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키우던 고졸 농부, 양자역학 가르친다
야학 들으며 물리학에 빠져
40대에 러시아 최고 대학서
치아 빠질 정도로 공부하며
학사·석사·박사까지 다 마쳐
부족한 재능, 끈기로 채워
학자로서 살아남은 힘 됐죠

이방인에게 모스크바는 혹독했다. 언어의 장벽은 높고 추위는 매서웠다. 하지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는 갖은 고생을 견딜 만큼 재밌었다. 매일 세 시간만 자고 식곤증을 피하고자 점심을 굶었다. '만학도' 공근식 씨는 그렇게 52세의 나이에 러시아 최고 명문인 모스크바 물리기술원(MIP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만난 공 박사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감사함'을 강조했다. 이번 학기부터 성균관대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양자역학을 가르치는 그는 이달부터 성균관대에서 박사후연구원(포스트닥터) 과정도 시작했다. 공 박사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갈림길마다 은인들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면서 "그 은혜를 수강생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지금까지의 경험을 공유 중"이라며 웃었다.
공 박사는 매주 금요일 12시부터 세 시간씩 수업한다. 수강생들은 전부 석사과정 학생들이다. 이들의 박사과정 진학과 별개로 스스로 학습하고 답을 찾는 습관을 갖도록 '공부 방식'도 틈틈이 전하고 있다. 그는 "가르침은 새로운 세계"라며 "같은 양의 지식을 공부할 때보다 수업 준비에 2~3배의 시간이 든다"면서 "강의를 통해 중요한 몇 가지는 얻어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 박사는 학자의 덕목으로 항상 '지적 호기심'과 '끈기'를 든다. 자신이 부족한 재능을 갖고서도 노벨상 수상자를 10명 넘게 배출한 MIPT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동력이라고 한다. 그는 "러시아에서 천재들을 정말 많이 봤다. 그들은 생각의 속도가 남다르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며 "그런데 포기도 빠르다. 조금만 막혀도 금방 그만둔다. 나는 정반대로 계속 생각하고 붙잡는다"고 말했다.
끈기는 공 박사가 20년 넘게 농사를 지으며 체득한 습관의 결과물이다. 옥천고 2학년 시절 입시 공부에 신물이 나 학교를 그만둔 이후 그는 매일 새벽 수박밭을 매러 나섰다.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다만 수박을 팔러 가끔 대전 시내에 나가면 항상 서점에 들러 수학책이나 과학책을 읽었다.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는 밭 앞에 흐르는 금강을 보며 곱씹어 소화했다.
28세가 되던 해 대전역 앞에서 우연히 야학을 연다는 전단을 보고 홀린 것처럼 등록한 까닭이다. 당시 KAIST 박사과정 학생들이 자원봉사 교사로 있었다. 공 박사에게 야학은 삶의 전부였다. 저녁 6시 수업을 듣기 위해 새벽에 농사를 나가고 기차로 집이 있는 충북 영동과 대전을 오갔다. 그래도 공부가 재밌어 1년6개월 과정을 5년 동안 참석했다.
야학 선생님들이 졸업하자, 공 박사는 미뤄 뒀던 검정고시를 보고 배재대 전산전자물리학과에 입학했다. 학교의 추천을 받아 KAIST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수업은 어려웠다. 이에 기초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근처 충남대 물리학과 교수 다섯 명에게 청강을 부탁했다. 그중 세 명이 그를 받아줘, 공부를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MIPT와의 인연은 그 시기 시작했다. 배재대에 파견을 온 MIPT 소속 연구원들과 만난 것이다.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수박 농사가 처참하게 망한 점도 전화위복이 됐다. 그때까지 병행하던 농업은 접고 공부에만 매진하기로 했다. 그는 미국에 비해 유학비가 저렴했던 MIPT로 유학을 떠났다.
공 박사는 "1년 동안 예비학부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했지만 수업을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며 "결국 본과정 한 학기 만에 시험을 못 봐 퇴학을 당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한국에서 낙담하고 있는데 학교로부터 돌아오라는 메일을 받았다"며 "청강했던 양자역학 수업에서 만점을 받아, 해당 과목 교수님이 저를 구제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듬해 항공공학과로 재입학한 공 박사는 기회를 낭비하지 않았다. 수업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잠들 때까지 반복해서 듣고, 하루에 이가 세 개씩 빠질 정도로 공부만 했다. 그 결과 석사과정을 항공공학과 수석으로 졸업하고, 박사과정 학위 논문 또한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공 박사의 목표는 한국 극초음속 학문에 기여하는 것이다. 화성 대기권 진입을 주로 연구하는 그는 마하 20 이상의 환경에서 우주 발사체 등이 어떻게 견디는지를 시뮬레이션한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MIPT 박사후연구원을 포기하고 귀국했지만 한국에서 얻은 기회를 살려 지구 대기권 재진입 연구까지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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