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빵도 맛있게… 만능 K효모 찾는 ‘관악산 큐피드’
지난달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한 건물 5층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느낄 정도로 갓 구운 빵 냄새로 가득했다. 빵집처럼 느껴질 정도로 맛있는 냄새가 나는 이곳은 2005년 SPC그룹 허영인 회장이 서울대와 공동 연구를 위해 세운 식품생명공학연구소다. 33명의 연구원 대부분이 ‘언제, 어디서, 누가 먹어도 맛있는 빵’을 만드는 핵심인 ‘효모’ 연구에 매달리고 있었다.

효모는 빵 반죽을 부풀게 해 식감과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지만, 국내서 생산되는 빵 대부분은 수입 효모를 쓴다. 국산 효모를 대규모로 연구, 생산하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제빵 기업인 SPC도 국산 효모 사용률이 30%대에 그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1350만달러(약 197억원)어치 제빵 효모를 수입했다.
서울대와 SPC는 식품생명공학연구소를 통해 어떤 빵도 맛있게 만들어내는 국산 ‘수퍼 효모’를 만드는 게 목표다. 수퍼 효모가 상용화되면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K효모’로 수출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관악산의 효모 큐피드
이 연구소는 특히 ‘효모 짝짓기’란 방식으로 새 효모를 만든다. 사람으로 치면 잘생기고 예쁘고 똑똑한 ‘선남선녀’ 효모끼리 짝을 지어주고 더 우수한 효모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작업이다.
효모 짝짓기는 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 효모를 현미경으로 1000배 확대한 모니터를 보면서 머리카락보다 가는 바늘로 하나하나 옮겨 붙여줘야 한다. 연구원들은 바늘로 효모를 집어 옮길 수 있는 특수 장비 앞에서 하루 대여섯 시간씩 효모끼리 짝을 지어주는 ‘효모 큐피드’ 역할을 한다.
이날 오혜원 연구원이 특수 장비 앞에서 모니터에 있는 작은 점 같은 효모 하나를 조준한 뒤 바늘로 콕 찍자 화면에서 효모가 사라졌다. 바늘을 다른 효모에게 옮긴 뒤 다시 콕 찍자 두 효모가 찰싹 달라붙었다. 이 상태로 하루 정도 두면 둘 사이에서 새로운 아기 효모가 태어난다. 효모는 원래 무성 생식을 해서 혼자서도 자신과 똑같은 자식을 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매번 똑같은 효모만 나온다. 오 연구원은 “서로 다른 효모 둘이서 자식을 낳게 하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효모가 탄생한다”며 “모니터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야 해 눈이 빠질 것 같고 고되지만 세상에 없던 효모가 탄생하는 데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기 효모가 탄생하면 직접 빵을 구워 맛있는지 확인한다. 연구원들이 직접 반죽을 하고 오븐에 빵을 굽는다. 완성된 빵은 최신 분석 장비를 통해 부드러운 정도, 맛, 향, 부피 등을 분자 단위로 수치화해 기록한다. 빵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밀가루와 물, 설탕 등을 바꿔보고 여러 빵 종류를 만들어보며 어떤 효모가 어떤 빵을 잘 만드는지 알아낸다. ‘누가 먹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빵을 찾는 과정이다.
여기서 만들어 낸 효모는 오직 이 연구소에만 있는 효모다. 잘못 보관해 훼손될 경우에 대비해 여러 곳에 나눠서 분산 보관한다. 연구소 내 냉장고 2대 외에 종자은행(시드뱅크)에서도 보관하고 있다.
◇제빵왕 ‘수퍼 효모’ 찾기
지금은 빵 연구에 첨단 기기와 기술을 동원하지만, 연구소가 처음 생긴 2005년에는 효모를 개량하는 기술이 없어 아주 원시적인 방법부터 시작했다. 박정길 초대 연구소장은 “초창기에는 물이 맑고 환경이 깨끗한 청풍 호수를 찾아가 빵 반죽을 호숫가에 두고 발효 과정을 관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16년 연구진은 천연 재료인 누룩에서 첫 토종 효모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토종 효모는 지금 효모 짝짓기를 통해 탄생하는 효모들의 시조인 셈이다.
연구원들의 노력으로 이미 ‘K효모’ 수출을 이끌 ‘수퍼 효모’의 유력 후보도 나왔다. 현재 실험실에서 냉동빵과 냉장빵, 저당빵과 고당빵 등 어떤 빵 종류도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남은 과제는 효모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수조(兆)개씩 대량 생산이 가능한지 여부다. 심상민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 부소장은 “SPC가 연간 사용하는 3000t의 효모를 대부분 국산화할 수 있을 정도로 대량 생산을 통해 상용화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중대한 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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