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인간 본성에 대한 냉혹한 서정시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선택이 누구를 만나느냐로 바뀐다.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잘못된 만남 하나가 어떻게 인간을 나락으로 몰고 가는지 6명의 인물이 뒤엉킨 지옥 같은 악연의 고리로 그려낸다. 한 명의 패륜이, 또 한 명의 방관자를 만들고, 한 명의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회전문 속에서 이 작품은 끝내 파멸로 걸어 들어간다.
'악연'은 박재영(이희준)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어린 시절부터 잔악했던 이 소년은 한심한 청년으로 자랐고, 성실을 배반한 무책임 속에서 머저리로 살아간다. 무엇보다 그는 인간 이하의 패륜아다. 한 방을 노리다 사채빚까지 진 그는, 끝내 아버지를 죽여 보험금을 타 내려 한다. 그의 선택은 악행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하지만 '악연'은 그 구차한 핑계를 결코 면죄부로 다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박재영은 또 다른 악의 기폭제가 된다. 그의 아버지를 죽이기 위한 계략은 물류창고에서 함께 일했던 조선족 청부업자 길룡(김성균), 길룡이 박재영 몰래 끌어들인 감방 동기 김범준(박해수), 그리고 그를 둘러싼 오래된 인연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 선택은 연쇄적으로 죄의 씨앗을 퍼뜨린다. 박재영이 던진 악의 돌멩이는 주변 인물들의 가라앉아 있던 어둠까지 깨운다.

이 시리즈의 백미는 한상훈(이광수)이라는 인물이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오히려 지질해 보일 정도로 소심한 캐릭터. 하지만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건에 휘말리고, 그 죄를 짊어진 채 무너져가는 과정은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처음엔 사고였지만 그 뒤에 숨어있던 거대한 음모를 발견하는 순간, 그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음을 깨닫는다.
사건의 진상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보이는 이광수의 눈빛은 소름 돋을 만큼 섬뜩하다. 억눌려 있던 인간의 감정이 폭발하는 분노와 광기를 압도적인 밀도로 표현한다.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혼란스러운 피해자 연기를 넘어서, 주변 인물들이 배신자였음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차오르는 절망과 폭주를 한계선까지 밀어붙인다.
김범준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연' 서사의 중심축이다. 그는 스스로를 신이라 착각하는 자다. 남을 이용하고 죄를 조작하며 타인의 목숨을 가벼이 여긴다. 악의 거대한 중력장이다. 모든 인물은 김범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변화하고, 끝내 파멸한다. 박해수는 이 인물을 그저 악역이 아닌, 관찰과 조작의 천재로 만들어낸다. 그의 연기는 날카롭고 섬세하며 섬뜩하다. 죽어가는 인간을 보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정함은 보는 이의 감정선조차 마비시킨다.

신민아가 연기하는 이주연은 '악연'의 또 다른 무게 중심이다. 과거 박재영과 그 친구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이자,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내 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병원에서 박재영이라는 이름을 맞닥뜨린 순간, 그의 심연이 요동친다. 그가 병실에서 마주하는 그 얼굴이 진짜 박재영이 아니라 김범준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상처는 이미 깊고 오래된 것이며 복수는 감정이 아닌 생존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악연'은 이주연에게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그는 복수하지 않는다. 아니, 복수할 수 있었음에도 참아낸다. 그 참음이 진짜 구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악순환의 시작인가. '악연'은 끝까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이주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묻는다.
'악연'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이 또 다른 사람을 벼랑 끝으로 밀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이에게 악을 물려주는 방식. 이 드라마의 구조는 수직이 아니라 원형이다. 죄가 끝나지 않고 다시 반복된다. 시리즈 마지막 회 엔딩은 그 공포의 클라이맥스다. 드라마는 마지막 장면으로 인간의 선택으로 형성된 지옥임을 강조한다.

이일형 감독은 이 복잡한 구조를 절묘하게 엮어낸다. 단 하나의 떡밥도 허투루 쓰지 않고 회차를 거듭할수록 퍼즐처럼 맞춰지는 전개는 시청자에게 흥미로운 퍼포먼스를 선사한다. 그것은 잔혹함의 미학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혹한 서정시다.
'악연'은 어떤 면에서 극단적인 인간의 군상극이다. 각자의 욕망, 허영, 죄의식, 복수심, 생존 본능이 마주할 때 어떤 결정을 내릴지 묻는다. 박재영의 무정, 길룡의 사정, 김범준의 탐욕, 이유정의 허영, 한상훈의 두려움, 이주연의 분노. 이 모든 것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극적 재미를 위해 분명히 모든 상황이 과장됐지만, 하늘이 아닌 땅에 붙은 현실의 이야기고 그래서 심장이 욱신거리는 저릿함을 느끼게 한다. 총 6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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