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무용이 대세다” 몸짓의 반란, 전통의 귀환, 춤의 미래를 향한 약속 [권혜수의 문화텔레스코프]

정경수 2025. 4. 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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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 ③정중동 몸짓의 미학
※권혜수의 문화 텔레스코프 문화·예술 현장편에서는 어렵고 먼 거리에 있는 듯한 문화예술 공연을 작품설명을 통해 조금 더 쉽고 편안하게 풀어드립니다. 특히,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한국무는 무용적 특징, 역사적 배경, 그리고 현대적 재해석 측면을 알고 공연을 관람하면 예술가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알 수 있어 보는 즐거움이 배가 됩니다.
K-무용이 바꾸는 문화의 풍경

2025년 4월. 서울의 밤은 유난히 춤추고 있다. 국립무용단의 신작 ‘미인’과 서울시무용단의 창작 초연 ‘스피드’가 연일 매진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전통춤은 조용하고 느리다”는 고정관념을 날려버린 이 두 작품은, 오늘날 한국의 무용이 얼마나 빠르고 강렬하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연이다.

국립무용단이 올해 처음 선보이는 신작 ‘미인’은 4월 3일부터 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미인’은 조선 화가 신윤복의 ‘미인도’를 현대 여성 무용수 29인의 몸짓으로 새롭게 해석한 무대다. 부채춤, 산조, 강강술래, 북춤 등 전통 민속춤 11종을 60분 안에 풀어내며, 고전과 현대, 여성성과 역동성이 어우러지는 장면의 연속이다. 양정웅 연출, 정보경 안무, 장영규 음악, 그리고 K-POP과 드라마 아트디렉터들의 참여로 무대는 “전통춤의 어벤저스”라 불릴 만큼 다장르적 융합이 돋보인다.

국립무용단 ‘미인’ 포스터. [사진=국립극장]

김종덕 국립무용단 단장은 “관객들의 높은 기대감에 총 4196석이 모두 판매됐다. 한국무용 공연이 개막 3주 전 전회차 만석을 기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스테이지 파이터’ 방송 이후 대중의 관심이 확산되고 무용계 신규 관객이 부쩍 늘어난 영향도 있겠지만, 연극·패션·케이팝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 예술가들이 협업해 더욱 주목해주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4월 24~2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스피드’도 전석 매진됐다. 서울시무용단 윤혜정 단장이 부임 이후 첫 번째로 안무한 이 작품은 전통무용의 정적 이미지에 ‘속도’를 더한 실험 창작무용이다. 한국 춤의 기본이 되는 장단 즉 박자와 속도에 주목하여, 무용수들의 움직임 속도를 극대화하는 작품이다. 한국춤이 정적이고 고요하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속도감 있고 가변적인 움직임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시무용단 ‘스피드’ 포스터. [사진=세종문화회관]

‘스피드’는 총 6개의 장과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이뤄진다. 2인무·군무 등 다채로운 춤이 이어지고, 5장에 다다르면 단 한 명의 무용수가 정해진 안무 없이 5분간 즉흥 춤을 춘다. 무용수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음악과 미디어아트도 시시각각 변화해 매 회차 색다른 공연을 만날 수 있다. 국악 그룹 SMTO 무소음의 구성원이자 밴드 블랙스트링에서 타악을 주도하는 황민왕, 프랑스 출신 음악가 해미 클레멘세비츠가 참여한다. 전통악기 장구를 형상화한 대형 모래시계 오브제, 무대 바닥을 채우는 비주얼디렉터 이석의 LED 영상이 더해져 가속으로 치닫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극대화한다. 속도는 이 작품의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윤혜정 단장은 “한국무용의 속도감은 무용수에게 내적으로 체화된 움직임에서 비롯하고, 발레나 현대무용의 외형적 테크닉이 만드는 속도감과는 차이가 있다. ‘스피드’를 통해 한국무용은 느리고, 정적이며, 고요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설명했다.

무용계의 뜨거운 열기는 이미 2024년부터 뚜렷하게 감지되었다. 2024년 추석날 광화문광장 놀이마당에서 열린 ‘광화문전통춤페스타’는 연휴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약 5000여 명의 관람객이 참석해, 2시간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시민들은 외국인 관객들과 함께 마지막 순서인 강강술래에서 손을 맞잡고 대동놀이로 춤을 추며 대성황을 만들었다. 이는 한국 전통무용이 일회성 체험을 넘어, 시민의 문화감수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서울발레페스티벌 계원예고 Malaguena 공연 [사진=서울발레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서울발레페스티벌 개막식 (배현진 조직위원장, 유인촌 장관, 강수진 단장, 박상원 이사장) [사진=서울발레페스티벌 조직위원회]

같은 해 10월, 석촌호수 수변 무대에서 개최된 ‘서울발레페스티벌’에는 6일 동안 약 6만여 명이 방문해 국내 최대 규모의 야외 발레 축제로 기록되었다. 미국 조프리발레단, 스페인국립발레단 등 해외 10개국의 발레단과 국내 200여 개 단체가 참여한 발레 축제는 시민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고전과 현대 발레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야외에서 발레와 시민이 소통하는 방식은 공연예술의 접근성과 문화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2024년 11월 17일, 대한무용협회 주최 제45회 서울무용제 폐막공연에서는 대중예능 ‘스테이지 파이터’의 세 번째 미션 주제였던 ‘K-콘텐츠’ 춤 네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최종 우승자인 최호종, 그리고 강경호, 김혜현, 김유찬 등 방송에서 활약한 무용수들이 실제 무대에 등장하자, 팬들이 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극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는 무용계가 방송과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팬층을 확보하며, ‘스타 무용수’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열기는 2025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2025년 1월 11~1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된 글로벌 발레스타 초청공연 ‘발레의 별빛’은 예매 개시와 동시에 1, 2층 메인 좌석이 매진되며 연일 3000석 규모의 대극장을 가득 채웠다. 이 무대에는 파리오페라 발레단 에뚜왈 박세은,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최영규, 미국 보스턴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채지영,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입단 예정자 전민철 등 세계 발레계의 한국인 스타들이 총출동해 관객의 환호와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이렇듯 한국의 무용계는 전통과 현대, 대중성과 예술성을 넘나드는 다중적 정체성을 확보하며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고 있다. 이는 단지 일시적 유행이 아닌, 무용이 영상·미디어·도시 공간·교육 등 다양한 영역과 융합하며 본격적인 문화 생태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시민들이 무용을 ‘보는 예술’에서 ‘참여하는 문화’로 받아들이는 전환점에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무용 진흥정책은 공연을 넘어 체험, 교육, 정책, 콘텐츠, 기술과의 연결이라는 방향성 아래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춤을 향한 열기, 제도로 이어지다

이 같은 열기는 무대 밖 국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무용계의 숙원 과제였던 무용진흥법이 다시 국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 3월 7일,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무용진흥법’을 대표 발의하며, (사)대한무용협회(이사장 조남규)를 비롯한 각계의 무용 단체들이 참여하는 무용진흥법 제정 공청회를 4월 28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예정하고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도 무용진흥법안을 별도로 준비 중이다. 두 의원은 무용계가 “지금껏 타 예술 장르에 비해 체계적 지원에서 소외되어 있었다”는 문제의식을 공감하며, 무용도 미술·문학·국악처럼 독립적인 진흥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사실 무용진흥법의 국회 상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유정주 의원이 해당 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러나 당시 논의 과정에서 무용계 내부의 갈망이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최근의 법안 발의로 다시 불이 붙은 상황이다. 이번에는 정치권 안팎에서 “초당적 문화정책 연대”를 이루자는 제안이 나오며, 무용계 역시 ‘분열이 아닌 연대’의 태도로 국회를 바라보고 있다.

무용진흥법은 단지 무용계만의 숙원사업이 아니다. 예술인의 복지, 국립무용원 설립, 지역 무용단 지원 등 정책 전환의 뼈대를 형성하는 핵심 법안이다. 특히 음악·미술처럼 무용을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동등하게 인정하자는 ‘초등교과 무용 교육 신설’ 목소리는 무용을 ‘교육받을 수 있는 예술’로 정착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무용진흥법, 춤이 권리가 되는 날을 위하여

국민의힘 배현진의원이 발의한 무용진흥법은 그간 무용계가 갈망하던 첫 법적 보호막이 될 수 있다. 무용진흥법안은 단지 한 장르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무용이라는 예술이 제도 안에서 자율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헌법적 권리를 갖도록 만들자는 선언이다.

22대 국회에서 먼저 무용진흥법안을 발의한 배현진 국회의원의 법안은 ▶무용 진흥 및 무용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본계획(5년) 및 시행계획(1년)의 수립 의무화 ▶무용 실태조사의 제도화 ▶전문인력 양성, 무용 관련 단체의 육성·지원 ▶국립무용원 건립 및 지방무용원 설치 ▶무용문화산업과 융복합 콘텐츠 지원 ▶‘무용의날’ 지정 등 구체적이며 실효성 있는 조문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일부 법안 간에는 무용인의 권리 보호, 교육 커리큘럼 도입 범위, 공공기관 간 역할 분담 등에서 접근 방식의 차이를 보이며, 다음의 내용과 같이 향후 법안 통합 또는 조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무용원 설립 – 창작, 교육, 보존, 국제교류를 총괄하는 전담 기관

◦무용교육 확대 – 초중등 교과 연계, 예술고·대학과의 연계 플랫폼 구축

◦무용인의 복지 – 표준계약서, 창작물 저작권, 의료·산재보험 연계

◦지역 균형과 디지털 전략 – 지방무용원/거점센터 설립, 디지털 공연 콘텐츠 산업화

지금까지는 무용이 정책 속에서 ‘부록’이었다면, 이제는 ‘주어’가 되어야 한다. 춤이 사회와 법률, 행정의 언어가 되는 순간, 무용은 문화예술계를 넘어 ‘공공의 철학’이 된다.

춤은 ‘현재’를 통과해 ‘미래’를 말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무용은 분명히 달라졌다. 장르의 경계를 넘고,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며, 제도의 장벽을 넘나든다. 몸은 말하고, 사회는 듣고, 제도는 반응하기 시작했다. 무용진흥법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단지 한 장르를 위한 법이 아니라 몸의 언어가 문화정책이 되는 첫 전환점이 될 것이다. 무용은 더 이상 ‘예외적 장르’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나아갈 공공예술의 미래 그 자체다.

그리하여 다시 묻는다. 춤은 왜 필요한가?

왜 우리는 ‘몸짓’을 ‘정책’으로 바꾸려 하는가?

그 대답은, 지금 한국의 무대 위에 있다.

살아 있는 몸들이 꿈꾸는 미래가,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진동하고 있다.

조선의 문화개혁가, 효명세자와 궁중무용의 르네상스

무용 정책의 미래를 논하는 오늘, 조선시대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효명세자(1809–1830)는 단명한 왕세자였지만, 한국 무용사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정책가였다. 그의 짧은 생애는 조선 궁중 무용사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그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궁중정재와 연향의 부흥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효명세자의 궁중무용에 대한 애정과 실천은 단순한 예술 후원이 아닌, 직접 창작자이자 연출자로서의 역할에 가까웠으며, 이는 조선 궁중무용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효명세자는 1827년부터 약 3년간 섭정(攝政)을 수행하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조정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궁중의 예악(禮樂)을 통해 왕실 권위를 강화하려 했다. 그는 직접 ‘원행을묘정리의궤’, ‘진찬의궤’, ‘연향도감의궤’ 등의 의궤에 기록될 정재의 대본을 쓰고, 춤의 구성을 재정비하였으며, 대표적인 창작 정재인 ‘춘앵전’을 고안했다. ‘춘앵전’은 정중동의 미학을 극대화한 1인무로, 한 명의 무용수가 원형의 무대 안에서 단아하고 절제된 선으로 봄의 기운을 형상화하는 작품이다. 이 춤은 오늘날까지도 궁중정재의 정수로 회자된다.

효명세자 작 – 궁중정재 춘앵무 [출처_문화재청]

그는 궁중연향의 기획자이자 예술감독이었다. 연등회, 진찬연, 회례연 등 다양한 연향에서 음악, 무용, 무대, 복식, 공간 구성까지 조율하며 연출을 주도했고, 이는 실록과 의궤의 세밀한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무용에 있어 그는 단순한 보존자가 아닌 혁신가로서, 기존의 정재 형식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음악과 동작, 구성의 조화를 실험했다.

효명세자의 삶은 예술과 정치가 결합된 이상적 군주의 초상을 보여준다. 그는 문예적 역량을 통해 왕실의 권위를 재건하고자 했으며, 조선 궁중예술을 집대성한 마지막 군주 세대로 기억된다. 1830년, 22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그의 짧은 생애는 조선후기 궁중무용의 마지막 황금기를 열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왕권을 재정의하고, 정치의 긴장을 해소했으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몸으로 회복하려 했다. 이러한 ‘문화기획’은 오늘날 무용진흥법이 추구하는 공공성과도 맞닿아 있다. 그 정신은 오늘날 국립국악원의 궁중정재 복원 사업, 국립무용단의 창작 레퍼토리, 무형유산 제도의 기반으로 살아 있다.

춤추는 유산, 정책을 향한 몸짓 — 지금, 무용의 시대를 다시 쓰다

조선의 궁궐에서 시작된 몸짓은 오늘날 국립극장의 무대에서, 예술의전당과 대학로에서, 그리고 지역 창작센터와 디지털 공간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한국 무용은 지금, 전통을 넘어 세계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를 잇는 춤꾼의 숨결, 세대를 잇는 문화의 결이 흐른다.

한국 무용계에는 ‘가문’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유전되는 것은 단지 재능이 아니라, 전통의 맥락, 예술혼, 삶의 태도다. 무용은 문서가 아닌 몸으로 계승되는 예술이다. 살풀이와 승무, 유일하게 두 개의 국가무형유산 예능보유자였던 이매방과 그의 딸 이현주, 태평무의 한성준과 한영숙을 이은 정재만과 그의 아들 정용진, 부채춤의 창시자 김백봉과 제자이자 딸 안병주, 도살풀이의 김숙자와 딸 김운선, 진도북춤의 박병천과 딸 박기량, 한량무의 임이조와 아들 임현종, 그리고 장구춤의 한순서와 딸 이주희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예술 계보는 하나의 민족사이자 무형유산이다. 그들의 춤은 단지 아름다움이 아니라 기억과 철학이다. 강단과 무대, 지역과 해외를 넘나들며, 전통의 뿌리를 지키되 현대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춤을 새롭게 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계보의 예술’은 무용진흥정책이 예술인을 어떻게 보호하고 성장시킬 수 있을지를 묻는다. 무용은 예술과 혈통, 문화와 생활이 함께 엮인 유산이다.

특히 이들 가계는 무용을 ‘기술’이 아닌 ‘철학’으로 전승했다. 춤은 세속을 넘는 정신이며, 그 맥은 문헌이 아닌 몸을 통해 이어진다. 오늘날 전통무용 교육과 공연이 단순한 ‘보존’을 넘어서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계승’이 아니라 ‘변형’과 ‘응용’의 지혜다.

무용에 대한 대중문화의 재조명과 미디어 속 무용의 상징성

최근 대중문화에서 무용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무용수들의 생존 경쟁과 창작 열정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 ‘스트릿 맨 파이터’, ‘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테이지 파이터’ 등의 인기로 인해 무용은 더 이상 소수 장르가 아닌, 대중이 열광하는 문화콘텐츠로 부상했다.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신체의 언어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정체성과 감정, 사회와 계급에 대한 저항까지 담아내는 예술로서 재조명되고 있다.

1995년 MBC 광복 50주년 특집드라마 『최승희』는 일제강점기 신무용의 상징적 인물인 최승희의 삶을 다뤘다. 이 작품에서 배우 채시라는 최승희 역을 맡아, 실제 무용수 못지않은 춤을 선보였다. 특히 채시라는 최승희의 제자였던 김백봉 선생에게 직접 사사받으며, ‘춘무’, ‘칼춤’, ‘몽고춤’ 등 총 17종의 춤을 45일간 하루 8시간씩 집중적으로 연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백봉은 당시 “채시라는 타고난 무용수”라 평가하며, 그의 춤에 대한 열정과 몰입을 높이 샀다.

이 드라마는 대중문화와 무용 예술의 접점을 만들어낸 최초의 사례로, 신무용의 역사성과 민족예술로서의 무용 가치를 브라운관을 통해 널리 확산시켰다. 이는 단순한 ‘무용 재현’이 아니라, 예술이 가진 감정과 신념, 시대적 소명을 담아낸 문화재현의 장이었다. 채시라는 지난 2024년 10월 제45회 서울무용제의 홍보대사로 위촉, 11월 1일부터 서울무용제가 끝나는 17일 폐막식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펼쳐지는 춤의 열기가 식지 않게 자리를 지켰다. 채시라는 11월 6일 명작명무전 청풍명월을 통해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용수로 데뷔했다.

이처럼 무용은 단지 공연장에서만 존재하는 장르가 아니라, 미디어와 법, 제도, 사회적 서사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무용진흥법은 이러한 흐름을 제도화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 제도적 뼈대가 될 것이며, 과거의 춤과 현재의 몸짓, 미래의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무용에 대한 대중문화의 재조명과 미디어 속 무용의 상징성

채시라와 ‘여명의 눈동자’로 호흡을 맞췄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 박상원은 사실 한국 현대무용 1세대로 평가받는 무용가이기도 하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출신이지만, 학창 시절부터 현대무용과 신체 표현에 강한 관심을 보였으며, 한국 현대무용의 선구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무용가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특히 한국의 무용수를 세계적인 발레 스타들을 육성한 김선희 교수(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전 유럽 주요 발레단 수석무용수)의 30여 년 전, 귀국 직후 첫 국내 공연에서 박상원은 파트너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던 일화가 있다. 당시 무대 경험이 부족한 후배 무용수들을 대신해 김선희의 상대역으로 프로 무용수 못지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이후에도 박상원은 여러 무대에서 현대무용, 움직임극, 연극적 무용의 형태로 활동했으며, 방송·공연계와 예술 현장을 잇는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무용·연극·다원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 생태계 지원에 힘쓰고 있다. 그는 예술가 출신 이사장으로서, 예술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소통 경험으로 무용이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연극·드라마·미디어와의 융복합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문화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용진흥정책은 박상원과 같은 예술인의 사례처럼, 대중문화와 문화정책의 접점에서 예술의 실천과 정책적 실현 사이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현장 경험을 가진 예술경영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주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금, 한국 무용은 ‘진화’ 중이다

한국 무용계가 ‘진화’를 몸짓으로 말하고 있다. 전통의 뿌리 위에 창조와 혁신이 피어오르고, 그 춤사위는 무대를 넘어 정책과 교육, 산업의 영역까지 뻗어가고 있다. “무용이 달라졌다.” 무용평론가, 공연기획자, 현장 예술인들의 말이 하나같다. ‘움직임’이라는 언어로 시대를 말하는 한국의 무용은 신체를 통한 서사와 정체성의 탐구, 전통양식의 해체와 재구성, 디지털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을 통해, 무용은 ‘K-콘텐츠’의 차세대 중심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무대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립 단위의 무용기관과 민간 무용 단체들의 공연 흐름, 새로운 레퍼토리 개발, 지역 창작 공간의 확대, 그리고 정책화된 지원사업 속에서 무용은 생태계로서 진화 중이다.

국가 대표 무용기관들의 고군분투 : 공공성과 예술성 사이

국립무용단은 ‘묵향’, ‘회오리’, ‘향연’ ‘미인’ 등을 통해 고전미와 현대적 구성의 조화를 실험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초연 후 국내외 무대에서 10년간 43회 공연의 흥행을 이어온 ‘묵향’은 동양의 수묵화 정신을 몸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한국무용의 섬세한 호흡과 조형미를 세계적 무대로 끌어올린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국립현대무용단은 동시대 감각을 반영한 움직임 실험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나위 컴퍼니’,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등 다양한 창작 그룹과 협업하며 몸의 언어를 새롭게 정의했다. 특히, 젊은 안무가 발굴 프로젝트, ‘예술가와의 대화’ 프로그램 등은 동시대성과 현장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무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5년에는 현대무용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담아 대중성과 예술성을 조화롭게 아우르며 창작, 교육, 지역상생 등 다층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무대를 펼칠 계획이다.

국립발레단은 전통 클래식과 창작발레를 아우르며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모색 중이다. 2025 시즌에는 ‘백조의 호수’와 ‘허난설헌 수월경화’를 연달아 선보이며, 한국적 스토리텔링을 세계 무대에 알리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정기공연에는 한국 창작발레 작품은 없다. 신작으로는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재연, <카멜리아 레이디>한국 초연과 ‘이어리 킬리안’의 세 작품을 선보이는 <킬리안 프로젝트>가 주목된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은 전통 예술의 품격을 지키면서도, 대중과 호흡하는 공연을 통해 전통춤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선도하고 있다. 2025년 상반기에는 대표 기획공연 ‘상선약수(上善若水)’를 통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철학을 주제로 한 무대를 선보이며 지방 순회공연도 대성황을 이루었다. 전통과 철학, 예술의 합일을 지향한 이 공연은 한국춤이 담아낼 수 있는 정신성과 미학의 깊이를 보여주었으며, 형식미를 갖춘 군무와 독무, 정제된 동작과 수묵화적 무대 구성, 그리고 정악과의 일체화로 관객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한 서울의 4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에서 펼쳐지는 ‘궁중무용 재현 시리즈’를 통해 조선 궁중의 예술적 위엄을 현장감 있게 복원하고 있다. ‘춘앵전’, ‘무고’, ‘포구락’, ‘처용무’ 등 궁중 정재를 각 궁궐의 역사적 맥락과 공간에 맞추어 실연함으로써, 무형유산이 공간성과 결합할 때 발생하는 감동을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민간 무용계의 역동 : 해체와 융합의 춤

민간 무용계는 더 역동적이다. 서울무용제, 창무국제무용제, SCF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등 다채로운 축제들이 젊은 안무가와 전통 춤꾼을 한데 모은다. 최근 서울문화재단 공모를 통해 무대에 오른 무용작품 중 일부는 전통 춤사위를 해체하고, 동시대 서사와 결합해 새로운 미학을 구현해내며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한량무를 해체한 젠더 퍼포먼스, 판소리와 발레의 융합, 탈춤의 구조로 구성된 디지털 전시형 공연 등은 한국 무용의 확장 가능성을 증명하며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고, 유튜브 스트리밍을 통해 수십만 뷰를 기록하기도 했다. ‘클릭되는 춤’, ‘공감되는 몸짓’은 이제 무용가들의 핵심 전략이자 새로운 전선이다. 이는 무용이 더 이상 무대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한국춤협회(이사장 윤수미)는 오는 4월 4일(금)부터 23일(수)까지 ‘제39회 한국무용제전’을 개최한다. 한국창작춤계를 대표하는 공연예술축제인 한국무용제전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에서 펼쳐진다. 올해 축제는 ‘Ecology 춤, 순환의 여정’을 주제로 다채로운 무대와 부대행사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제39회 한국무용제전 포스터 [출처=한국춤협회]

개막초청공연은 한국전통춤부터 현시대 한국창작춤까지 이어지는 역사성 짙은 무대로 꾸며진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한영숙춤보존회의 ‘한영숙제 박재희류 태평무’에서는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박재희 보유자가 무대에 함께 올라 태평무 특유의 단아하고 고고한 춤사위를 선보인다. 개막초청공연을 필두로 이어지는 본공연 대극장 부문에서는 8개의 신작이 오는 4월 13일(일)부터 20일(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며, 소극장 부문에서는 12개 신작이 4월 15일(화)부터 19일(토)까지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에서 관객을 만난다. 이번 본공연 무대에는 작년 Mnet ‘스테이지 파이터’로 한국무용의 매력을 알린 무용가들이 대·소극장의 작품들에 출연하며 한국무용을 사랑하는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윤수미 (사)한국춤협회 이사장은 “올해 한국무용제전은 시민들과 함께하는 무용 축제로써 자리하기 위해 서울시민무용축제 ‘서울, 춤의 Soul’를 개최한다”라며 “한국 창작춤의 발전과 세계화를 견인하는 한국무용제전이 올해는 서울시민들과 함께하며 어떤 감동과 예술적 성취를 선보일지 기대가 크다”라고 밝혔다.

한국 무용의 오늘, 그리고 내일

한국 무용은 지금, 대중성과 예술성, 전통과 혁신, 정책과 산업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탈춤의 유쾌한 풍자부터 승무의 고요한 떨림, 그리고 현대무용의 창조적 몸짓까지, 이 모든 것이 오늘날 ‘K-Dance’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제 무용은 단순한 공연예술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와 치유의 언어이며, 공공정책의 대상이고, 문화산업의 미래이다. 정부의 무용진흥정책과 국회의 입법 노력, 예술가들의 창작 열정이 만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때, 한국 무용은 진정한 도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 국가와 사회가 이들에게 손을 내밀 차례다. 한국의 무용이 전통을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무대 위에서 우리 모두의 박수와 응원이 필요하다.

춤은 예술이고, 언어이고, 미래다 춤이 곧 언어가 되고, 정책이 되고, 미래가 되는 시대— 이제 무대는 넓어졌고, 몸짓은 더 강해졌다. 한국 무용은 지금 전통과 창조, 제도와 상상력 사이에서 비상을 예고하고 있다. 한량무의 느린 손끝, 살풀이의 숨결, 전통 정재의 정제된 발놀림, 현대무용의 전신적 폭발력—all of them are now asking:“정책은 몸의 말을 듣고 있는가?” 효명세자가 정재를 통해 나라를 기획했듯, 오늘의 우리는 춤을 통해 미래를 제도화하고 있다. 그 춤이 ‘살아 있는 법’으로, 그 몸짓이 ‘움직이는 정책’으로 완성되길 응원하며 박수를 보낸다.
글·사진 = 권혜수 우석대 교수

정리 =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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