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기 몰던 청년, 전투기 조종사 돼 조국에 목숨 바쳐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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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 공군엔 전투기가 한 대도 없었다.
전투 이틀째인 6월26일 공군 조종사 10명이 급히 한국을 떠나 일본 이타즈케의 미 공군 기지로 갔다.
전투기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 공군은 L-4, L-5 연락기 그리고 T-6 훈련기로 북한군에 맞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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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 공군엔 전투기가 한 대도 없었다. 연락기와 훈련기 등 22대가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의 전부였다. 전투 이틀째인 6월26일 공군 조종사 10명이 급히 한국을 떠나 일본 이타즈케의 미 공군 기지로 갔다. 그곳에서 미군의 지도 아래 1주일간 ‘벼락치기’로 전투기 조종술을 익힌 한국 조종사들은 7월2일 F-51 머스탱 전투기 10대를 몰고 귀국해 곧 실전에 투입됐다. F-51은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한 낡은 기종이었으나 한국으로선 감지덕지가 아닐 수 없었다.

이 같은 공로로 라 1등상사는 부사관에서 장교가 되었다. 1950년 10월 소위로 임관한 그는 이듬해 3월 중위로 진급했고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마침내 F-51 조종사가 된 라 중위는 전쟁 기간 총 57회의 전투 출격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대위 시절인 1952년 4월 그에게 북한 지역 황해도 송림제철소 폭격 명령이 떨어졌다. 송림제철소는 150t급 용광로 3기와 200t급 용광로 2기를 갖춘 한국 최초의 제철소다. 안타깝게도 이 작전 도중 라 대위는 적의 대공포에 맞아 24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소령으로 1계급 특진과 더불어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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