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의 요산요설(樂山樂說)] 22. 새봄 산행의 난처함

최동열 2025. 4. 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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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를 보다 보니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유명 프로그램에서 '자연인'으로 소개되는 남자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면서 촬영 팀에게 "'산 신세'를 지러 간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선(禪)답 같지만, 산을 대하는 남자의 내공이 확 풍깁니다.

산으로 드는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자연스럽게 산에 신세를 지거나 빚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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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더 강해지는 자연은 경외감의 대상
▲ 새봄 산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

언젠가 TV를 보다 보니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유명 프로그램에서 ‘자연인’으로 소개되는 남자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면서 촬영 팀에게 “‘산 신세’를 지러 간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선(禪)답 같지만, 산을 대하는 남자의 내공이 확 풍깁니다. TV를 보는 내가 탁하고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는 현답입니다. 그렇습니다. 산으로 드는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자연스럽게 산에 신세를 지거나 빚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솔바람 맑은 공기에 생동하는 신록, 화사한 단풍, 눈부신 설경으로 철 따라 얼굴을 달리하며 호사를 선물하지만, 난 산을 위해 해준 것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용서를 구해야 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의도치 않게 음식물이나 휴지를 흘리거나, 급한 마음에 배설물을 남기는 등등, 훼손이나 오염 행위를 하는 때가 훨씬 많습니다.

가장 난처한 일은 주로 새봄에 발생합니다. 봄은 산이 가장 선명하게 용틀임 하는 계절입니다. 엄혹한 겨울을 이겨낸 생명들이 치열하게 싹을 틔우고, 기지개를 켜면서 활동을 재개하니 거대한 산 전체가 생명의 경외감으로 넘칩니다. 그런 때 울퉁불퉁 거친 산길을 걷다 보면, 불가피하게 새순을 건드려야 할 때가 생깁니다. 이제 막 고개를 내밀고 세상을 향해 인사를 하는 새순이 떨어지거나 가지 째 부러져 나가는 상황은 참으로 미안한 일입니다.

앙증맞은 새순이 ‘툭’하고 떨어져 나갔을 때의 당혹감이란…. 이미 꺾인 새순을 다시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수술을 해 되살릴 수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어느 날에는 등산로 옆 길섶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잠시 요기를 한 뒤 일어서려는데 이제 막 피어난 야생화 꽃망울이 엉덩이에 짓눌려 버린 민망하고도 죄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새봄에 아예 산을 등지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늘 산을 벗 삼아야 하는 등산객의 입장에서 새봄은 아침 기지개처럼 기다려지는 한편 산행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한층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이 있습니다. 세찬 비바람에, 눈보라에, 이따금 등산객들의 발길에 시달리면서도 깊은 산 야생의 새순과 꽃은 강한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꺾이고, 밟히면서도 이듬해 봄이면 등산로 안쪽으로 어김없이, 거침없이 새순이 또 고개를 들이밉니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설 줄 아는 야생 화초의 지혜가 온실 속 화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존 능력으로 발현되는 것입니다. 봄 산행에서 맞닥뜨리는 난처한 마음이 다소라도 위안을 받는 것도 자연은 그렇게 제 스스로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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