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항 클론과 입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오버랩 [디스토피아+]

이정현 평론가 2025. 4. 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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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문학과 디스토피아
7편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18세 되면 죽어야 하는 복제인간
친밀감 모르도록 학교 교육받을 뿐
예술도 미래도 허락되지 않아
죄의식으로 성장한 순응적 인간
생각 막는 한국 교육과 닮은 꼴

복제인간들은 성인이 되기 직전 '장기 이식'이란 목적을 달성하고 사라진다. 그들의 짧은 생은 학교, 도서관, 성당, 박물관을 오가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친밀감을 갖지 않도록 강요받지만 복제인간은 인간의 감정을 품는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속 세상은 인간의 살아가는 방식이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경고한 SF소설이지만, 읽는 내내 한국의 교육을 풍자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나를 보내지 마」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네버 렛 미 고'의 스틸컷. [사진 | 더스쿠프 포토]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의 장소적 배경은 '헤일셤'이라는 통제구역이다. 이 구역에는 복제인간(클론)들이 거주한다. 그들은 '정상 인간'들에게 장기를 공급하기 위해 배양됐다.

이런 설정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ㆍ1993년)' '아일랜드(마이클 베이ㆍ2005년)' 등과 흡사하다. 영화를 아는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이어질 서사를 예측할 수 있다.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분노한 복제인간이 탈출을 시도하고, 그들을 제거하려고 국가기관이 개입해 숨 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영화에 익숙한 독자의 예측을 벗어난다. 소설 속의 '헤일셤'은 너무도 고요하다. 헤일셤에는 여느 동네와 비슷한 학교, 도서관, 성당, 박물관 등이 있고, 복제인간들은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소설은 화자 '캐시 H'라는 복제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전개된다. 헤일셤에서 성장하는 클론들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다. 영화와 그림을 보고 음악을 감상한다. 선생님을 동경하고 서로 사소한 다툼을 반복한다.

소설 대부분은 클론들의 학교생활을 다루고 있다. 평범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등장인물들이 클론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복제인간이라는 설정을 제외하면 캐시와 친구들의 성장기는 여느 인간과 다르지 않다.

한가지 다른 것은 헤일셤에 거주하는 복제인간들의 평균 수명이 16~18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16세가 넘어 신체가 성인에 이르면 장기 기증 전에 임시로 대기하는 공간인 '코티지'로 옮겨진다.

그러다가 외부에서 장기 이식 요구가 들어오면 차출된다. 그들은 대개 그렇게 '일생'을 마친다. 일부는 장기 기증 시기를 늦추는 대신 자기 또래 클론들을 돌보는 간병사로 남을 수 있다. 화자인 캐시는 자신이 간병사로 일하면서 다른 친구들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요컨대 헤일셤의 클론들은 반항하거나 탈출을 꿈꾸지 않는다. 신체적 발육이 끝난 후 친구들과 이별하는 것이 유일한 고통이다. 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15-16세에 이르러 섹스와 쾌락에 호기심을 갖게 되지만 그들의 생식기는 이미 제거된 상태다. 헤일셤에서 금기시하는 것은 성관계보다는 성관계를 나누면서 생기는 '사적이고 내밀한 감정'이다.

학교 수업은 주로 암기 위주로 진행하고 미술과 음악과 같은 예술은 색다른 놀이로 취급한다. 클론들의 요구는 기껏해야 친한 친구와 같은 시기에 코티지로 보내달라는 것이다. '장래희망'을 갖는 클론들이 있으면 선생들은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하지 말라고 종용한다. 선생들의 중요한 임무는 클론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차단하는 것이다.

"너희들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118쪽)."

캐시의 친구 토미는 교육받은 것과 달리 독특한 그림을 그린다. 토미는 동물 그림에 자신의 감정을 반영해 캐시를 향한 사랑을 표현한다. 선생들은 생식기를 제거한 클론들이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에 놀란다.

코티지에서 자기 내면을 담은 그림을 그리면서 생명 연장을 꿈꾸는 토미와 캐시의 계획은 좌절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만적인 교육을 받았음을 알고 항변하지만, 다른 삶의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까 지금 선생님 말씀은 우리가 받은 모든 수업,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란 말씀인가요?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다란 말인가요? … 마치 왔다가 가버리는 유행과도 같군요. 우리에겐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인데 말이에요(365쪽)."

이 소설은 인간의 살아가는 방식이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경고한 SF소설이지만, 읽는 내내 '헤일셤'이 가상 공간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풍자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저항하지 않는 클론'이라는 모티브는 특히 한국 교육의 현실과 겹친다. 한국 사회의 교육 시스템은 예측 가능한 인간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모가 설정한 미래를 위해 입시경쟁에 몰입하고, 19살에 치른 시험이 인생을 결정짓는 입시 제도를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의 학교는 거대한 '헤일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ㆍ고교 선생들의 정치적 발언은 금기시되고, 학생들은 철저하게 점수로 가치를 평가받는다. 엘리트들은 입시 결과를 일종의 전리품으로 생각하며 기득권을 독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학교와 부모는 그런 독점을 승리의 상징으로 포장하며 권장한다.

부와 학벌의 세습과 경쟁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예술은 본연의 저항 정신을 잃고 색다른 놀이로 전락하고 만다. 성교육 역시 성적 엄숙주의에 바탕을 두고 금기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 교육은 죄의식을 내면화하고, 순응하는 인간을 만든다. 장기 기증을 위해 클론들이 대기하는 장소인 '코티지'는 사회에 편입되기 전 대기하는 곳인 '대학'과 흡사하다.

[사진 | jtbc] 

그러나 미래의 가능성이 차단된 상황에서도 헤일셤의 클론들은 내면을 표현한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애틋한 기억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헤일셤의 정교한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것은 클론들의 전면적인 반란이나 탈주가 아니다. 삶의 개별성을 자각하면서 클론들의 감각은 인간보다 예민해진다.

생식기가 제거돼 생물학적인 잉태가 불가능한 존재인 그들은 기어이 친밀감이라는 감정을 잉태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클론들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상식이 된 삭막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토미와 캐시의 사랑에 어울리는 시의 한 구절을 여기에 적어둔다.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낳을 것이고/ 우리가 낳은 우리들은 정말로/ 살아갈 것이다(하재연ㆍ'안녕, 드라큘라' 중에서)."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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