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칼럼] FRP 선박 처리시스템 구축이 우선이다
지난달 21일 고밀도 폴리 에틸렌(HDPE)으로 만든 어선 ‘카이브 3호’ 진수식을 가졌다. 유리섬유 강화플라스틱(FRP) 선박을 대체할 새로운 소재의 친환경 선박 탄생으로 크게 축하할 일이다. 해양수산부의 어선등록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등록 어선의 약 98%인 6만4233척이 FRP 재질로 건조됐다. FRP 선박은 내구성이 뛰어나고 제작이 쉽지만 재활용이 어렵고 소각 외에는 특별한 처리기술도 없다. 특히 건조 후 26년이 지나 폐선 선령에 도달한 FRP 어선도 1만994척에 달하며, 매년 800척씩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노후 FRP 선박들이 해안가에 방치되면서 해양 환경 오염과 선박 운항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FRP 선박의 해안가 방치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부터 친환경 어선 개발에 노력해 왔다. 이번 HDPE 어선은 성능 시험에서 최대 속력이 32노트로 알루미늄 어선(30.7노트)보다 뛰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알루미늄 경합금 소재 선박 보급의 큰 걸림돌은 건조 비용이 FRP 선박보다 1.3배 높다는 점이다. 그런데 HDPE 어선의 건조 비용은 알루미늄 경합금 어선에 비해 30% 저렴해 이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대응으로 인한 친환경 선박 증가와 HDPE 선박의 상용화는 노후 FRP 선박의 처리 수요를 크게 증가시킨다.
FRP 선박 처리기술 개발도 친환경 어선 개발과 동시에 진행됐다. 폐 FRP 선박은 폐기물 처리시설에서 소각되고 있으나, FRP 선박의 구성성분인 유리섬유가 폐기물 처리시설의 분진 수집 시스템 등을 손상시켜 폐기물업체도 처리를 기피하는 실정이다. 2006년에는 고열로 FRP 선박을 녹여 처리하는 시범기기(파일럿 플랜트)의 개발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실용화되지 못했다. 이후에 폐 FRP를 분쇄해 건축재료로 활용하는 연구 등 다양한 기술개발이 시도됐으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용화된 기술이 없다. 그럼에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여전히 FRP 선박 대체 소재 개발과 재활용 기술개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FRP 선박 문제 해결의 핵심은 재활용 기술 개발과 더불어 처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폐 FRP 선박은 부피가 커 운반이 어렵고, 파쇄도 힘들다. 따라서 선박의 수집 운송 해체 파쇄 등 전 과정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시스템이 구축돼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본 미국 등은 폐 FRP 선박을 시멘트 첨가제(보강제)로 재활용하는 기술개발에 성공해 상용화하고, 재횔용시스템 구축을 통해 폐 FRP 선박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기술 개발에 매달리기보다는 해외에서 성공한 기술을 도입하거나 유사한 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처리시스템 구축도 병행하는 방향으로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최근 한 지자체는 폐 FRP 선박으로 그린 메탄올을 생산하는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처리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기술 활용이 어렵다. 일본과 미국 등 폐 FRP 선박 재활용시스템을 구축한 국가들이 재활용 기술개발과 처리시스템 구축 사업을 패키지로 진행한 이유이다. 노후 FRP 선박의 증가와 대체 소재 어선 개발 등으로 폐선 처리 대상 선박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처리시스템의 부재로 이들 선박들이 적절하게 처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따라서 FRP 선박 처리시스템 개발은 적어도 재활용 기술개발과 병행하거나 먼저 시작돼야 한다.

방치 선박 발생의 또 다른 원인으로 높은 처리비용이 지적되고 있어 FRP 선박 처리시스템을 구축할 때는 이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기초 지자체보다는 광역 지자체 또는 전국 단위의 처리시스템 구축을 통해 비용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정부 산하기관에서 FRP 선박처리시스템을 운영함으로써 시스템의 안정성도 확보해야 한다. 정부(지자체)는 매년 방치 선박의 운반 소각 등 제거비용과 실태조사 비용 등 행정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이 예산을 시스템 운영기관에 지원해 처리비용을 낮춤으로써 방치 대신 처리시스템을 통한 적절한 처리를 유도할 수 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