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극좌매체 폐쇄” 선언에 오히려 신난 중국? ‘RFA 해체’ 일파만파
지난달 중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미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온 국제방송사 미국의 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가 방송 중단 및 운영 대폭 축소를 맞이한 지 약 2주가 지났다. 중국, 북한 등 언론 자유가 없는 지역에 검열되지 않는 정보를 전달해 온 이들 방송사의 갑작스러운 해체 수순에 국제 사회의 우려가 쏟아지는 가운데, 소속 기자들 수십명이 추방 위기에 몰리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따르면 RFA 해체로 인해 미국 내 비자 및 보호 아래 일하던 외국인 기자 30여명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위기에 놓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독재 정권으로부터 도피한 망명 언론인으로, 자국 복귀 시 투옥되거나 신변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
RFA는 지난달 27일 USAGM을 상대로 자금 지원 중단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USAGM의 결정이 의회 승인 없이 이뤄져 연방 법률을 위반하며, RFA의 의회 승인 임무를 방해한다는 취지다. 법원의 개입이 없을 경우 이달 말쯤에는 운영을 완전히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RFA 입장이다.
RFA·VOA 폐쇄 결정의 배경에는 정치적 이념 갈등이 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에 적대적인 권위주의 국가들이 환영할 만한 귀결이기도 하다. 당장 중국 정부는 “미국이 자유 언론을 더러운 걸레처럼 버렸다”고 조롱했고, 티베트와 신장 지역에서도 RFA 폐쇄 소식을 선전용 메시지로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VOA를 “극좌 선전의 장”이라 비판했고, RFA 역시 비슷한 성격으로 묶여 함께 타격을 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예산 관련 압박에서 이들 매체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외부와 단절된 북한 등의 나라에 미국과 국제사회의 시각을 소개하는 전략적 수단을 미국은 자발적으로 버리려 하고 있다. 이는 최근 미국이 권위주의 포퓰리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해석된다. 표면적으로는 ‘극좌 선전’을 배제한다고 하하지만, 결국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다.
국제정치·외교 전문지인 디플로맷은 1일 ‘RFA가 없다면 누가 중국의 잔혹 행위를 폭로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RFA의 활동은 (중국 정책의 가혹함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이는 유엔과 전 세계 정부의 압력으로 이어졌다”며 “이러한 비판적 보도가 없었다면 국제 기관이 조치를 취하거나 우려 사항을 알릴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세종연구소는 2일 ‘미국 VOA 및 RFA 방송 중단의 함의와 한국의 정책적 대응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VOA와 RFA 해체에 위법 판결이 내려진다면 이들 언론사가 운영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의 정치적 분위기상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고 짚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연구위원과 피터 워드 연구위원은 “유럽 일부 동맹국들은 이미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며 “체코 정부는 프라하에 본부를 둔 자유유럽방송/자유라디오(RFE/RL)에 대한 미국 지원이 중단될 경우 그 운영을 지원할 의사를 밝혔다”고 썼다.
다만 한국의 경우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유럽처럼 이들 매체를 직접 지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RFA 서울 지국이 북한 관련 보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의 직접적 개입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유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전면적 인수보다는 일정 수준의 재브랜딩 혹은 구조 개편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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