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가눌 수 없는 15살 석현이…따라 울까봐, 숨죽여 운다

고나린 기자 2025. 4. 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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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희귀질환 ‘위커 울프 증후군’을 가진 천석현군의 엄마 조묘숙씨가 석현군을 휠체어에 앉히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석현이 잠깐만, 잠깐 앉아보자. 옳지 잘하네. 석현이 다치면 안 되니까 엄마가 신발 신겨줄게. 석현이 잘했어.”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서 뛰어놀고 있을 월요일 오후, 조묘숙(57)씨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아들 천석현(15)군을 들어 올렸다. 유모차형 휠체어에 앉혀진 석현이의 고개가 금세 뒤로 쏟아졌다. 엄마는 아들의 고개를 세우고, 휠체어 밖으로 삐져나간 팔과 다리를 모으고, 올라간 옷을 정돈하고, 신발을 신기고, 어깨에서 다리 사이로 연결되는 벨트와 양쪽 허벅지를 감싸는 벨트를 채웠다. “옳지 석현이 잘했어.” 예순을 바라보는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에, 가쁜 숨소리가 묻어났다. 휠체어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던 석현이는 입을 오물오물 벌렸다 닫기를 반복하다,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 미소를 지었다.

혼자 잘 키워보고 싶었어요

석현이는 2021년 희귀질환인 ‘위커 울프 증후군’을 당시 한국에서 두번째로 진단받았다. 선천적 근육 수축, 척추측만증, 뇌 위축, 지적장애, 저혈당 등의 증상으로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눕거나 보조의자에 앉아 생활한다. 죽처럼 반찬을 잘게 다진 밥을 한 숟가락씩 떠먹이고, 하루에 7∼8번씩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 휠체어에 태워 학교와 병원을 오가고 집에서 혈당 주사를 놓고 약을 먹이다 보면 모자의 하루가 저문다. 표정과 “아”, “어”, “오” 하는 소리로 표현하는 석현이의 마음을, 엄마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알아차리게 됐다.

“석현이 태어났을 때 정말 자신 있었거든요. 잘 먹이고 그러지는 못해도, 잘 키워보고 싶었어요.” 지난달 31일 석현이가 다니는 부산의 한 아동운동발달센터에서 만난 조씨가 석현이가 태어났던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석현이가 태어나기 2∼3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았던 남편은 조씨가 임신 중일 때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은 엄마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풍족하진 못해도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임신 마지막 달까지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출산 뒤에도 주차장 아르바이트, 요양보호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희귀질환 ‘위커 울프 증후군’을 가진 천석현군의 엄마 조묘숙씨가 아들을 안고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의 한 아동청소년발달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그렇게 세상에 나온 석현이에게서 이상을 느낀 건 생후 100일 무렵이었다. 목을 가누지 못했고, 이따금 몸이 활처럼 휘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찾은 병원에서 ‘평생 재활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석현이는 3살에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았고 병원과 응급실을 찾는 일이 더 잦아졌다. 조씨는 “3개월마다 열이 나고 끙끙 앓는 감기 증상이 계속됐고, 피검사를 해보면 혈당이 떨어져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응급실에 달려가고, 원인을 찾기 위해 10년간 부산에 있는 큰 병원에 다니며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다 했다”고 했다.

마침내 찾은 원인이 희귀질환 ‘위커 울프 증후군’이었다. 조씨는 되레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조씨는 “원인을 알았으니 약 잘 먹이고, 주사 잘 놔주면 10년간 다녔던 응급실은 안 가도 되니까 ‘이것만 해도 어디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몸이 딱딱하게 굳는 걸 막기 위해 석현이는 꾸준히 근육이완제 등 약을 먹고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 호르몬과 혈당을 조절하는 주사도 매일 맞아야 해서, 엄마는 “혹시라도 잘못 놓을까 봐 덜덜 떨면서”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주사 놓는 법도 배웠다.

자라날수록 늘어가는 치료비

석현이는 엄마만을, 엄마는 석현이만을 바라보는 날들이 이어지며 조씨는 일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일을 해보려고 해도, 석현이가 다니고 있는 특수학교에서 애가 다치거나 아프다는 연락이 올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며 “긴급돌봄이나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도 쉽지 않아, 직접 석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갔다가 치료실에 가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석현이가 아플 때마다 엄마는 자신을 탓했다. “클 석에 어질 현. 아기 태어나고 혼자 철학관에 가서 이름을 지었거든요. 10만원을 달라고 하는데 가지고 있는 돈 전부가 9만원이었어요. 그때 내가 9만원만 내고 이름을 가져와서 석현이가 아픈가, 내가 제대로 이름을 가져올 걸 하는 생각도 했어요.”

석현이네에게 가장 부담되는 건 늘어가는 치료 비용이다. 석현이는 일주일에 두번씩 몸이 굳는 걸 막기 위해 서는 연습, 물건을 쥐는 연습을 하는 물리치료·작업치료 등을 병원에서 받는다. 일주일에 네번은 운동발달센터에서 척추측만증을 완화하기 위해 척추와 다리를 펴는 운동재활치료를 받고, 두번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소리를 내고 음식을 씹는 언어치료·감각통합치료를 받는다. 분기별로 대학병원에 가서 골밀도검사를 받고 근육이완제, 신경안정제, 비타민 디(D) 보충제 등을 처방받아야 한다. 치료비와 학교·병원에 갈 때마다 타는 부산 장애인콜택시 비용, 식비 등 생활비를 더하면 매달 160만∼180만원의 지출이 생긴다. 석현이네는 이를 기초생활보장비, 장애수당, 한부모수당 등 정부지원금으로 충당한다.

경제적 부담으로 포기한 치료와 의료 장비도 있다. 석현이가 할 수 있는 표현은 “아”, “오” 같은 짧은 음성이지만 동요 ‘섬집 아기’를 듣고 펑펑 울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다. 석현이는 또래 아이들이 걷는 모습을 보면 좋아하며 웃고, 엄마의 목소리가 낮아지거나 울면 함께 대성통곡한다. 조씨는 “석현이가 음악치료를 받았을 때 편안한 모습을 보였는데 부담이 되어 지금은 그만뒀다. 언제 갑자기 아파 병원에 갈지 모르니 내가 먹는 것을 줄이며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했다. 석현이가 따라 울까 봐 맘 편히 울어본 적 없는 엄마는 이날도 급하게 눈물을 훔쳤다.

희귀질환 ‘위커 울프 증후군’을 가진 천석현군의 엄마 조묘숙씨가 석현군을 휠체어에 앉히기 위해 안아 들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석현이가 자랄수록 치료비 부담은 늘고 있다. 석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형 휠체어는 몸이 자라며 작아졌지만 150만원의 비용이 필요해 바꾸지 못하고 있다 . 목과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자세를 보조해줄 수 있는 자세보조기도 성장할 때마다 바꿔야 한다. 석현이가 10대가 되며 소아물리실에서 성인치료실로 이동해 재활치료 비용도 늘어났다. 희귀질환인 위커 울프 증후군의 약값도 만만치 않다.

어느덧 33㎏이 된 석현이를 여전히 안고 들며 생활해야 하는 50대 후반 엄마의 몸도 성치 않다. 조씨는 “허리와 어깨 통증이 심하지만 거의 참고 있다. 정말 아플 때 병원 가서 약을 받아 먹고 있다”며 “나 혼자 석현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병원은 석현이가 아플 때 가고 내가 아플 땐 최대한 참아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석현이가 아픈 게) 내 책임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들어서 어쨌든 둘이서 살려면 나라도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석현이를 15년 동안 키우며, 엄마의 간절한 소원은 석현이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내 있잖아요. 다른 거 다 놔두고 고개 가누고 자기 손으로 밥 먹는 거 보고 싶어요. 그것만 해도 나는 진짜 좋겠어요. 나 그렇게 키우려고요.” 부산 사투리가 담긴 조씨 말투에 끝내 울음이 섞였다. 휠체어에 앉아 천장을 보며 천천히 눈을 깜빡이던 석현이의 목에는 엄마의 애정이 담긴 손수건이 둘려 있었다.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석현이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하나은행 188-910030-69104, 예금주: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밀알복지재단(1600-0966)으로 문의해주십시오. 후원에 참여한 뒤 밀알복지재단으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15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석현이네 가정의 재활치료비와 긴급 생계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15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석현이처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장애아동에게 지원될 예정입니다. 밀알복지재단은 석현이네 가정을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희귀 소아암인 유잉육종암을 앓고 있는 11살 지수의 사연이 소개된 뒤 347분께서 “지수야 힘내”, “꿈을 이루기를” 등의 따뜻한 응원 메시지와 함께 1457만8998원(3월31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수가 필요한 치료를 받으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고 도울 예정이며, 지수와 비슷한 다른 위기가정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해 왔습니다.

후원금은 지수의 병원비와 교육비, 지수네 가족의 생계비로 전달됩니다. 지수네 가정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희귀질환 ‘위커 울프 증후군’을 가진 천석현군이 휠체어에 앉아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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