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팍팍해지니 치솟는 ‘엥겔지수’

정남구 기자 2025. 4. 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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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중국에선 ‘식의주’라고 한다. 영어 표현도 식의주(Food, Clothing and Shelter)다. 한국과 일본에선 이와 달리 ‘의식주’라고 한다. ‘의’가 ‘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일까?

의식주란 단어는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만들어져 대한제국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 ‘왔다 갔다’를 일본에서는 ‘잇타리 기타리’(行ったり来たり·갔다 왔다)라고 한다. 모음으로 시작하는 게 발음하기 편하다. 그래서 식의주가 아니라 의식주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은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넉넉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衣食足 則知榮辱)”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의식’에 ‘주’(住)를 붙여 새 말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의식주라고 말은 하더라도 ‘의’보다는 ‘식’이 삶에 더 필수적이다.

19세기 독일의 에른스트 엥겔(Ernst Engel, 1821~1896)은 작센 지역 통계국장으로 일할 때 벨기에 노동자들의 가계 지출을 조사하면서 ‘가계의 소득이 많을수록 가계 지출에서 식료품비의 비중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소득이 많든 적든 누구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료품은 사야 한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여유자금이 늘어나면서 식료품 외 다른 분야에 소비가 늘어난다. 엥겔은 1857년 ‘벨기에 노동자 가족의 생활비’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이를 발표했다. 엥겔의 법칙이다.

가계소비서 식료품비 비중 의미

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엥겔지수라고 한다. 가정에서 요리해 먹는 것 말고도 사먹는 일이 많은 오늘날에는 식료품비(비주류 음료 포함)에 외식비를 포함한 식비가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엥겔지수로 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식료품비만 계산하는 경우도 있다. 2020년 우리나라 가계의 소득계층별 엥겔지수(외식비 포함)를 보면, 소득 하위 20% 계층은 32.5%인데 중간소득층(40∼60%계층)은 30.1%, 상위 20% 계층은 25.5%다. 엥겔의 법칙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엥겔지수는 가계뿐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도 경제적 복지 수준을 평가할 때 쓰인다.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엥겔지수가 낮다. 한국개발연구원(2020년)이 식료품비만으로 계산한 2016년 각국의 엥겔지수는 미국 6.4%, 한국 13.4%, 중국 22.6%, 나이지리아 58.9% 등이다.

엥겔의 법칙은 국가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면 농업 부문의 비중이 작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경제성장으로 그 나라 국민의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엥겔지수는 떨어진다. 1990년대부터 고성장을 해온 중국의 통계국 발표를 보면, 도시가계의 엥겔지수(소비지출에서 식품, 담배, 주류 소비의 비중으로 계산)가 1990년 54.2%에서 2000년 39.4%, 2010년 35.7%, 2021년 29.8%로 계속 낮아졌다.

엥겔지수가 하염없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선진국의 경우 나라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엥겔지수가 12∼18% 수준으로 떨어진 뒤에는 더는 떨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유행 때처럼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 일시적으로 상승할 때도 있다. 그런데, 엥겔지수가 상승 추세로 바뀐 나라도 있다. 일본과 한국이 대표적이다.

일본 총무성이 2025년 2월7일 공개한 2024년 일본 가계 소비지출 자료를 보면, 2인 이상 가구의 엥겔지수가 28.7%였다. 1981년 이후 43년만의 최고치였다. 2024년 일본 가계의 실질 소비지출은 1.1% 감소했는데, 식비는 0.4% 줄어드는 데 그치면서 식비의 비중이 전년보다 더 높아졌다. 지난해 일본에서 쌀값이 급등하고 식재료 가격도 크게 올라 식비 부담이 커진 것이 엥겔지수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가파르게 상승

일본의 고민거리는 엥겔지수 상승이 최근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2005년 23.7%에서 바닥을 친 뒤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통계는 일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추이다. 2005년부터 2020년까지 노동자 1인당 실질임금이 미국에서 19.5%, 독일에서 15.4%, 프랑스에서 9.7% 영국에서 4% 오르는 동안 일본에서는 거꾸로 1% 감소했다. 일본의 실질임금은 2021년 0.6% 상승했지만, 2022년(-1.0%), 2023년(-2.5%), 2024년(-0.2%) 3년 연속 감소했다. 노동자 가계의 생활수준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

우리나라 엥겔지수(2인 이상 도시가구)는 2010년 26.4%를 바닥으로 상승 추세다. 2020년 28.5%로 올랐고,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2022년 29.0%까지 뛰었다. 2023년 28.7%로 내려왔다가 2024년 다시 28.8%로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들어 가계의 외식비 지출이 빠르게 늘었다. 가계 소비지출에서 외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1년 12.5%에서 2024년 14.5%로 커졌다. 전체 식비 중 외식비의 비중도 같은 기간 46.8%에서 2024년 50%를 넘겼다. 밥을 사먹으면 식재료 말고도 식당 인건비와 배달비 등이 가계 식비 지출액에 추가된다. 밖에서 밥을 사먹고, 배달해서 먹는 일이 많아지면 엥겔지수가 상승할 수 있다.

그것만은 아니다. 2022년부터는 식료품과 외식 물가가 급등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 조사에서 외식 물가는 2022년 7.7% 오른 데 이어 2023년 6.0%, 2024년 3.1% 올랐다. 반면, 노동자 1인당 실질임금은 2022년(-0.2%)과 2023년(-1.1%) 2년 연속 감소했다. 2024년에는 증가하긴 했지만 증가율이 0.5%에 머물렀다.

일본과 한국의 엥겔지수 상승은 먹고살기가 어려워졌음을 뜻한다. 다른 부문에 지출을 늘리기 어려워 내수 침체의 골이 깊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엥겔지수의 상승마저 한국이 일본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을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정남구 한겨레 선임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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