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에서 딥폼으로…소비 트렌드 재편

한겨레 2025. 4. 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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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span>
<span style="color: #333333;">CULTURE & BIZ </span>
2024년 7월17일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4 서울진로직업박람회에서 어린이들이 숏폼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숏폼은 콘텐츠 소비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짧은 시간에 동영상 콘텐츠 시장의 주류로 올라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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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동영상 콘텐츠 시장을 이끈 주류 트렌드는 단연 ‘숏폼’(Short Form)이었다.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로 대표되는 이 짧은 영상들은 등장과 함께 우리의 일상을 빠르게 장악했다. 시간이 갈수록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의 사용 시간은 꾸준히 증가하며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주요 성장 동력이 됐다.

이러한 숏폼의 폭발적 성장 뒤에는 사용자 심리를 정확히 파고든 여러 요인이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가변적 보상 체계의 활용이다. 다음 영상이 어떤 내용일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지속적인 스크롤을 유도한다. 숏폼 시청 중 사용자들은 일반 TV 시청보다 훨씬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이러한 감정적 롤러코스터가 콘텐츠 소비를 지속하게 만드는 주요 동인이다.

또한 숏폼은 현대인의 파편화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공략한다. 잠깐만이라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콘텐츠 소비를 시작하지만, 대부분 의도한 시간보다 훨씬 오래 보게 된다.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중심으로 ‘트렌드나 화제에서 뒤처질까봐 숏폼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인한다’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활용한 숏폼은 콘텐츠 소비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짧은 시간에 동영상 콘텐츠 시장의 주류로 올라섰다.

‘더 짧게, 더 자극적으로’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가득 찬 플랫폼들이 사용자의 시간과 관심을 빠르게 빨아들이는 동안, 콘텐츠 산업의 전반적 경향 역시 ‘더 짧게, 더 자극적으로'라는 방향으로 급속히 무게 중심을 옮겨갔다.

‘짧아야 먹힌다’라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며 기존 콘텐츠 제작자들은 생존을 위해 긴 내러티브를 포기하고 3분 이내로 핵심을 압축하는 기술을 습득해야 했다. 방송사와 레거시 미디어는 30분짜리 TV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를 15초로 재편집하는 ‘숏클립' 전략에 집중했다. 광고 업계에서는 5초 만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스킵 불가능한 순간'에 모든 크리에이티브(창의적) 역량을 집중했고, 교육 콘텐츠조차 ‘마이크로 러닝'이라는 이름으로 지식을 잘게 쪼개 전달하기 시작했다.

제작자들이 우스갯소리처럼 말하는 이러한 ‘숏폼 강점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2024년 초부터 작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가 관찰되기 시작한다. 숏폼 콘텐츠의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진 이른바 ‘롱폼’(Long Form) 콘텐츠에 대한 시청 시간이 줄지 않고 오히려 점차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때 틱톡이나 릴스에 대항해 쇼츠 콘텐츠를 밀던 유튜브는 최근 롱폼 콘텐츠에 대한 추천을 강화하는 알고리즘 개선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는 사용자들의 실제 시청 행태를 반영한 결과라고 발표했다. 시청 시간 등의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숏폼의 인기로 위축되었던 롱폼 콘텐츠가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롱폼의 재등장에는 숏폼 중심의 콘텐츠 전략이 직면한 여러 문제들이 숨어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알고리즘 기반의 초개인화 추천이 가져온 정보 편식이다. 많은 사용자들이 추천 알고리즘에 갇힌 느낌, 일명 ‘필터 버블’을 경험하고 있다. 틱톡의 ‘포 유어 피드'(For Your Feed) 페이지는 끝없는 스크롤을 유도하는 완벽한 사용자 경험 설계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사용자를 특정 관심사에 가두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두 번째 문제는 짧은 콘텐츠의 끝없는 소비가 가져온 주의력 분산과 피로감이다. 숏폼 콘텐츠 중심 플랫폼 사용자 중 상당수가 ‘디지털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스크롤 피로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세 번째로, 표면적 정보만 제공하는 숏폼의 지식 전달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정보를 60초 영상으로 단순화해 발생하는 잘못된 정보의 확산 사례가 늘어나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소셜미디어에서 얻은 정보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광고주와 플랫폼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이 직면한 지속가능성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숏폼 콘텐츠의 광고 효율은 장시간 콘텐츠보다 낮은 경향이 있으며, 쇼츠 플랫폼의 광고 수익 분배 모델이 변화함에 따라 크리에이터들의 불만도 증가하고 있다.

끝없는 스크롤의 시대, 그 이후

이런 분위기는 트렌드에 민감한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한때 15초 쇼츠로 이름을 알렸던 해외의 에마 체임벌린 같은 크리에이터들이 롱폼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이러한 콘텐츠가 콘텐츠 형태랑 관계없이 충성도 높은 시청자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콘텐츠 소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를 쇼츠 콘텐츠의 한계와 피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의미 있는 몰입형 경험을 찾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표면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일부 연구에서는 이런 현상을 롱폼과는 다른 개념인 ‘딥폼(Deep Form) 콘텐츠’라 부르기도 한다. 숏폼에 비해 단지 시간만 늘어난 것이 아닌 콘텐츠의 깊이까지 더해졌다는 의미다.

최근 60분 이상의 팟캐스트, 심층 다큐멘터리, 에세이 형식의 유튜브 등 딥폼 콘텐츠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미국 엔에프엘(NFL) 출신 선수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유튜브 갈무리

최근 60분 이상의 팟캐스트, 심층 다큐멘터리, 에세이 형식의 유튜브 등 딥폼 콘텐츠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1시간 이상 팟캐스트형 콘텐츠의 청취율은 뚜렷하게 증가하는 추세이며, 다큐멘터리 같은 장시간 콘텐츠의 시청 시간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찰된다. 경제나 재테크 같은 실용적인 분야 외에도 역사나 인문, 정치 관련 딥폼 콘텐츠의 성장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빠른 정보 소비의 주역으로 여겨졌던 MZ세대 내에서도 깊이 있는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짧은 콘텐츠보다 깊이 있는 콘텐츠에 더 만족감을 느낀다'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예능 콘텐츠들이 잇달아 1시간 이상 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현상도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다.

전문가들은 이제 콘텐츠 소비가 ‘초단편'과 ‘초장편'으로 양극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60초 미만과 60분 이상 콘텐츠의 소비 비중이 증가하는 한편, 5~30분 길이의 중간 형태 콘텐츠는 감소하는 추세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숏폼, 주말 저녁 시간대에는 딥폼 소비가 뚜렷하게 증가하는 패턴도 발견된다. 같은 사용자가 오전에는 짧은 콘텐츠를, 저녁에는 긴 콘텐츠를 소비하는 현상도 관찰된다. 이는 스트레스 해소와 휴식을 위한 숏폼, 자기계발과 지식 습득을 위한 딥폼이라는 명확한 용도 구분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딥폼 콘텐츠는 몰입형 경험을 통해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한다. 몰입형 콘텐츠 소비는 브랜드 인지도를 숏폼보다 더 오래 유지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팬덤이 강한 분야일수록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콘텐츠 소비의 양극화 현상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양극화 지속'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향후 중간 길이 콘텐츠는 더욱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다고 중간 길이 콘텐츠가 완전히 도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딥폼 성장세의 이면에는 인공지능(AI) 기술도 간과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은 딥폼 콘텐츠 제작을 위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지만 소비는 오히려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짧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공지능의 요약 기능이 오히려 딥폼 콘텐츠의 소비를 촉진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근에 이러한 트렌드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플랫폼과 비즈니스 모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딥폼에 특화된 플랫폼들이 일반 소셜미디어보다 빠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몇몇 지식 구독 플랫폼의 성장은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다. 콘텐츠 생산자와 투자자들로서는 이제 딥폼과 숏폼을 균형 있게 활용하는 전략이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략을 구사하는 브랜드들은 고객 참여도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콘텐츠 소비 트렌드의 변화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시사한다. 앞으로 콘텐츠 산업 전체 매출에서 딥폼 콘텐츠의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깊이와 몰입이 가져오는 새로운 가치의 제안은 단순한 노출 중심에서 ‘의미 있는 연결'로 진화하는 콘텐츠 마케팅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한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정보의 신뢰성과 깊이'를 콘텐츠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숏폼과 딥폼의 공존은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한다. 빠른 정보 소비와 깊은 몰입 경험이라는 서로 다른 니즈를 충족시키며, 콘텐츠 생태계는 더욱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형식을 선택하든, 결국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숏폼 콘텐츠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제 우리는 더 깊고 의미 있는 콘텐츠가 공존하는 균형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단순한 자극과 즉각적 만족을 넘어, 진정한 가치와 깊이를 추구하는 이 흐름은 콘텐츠 산업의 미래 방향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결국 형식보다 본질이 중요하다는 오래된 진리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rabike04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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