나는 순간의 환상을 선명하게 묘사하려 했고, 이상의 고통의 심연을 조명으로 부각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향안 역에는 지난 시즌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지숙, 최수진과 함께 김려원이 새로 합류했다. 동림은 김주연, 김이후, 홍지희가 연기한다. 김환기는 김종구·윤석원·박영수가, 이상은 변희상, 최재웅, 임진섭이 맡았다.

뮤지컬은 김향안의 일생을 ‘향안’과 ‘동림’ 두 개의 시간축으로 나누어 펼친다. 김환기 화백과 여생을 함께했던 향안의 시간은 역순으로, 시인 이상과 열렬히 사랑하고 사별했던 동림의 시간은 순차적으로 흘러간다. 문학소녀였던 스무 살 동림은 다방 낙랑파라의 단골손님 이상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 깊어져 가던 그때, 이상은 “우리 같이 죽을까, 어디 먼 데 갈까”라며 고백한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은 홀로 일본 도쿄로 떠나고, 폐결핵으로 건강이 악화되며 죽는다. 그들의 불꽃 같은 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무대 위 향안의 삶은 세상을 떠난 김환기를 추억하며 시작한다. 이내 장면은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의 행복했던 시절로 전환된다. 초조해하며 그림을 그리는 김환기에게 향안은 말한다. “시간과 싸우지 않아도 돼. 당신 작품은 영원한 시간 속에 살게 될 테니까.” 동림이 이상에게 그랬듯이 향안 역시 그의 아내이자 든든한 예술적 동반자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간은 과거로 흘러 향안과 김환기가 처음 사랑을 느낀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 시간선에서 향안은 이상을 잃은 동림과 마주한다. 예술가와의 사랑을 망설이는 향안에게 동림은 “라흐 헤스트”라고 화답한다. 그렇게 향안은 김환기에게 그의 아호인 ‘향안’을 내게 달라 말하며 ‘김향안’으로 거듭난다.

여느 뮤지컬처럼 극적인 넘버는 없다. 그럼에도 잔잔한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가 귀를 사로잡는다. 동림과 이상의 풋풋한 첫 만남을 그린 ‘각설탕만 만지작, 만지작’, 향안과 김환기의 행복했던 순간을 담은 ‘파리에서 추는 두 사람만의 춤’ 등 넘버를 듣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김환기의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넘버와 화면으로 무대에 구현되는 장면에서는 그의 벅찬 감정이 객석까지 전달된다. 다만 예술가로서 김향안의 면모가 크게 부각되지 않아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가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사랑 이외에는 없었을까, 의문이 든다. 예술가 김향안의 삶보다는 김향안의 ‘사랑 이야기’라는 감상만 진하게 남는다. 6월 15일까지.

김유진 기자 yujink021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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