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섭의전쟁이야기] 전후 80년, 다시 보는 중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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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2차대전 종전 80주년이자 우리가 광복을 쟁취한 지 80년이 되는 해다.
일본은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해 항복했지만, 실제로 일본이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지상군을 투입해 싸운 전쟁은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중일전쟁이었다.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연합국은 일본 격퇴를 위해 본격적으로 중국을 지원했지만, 유일한 보급로였던 버마 루트는 일본군의 공세로 차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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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중국은 일본과 정면으로 맞붙기에는 역량이 부족했기에, 일본의 속전속결 전략을 무너뜨리기 위해 광대한 국토와 인적 자원을 활용해 지구전, 소모전으로 끌고 가는 전략을 택했다.
둘째, 일본군의 점령방식 자체가 전쟁을 더욱 잔혹하게 만들었다. 일본은 점령지역에서 식량과 자원을 약탈했고, 난징대학살에서 보듯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과 성폭행을 자행했다.
셋째, 전쟁은 군과 민이 함께 싸우는 총력전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 민중은 연극과 문예 활동을 통한 문화항쟁, 지역 단위의 반일운동과 봉기에 참여했으며, 국민당군과 군벌, 공산당군뿐 아니라 한국의 독립군과 광복군도 함께하며 국제적 연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넷째, 중국 전선을 2차대전 전략에서 후순위로 여긴 미국과 영국의 전략적 판단도 전쟁을 길어지게 했다.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연합국은 일본 격퇴를 위해 본격적으로 중국을 지원했지만, 유일한 보급로였던 버마 루트는 일본군의 공세로 차단되었다. 미국은 B-29 기지 설치, 군사고문단 및 OSS(전략사무국) 파견 등을 통해 간접 지원했다. 그러나 중국 대륙에는 끝내 미·영 연합군이 투입되지 않았다.
1944년 중반, 일본이 중국 내륙으로 진출하려 한 ‘대륙타통작전(이치고 작전)’ 이후 미국과 중국 간의 불협화음은 더욱 심화되었다. 미국은 국민당군의 작전 역량 부족과 장제스 정부의 무능과 내부 부패에 크게 실망했다. 반면 마오쩌둥의 공산당군은 중일전쟁 기간 민심을 얻고 전력을 축적하며 대안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결국 미국은 중국군만으로는 일본을 굴복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소련의 만주 개입을 요청하게 된다.
중국은 소련과 중소우호조약을 체결했지만, 소련의 개입과 공산당군의 전력 비축은 곧 국공내전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중일전쟁은 단순한 일본과 중국 간의 전쟁이 아니라, 전후 동아시아 냉전의 출발점이 되고 말았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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