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 정도여야 할 수 있는 일 [인문산책]

2025. 4. 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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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향년 55세이자 왕의 자리에서 만 20년 일한 끝이었다.

삼국통일을 말하자면 언제나 무열왕 김춘추와 각간 김유신을 들지만, 실질적 주역은 문무왕이라 해야 옳다.

일세의 영웅으로 거대한 무덤을 남기려는 여느 왕과 달리, 문무왕은 지상의 흙 한 줌조차 허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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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경주 감포 앞바다 문무대왕릉 일출은 기도효험이 있다고 소문난 덕분에 무속인들도 자주 찾는 일출명소다. 김성환 기자

신라 문무왕이 세상을 떠난 해는 681년이다. 향년 55세이자 왕의 자리에서 만 20년 일한 끝이었다. 삼국통일을 말하자면 언제나 무열왕 김춘추와 각간 김유신을 들지만, 실질적 주역은 문무왕이라 해야 옳다. 무열왕은 백제의 사비성을 빼앗는 데 그쳤을 뿐, 이후 모든 과정은 문무왕 손에서 이뤄졌다.

문무왕이 왕으로서 맡은 일에 얼마나 진력했는지를 짐작게 하는 사료가 있다. 삼국사기에 실린 조서(詔書)에는 '풍상을 무릅쓰다 보니 고질병이 생겼으며, 정무에 애쓰다 보니 더욱 깊은 병에 걸렸다'고 적혀 있는데, 깊은 병이란 요즈음으로 치면 암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세자 때부터 통일을 이루는 데 걸린 스무 해 남짓, 전장을 누빈 무리는 그의 몸에 암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사이 오로지 나랏일밖에 아무 생각이 없던 그였다.

무엇보다 문무왕 앞에 숙연해지는 것은 그의 유언 때문이다. 다시 삼국사기를 보면, '옛 영웅도 끝내는 한 무더기 흙더미, 꼴 베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서 굴을 팔 것이니'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인력만 수고롭게 할 따름, 분묘에 치장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스스로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하면서도, 끝내 문무왕은 즐겨하는 바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삼국유사에는 왕의 유언이 훨씬 구체적으로 나온다. 화장한 뼈를 동해 가운데 있는 큰 바위 위에 뿌리라 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경북 경주 감포 앞바다의 대왕암이다. 한 무더기 흙 대신 바다 가운데 바위를 묘로 택했다. 죽은 뒤 그 바다 밑에서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살아서도 죽을 만큼 나랏일만 하던 그가 아니었던가.

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인데, 심드렁하다면 놀랍기로는 그다음이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지의(智義) 법사가 '용은 짐승'이라며 그런 환생을 염려하자,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 추악한 업보로 짐승이 되더라도 괜찮다'고 대답한다. 과연 멸사봉공의 끝판왕이다.

일세의 영웅으로 거대한 무덤을 남기려는 여느 왕과 달리, 문무왕은 지상의 흙 한 줌조차 허비하지 않았다. 짐승으로 다시 태어나면 추악한 업보라며 손가락질받더라도, 나라를 지키는 용이라면 괘념하지 않았다. 이런 치열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사는 내내 제 본분에 빈틈없었기 때문이리라. 권력에 취해 함부로 누리는 이들에게는 결코 바라지 못할 바이다.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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