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혐의로 쫓겨난 맥캐릭 前 미국 추기경 94세 사망

김태훈 2025. 4. 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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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각별한 신임 얻어
한때 미국에서 가장 유력한 가톨릭 성직자
추기경 박탈에 이어 사제직에서도 제명돼

성범죄 혐의로 추기경에서 물러난 데 이어 가톨릭 사제직마저 박탈당한 시어도어 맥캐릭 전 미국 수도 워싱턴 대교구장이 9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몰락 전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력한 가톨릭 성직자였다.

4일(현지시간) AP,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현 워싱턴 대교구장 로버트 맥엘로이 추기경은 이날 “맥캐릭이 전날(3일) 미주리주(州)에서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그가 사제직을 수행하는 동안 해를 끼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밝혔다.

시어도어 맥캐릭(1930∼2025) 전 신부. 미국 성직자로 2001년 추기경에 올랐으나 성범죄 정황이 드러나 2018년 가톨릭에서 사실상 추방됐다. AP연합뉴스
맥캐릭은 1930년 7월 뉴욕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3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가 공장 근로자로 일하며 맥캐릭을 키웠다. 그는 어린 시절 집 근처 성당을 다닌 것을 계기로 가톨릭 교회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장차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외국어를 열심히 배웠다. 덕분에 영어 외에 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맥캐릭이 훗날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가톨릭계 거물로 성장하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맥캐릭은 28세이던 1958년 신학 석사 학위 취득과 동시에 뉴욕 대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1977년 주교로 올라섰고 2001년에는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발탁됐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특히 맥캐릭을 아껴 원래 뉴저지주(州) 뉴어크 대교구를 이끌던 그를 2000년 수도 워싱턴 대교구장으로 옮기게 했다. 그때부터 맥캐릭은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미국 대통령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력 인사가 되었다. 그는 또 교황청 인권 사절로 위촉돼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을 돌며 교황의 뜻을 전했고, 이 과정에서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와도 만나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2005년 75세가 된 맥캐릭은 가톨릭 규정에 따라 워싱턴 대교구장을 그만두고 은퇴했으나 이후로도 명성을 누리며 세계 가톨릭계에서 왕성히 활동했다.

2001년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왼쪽)과 시어도어 맥캐릭 추기경이 만난 모습. 요한 바오로 2세는 맥캐릭을 무척 아낀 나머지 그의 성범죄 의혹에 단호히 대처하지 못했다. AP연합뉴스
2018년 맥캐릭이 수십년 전에 청소년을 성추행하는 등 여러 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정황이 제기됐다. 교황청의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짐에 따라 맥캐릭은 추기경을 비롯한 모든 직위를 박탈당했다. 이듬해인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사제에서도 제명했고, 이로써 그는 교계에서 사실상 추방됐다. 당시 교황청 보고서는 “요한 바로오 2세 교황이 맥캐릭과의 특수 관계 탓에 처음 의혹이 불거졌을 때 단호히 대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맥캐릭은 뒤늦게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질 처지가 되었으나 90세를 넘긴 고령에 치매를 앓는 그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맥캐릭은 법원의 유죄 선고가 이뤄지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가톨릭 사제에 의한 학대 경험이 있는 피해자 단체는 맥캐릭의 사망 후 발표한 성명에서 “그의 삶은 끝났지만 이것이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 실현은 아니다”고 밝혔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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