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투자자 살린다더니… 자본시장에 상처 내고 떠나게 된 尹
나머지 공약은 땜질·반쪽 처방에 끝나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고 한국경제와 1000만 투자자의 활로를 열겠습니다.”
4년 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우리나라 자본시장 활성화를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날 2590.13포인트(p)로 시작한 코스피 지수는 작년 12월 2360.18p까지 떨어졌다. 12·3 비상계엄 선포로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떠나고 투자심리도 무너지면서다.
출발은 좋았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대통령 공약에 자본시장 관련 정책이 이렇게 많이 언급된 건 처음 겪는 일”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중심에 둔 주주 친화적인 공약이 쏟아지자 코스피 3000p 탈환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개인 투자자에 대한 세제 지원 강화 ▲신사업 분할 상장 시 투자자 보호 강화 ▲내부자의 무제한 지분 매도 제한 ▲공매도 제도의 합리적 개선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 획기적 개선 등 5가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낸 건 ‘세제 지원 강화’ 하나에 그친다. 나머지 정책은 모두 빈틈이 있었고,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는 데 불을 지폈다는 평가가 나온다. 5가지 공약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약속인 세제 지원 강화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로 실현됐다. 원래대로라면 올해 1월 1일부터 주식으로 5000만원, 채권으론 25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내면 최고 27.5%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안 그래도 횡보하는 국내 증시에 새로운 세금까지 생기면 투자자가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가 번졌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일 ‘한국거래소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금투세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발언으로 동학개미(국내 시장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의 지지를 얻었고, 결국 금투세는 시행 약 3주를 남기고 국회에서 폐기됐다.

두 번째 약속인 ‘신사업 분할 상장 시 투자자 보호 강화’는 전형적인 땜질 처방으로 끝났다. 이 문제가 불거진 건 3년 전 LG화학이 알짜 부서인 배터리 사업부를 떼어내 LG에너지솔루션으로 상장하면서다. 기업공개(IPO)로 회사는 자금을 끌어모았지만, 황금알을 잃은 LG화학 주주는 주가 하락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이후 금융위원회는 물적분할을 마친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기업에 대해선 상장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상장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5년이 넘은 기업에 대해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물적분할 후 재상장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학계에선 5년도 너무 짧다는 평가가 나왔다. 올해 2월 열린 ‘상법·자본시장법 개정 논의 특별 세미나’에서 김홍기 연세대 교수는 상장 금지 기간을 10년으로 늘리는 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세 번째 약속인 ‘내부자 무제한 지분 매도 제한’은 내부자 사전공시 의무제로 이어졌지만, 이 역시 반쪽짜리였다. 작년 7월부터 상장사 임직원은 회사 주식을 팔기 30일 전에 거래 목적과 금액을 공시해 왔다. 시장에선 주가가 급등락하는 증시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조치란 평가가 나왔다. 코스피 지수가 하루 만에 9% 가까이 빠진 제2의 블랙먼데이(지난해 8월) 사태가 와도 공시를 하지 않으면 임직원은 추격 매수를 할 수 없다.
또 사모펀드(PEF)는 공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10월 고려아연 지분을 40% 보유한 MBK파트너스가 회사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 외에도 지분을 추가 취득할 수 있던 이유다. 이들이 주식을 사들이던 시기는 MBK가 경영권을 두고 분쟁 중인 고려아연에 자사주 매수를 멈추라는 가처분 소송을 냈을 당시로, 인용으로 경영권 분쟁이 끝날 가능성에 주가 상승 여력이 제한되던 때였다.

네 번째 약속인 ‘공매도 제도의 합리적 개선’은 해외 투자자의 신뢰를 잃는 방식으로 실현됐다. 빌리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불법 공매도를 잡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그전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면서다. 과거 공매도가 금지됐던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2020년 코로나19 등 모두 전 세계가 위기를 겪을 때였다.
이 탓에 공매도 금지의 명분이 약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홍콩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한국은 정치에 따라 정책을 이랬다저랬다 하는 이미지가 됐다”며 “해외에선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달 31일 공매도가 재개되자마자 외국인은 1조5000억원어치 물량을 쏟아내고 나갔다.

마지막 약속은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 획기적 개선’이었다. 이 약속은 이사가 충실해야 할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넓히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에 정부가 반대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단 평가가 뒤따랐다. 자본시장 참여자 다수는 정부가 제시한 자본시장법 개정이 아닌 상법 개정을 원했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안은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이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내 경제팀(F4)에선 파열음이 들린다. 직을 걸고서라도 상법 개정안의 거부권을 막겠다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라디오에 출연해 “(윤석열) 대통령이 계셨다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원장은 상위 기관인 금융위원회에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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